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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4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
7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1. 왜 죽음이 부정한가? 

인간은 본래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죽음은 이 생명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사망,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 우리는 생명을 원한다

 

3. 왜 잿물을 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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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의 원리

 

1. 누구에게나 공평한 헌금

 은 2400세겔, 금120세겔, 소 24마리, 송아지 12마리, 양 24마리, 염소 72마리 약 15억 정도되는 어마어마한 헌금이 모였다. 이처럼 풍성한 헌금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헌금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장정만 60만이었다면 남자 어른 한명당 약 250원의 헌금을 내는 것이다. 

 헌금은 마치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표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해주신다는 표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으로, 모두에게 공평한 헌금이 드려진 것이다. 헌금은 우리의 권리이자 특권임을 기억해야 한다. 

 

2. 뛰어난 자가 먼저 섬기는 헌금

 이스라엘 12자피에서 각 지파마다 뛰어난 자들, 우두머리, 지휘관이 대표로서 헌금을 드렸다. 각 지파마다 헌금을 드릴 수 없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나중에 드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자들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먼저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내게 주신 모든 것들 재정, 능력, 실력, 인력 등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내게 잠시 맡겨준 것이다. 우리는 먼저 주며 섬기며 희생하길 자원해야 하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되려 하지말고 오히려 주려 하는 사람이 되자.

 

3.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 헌금

 이 헌금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헌금으로 바쳐지는 수레와 황소는 모두 하나님의 성막을 이동하기 위해서 그 직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막 군사적 율법적 규율적 체계적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제 안정감을 누려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시키시는 것이다. 

 우리의 헌금은 마치 마리아의 헌금과 같아야 한다. 그녀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었다. 예수님을 붙들어 놓으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역을 알고 그분의 뜻을 헤아려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나아가게 도운 것이다. 우리의 헌금은 우리를 나아가고 전진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머물러 있기 위해 안락하기 위해 헌금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 헌금자, 봉사자, 헌신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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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비추는 영적 나실인

 

성경은 하나님 앞에 자기 몸을 구별한 사람인 나실인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별된 영적 나실인이다.

1. 나실인이 되려면

나실인은 포도를 전혀 먹어선 안되었다. 나실인은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되었다. 나실인은 시체를 만져서도 안되었다.

나실인은 매우 불편한 삶을 살았으며, 누구든지 나실인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티가 나는 사람들이다. 

 

2. 신약의 나실인

세례 요한은 나실인이었다. 그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한 경건한 구별된 자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시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다. 보이는 것으로 한다면 예수님은 요한과 같은 나실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이 보이는 나실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구별된 사람이 되기 위함임을 말씀하신다. 겉으로 보이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따르는 영적 구별을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이 있다면, 죄에 대한 애통과 회개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결단과 순종이 있다면 우리는 신약의 나실인인 것이다. 

 

3. 나실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은 그분의 얼굴을 비추시고, 그분의 얼굴을 향하여 드셔서 은혜와 평강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과 같은 것이다. 

태양이 달을 통해 밤 하늘에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이 

영적 나실인인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 이 세상에 빛을 전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이끄신다. 영광스럽게 하신다. 

우리의 나실임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으로 영광스럽게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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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죄악을 몰아내라

1.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1-4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는 내보내라는 단어이다. 

하지만 레위기에서는 부정한 질병이 있을 때에 격리를 시키고 다시 돌아오게 했다. 

여기서 의미하는 내보내라는 말은 공동체 안에 죄가 있을 때에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죄가 있다면 그것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드시 내보내야 하는 쫓아내야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해 민감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 죄를 멀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2. 자복하라

죄가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 모두는 죄를 짓는다. 죄를 사랑한다. 

우리가 죄를 많이 지어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7절은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라고 말한다. 

죄가 있으면 그것을 자복해야 하며, 그 값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값을 갚을 수 없다. 돈으로 물어낸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죄의 값을 온전히 치를 능력도 없는 죄인인 것이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완전한 책임을 지실 수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책임져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자복이다. 자복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죄에 대해서 애통해하는 것이다. 슬퍼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책임져주셔야만 했던 그 죄에 대해 애통하며 그것을 미워하길 결단하는 것이다. 

 

3.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민수기 5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의심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하나님은 죄가 있을 때에 그것이 확인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숨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숨기기 바쁘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숨기려 애썼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놓으며 중요한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버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와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요일4:18은 말한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냄새나고 더럽더라도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속여도 이 믿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우리의 죄가 드러나도 괜찮다. 죄가 드러나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사탄 앞에 당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반드시 드러나는 죄 앞에서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애통하며 미워하면서도

절대로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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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5장 

 

죄를 몰아내라!

 

1.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사람은 다시 돌아오게 함.

다른 의미가 있음. 죄에 대한 공동체 안의 죄에 대한 것.

 

2. 죄가 있으면 분명히 지적하라

죄는 자복, 자백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반드시 갚게 하는 것.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미 갚아주셨다. 

우리가 할 일은 자백하는 것.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내가 정말 죄인임을 말할 때에. 회개할 때에 우리를 회복해주신다. 

 

3.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간통. 바람을 피우는 일. 증거가 없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극적인 상황에서 그 임재를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3회 반복

 

내 안에 죄가 있는데 드러나지 않을 방법은 없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신다. 

 

그런데 그 방법이 사랑이신 것이다. 

 

요일4장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도 예수님이 함께 져주신다. 죄가 있으면 드러내고 고백하고 그것을 끊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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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4장 

하나님의 준비된 일꾼

 

1.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일꾼

 

2. 30부터 50세까지

 

3. 배워야 준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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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

 이스라엘노예였음기억해. 하나님은 레위기를 시내산에공식적으이스라엘을 자신백성으삼으셨다. 

 하지이들습성여전노예였. 사람은 아침변하않는. 이스라엘노예습성가지노예적응되있었. 하나님이들에게 민수기를 통하일상생활변하하시것이. 

 

2. 질서의 하나

 하나님자신백성하나님백성답만들위해이들숫자하신. 우두머리하시고 그들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것이. 

 하나님은 자유민인 백성에자유민으로서품위갖추하시것이. 노예품위. 단지 생존과 쾌락과 눈치만뿐이. 하지만 자유인인 하나님백성질서품위와 품격을 성장해것이. 

 

3. 정확한 하나님
 하나님은 레위인으로 하여백성의 맏아들을 대신하하신. 레위인의 숫자자 그 숫자만큼속전하신. 하나님정확자신백성자신것으삼으신.

 가운질서없, 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성 삼으시고 반드를 계획하시는 모습대형성하시고마시것이. 그것이 하나님의지이. 하나님뜻이아버지로서사랑이. 마음에 동감하며 순종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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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안나와도 가야 하는 이유.

 

기쁘게 반보 앞으로.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1: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서론

 

나오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원래 유다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몇째아들? 4번째 아들입니다.

나오미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입니다.

유다 지파의 땅인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 땅에 기근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한국이 아주 못살았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일본으로도 많이 갔습니다. 변호사, 사업가 잘 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미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거기서 쓰레기를 뒤져도 산다. 세탁소를 해도 산다.

우리 친척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면 산다. 너무 풍요로우니까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되게 너무 좋은 땅이니까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이와 같이 나오미의 가족들도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이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갑니다. 도저히 살지 못합니다. 모압이라도 가서 밥이라도 먹고 살아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거기서 잘 살았습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성장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그곳의 처녀를 구해다가 두 아들 모두 결혼을 시켰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하면서 나오미는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갑자기 자기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어버립니다.

 

나오미는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량한 신세에 처하게 됩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나오미가 갑자기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 한 소식이 들려 옵니다. 원래 자기가 살던 땅인 베들레헴 땅이 유대 땅에 기근이 그치고 예전처럼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모압 땅에서 사는 것보다, 여기서도 못 살지만, 내 고향 땅에라도 돌아가서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결심합니다.

 

그러니까 나오미의 신세는 어떤 신세였습니까? 그녀는 이판사판. 이래도 거지꼴, 저래도 거지꼴입니다. 남편도 없고 두 아들도 없습니다. 너무나 외롭습니다. 외로움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얼마나 일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나오미는 이제 나이가 차서 다시 결혼하지도 못합니다. 그녀는 정말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나는 이제 내 고향 유다 땅으로 가려 한다. 너희는 아직 어리고 젊으니. 원래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다시 결혼을 하고 남편을 맞이해서 그래도 먹고 살수는 있지 않냐. 나를 따라와서는 나 혼자서도 살 수 있을지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너희가 나를 따라와서는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해주시길 원한다.

나오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로서 이 두 며느리를 축복해주고 떠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웁니다. 여성들이 잘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슬픈 상황에서 함께 잘 웁니다. 이 세 여인들도 그랬습니다.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인들의 장기가 뭐냐? 우는 것입니다. 울면서 말합니다. 어머니,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 가겠습니다. 어머니 혼자서 어떻게 가시려고 하십니까?

며느리들도 참 착하지요. 심성이 곱습니다. 시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정말로 위하고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가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가라. 가야한다 며느리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를 보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아프다. 죽은 내 아들들이 생각나서 내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다. 그냥 가다오. 제발 가다오.

나오미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둘째 며느리 오르바가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의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훔치며 시어머니 곁을 떠납니다.

 

하지만 첫째 며느리 룻은 여전히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은 아주 강력하게 시어머니를 설득합니다.

뭐라고 말하냐? 어머니 죽는 곳에서 나도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나오미는 룻의 결심을 보고. 큰며느리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룻과의 동행을 결심합니다.

둘이 함께 유다 땅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본론

룻은 왜 그랬을까? 룻은 왜 그랬을까?

룻이 말하는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더 나아가

우리는 이 룻의 말에서 이 룻의 마음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가 오늘의 말씀의 주제입니다.

 

첫째로 알아야 할 것은 룻은 분명히 나오미를 따라가서는 답이 안나온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룻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처한 상황을 알았습니다. 이미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와서 정착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도 거기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신은 외국인으로서 어떤 차별을 당해야 할지도 잘 아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알아야 할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작은 며느리 오르바를 설득하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인정으로는 오르바도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나는 것은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며느리 룻은 착하고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나쁘다는 그런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차원이라면 오히려 룻이 더 나쁜 며느리일 것입니다. 이전의 과거를 다 잊고. 자신이 생명보다 더 사랑했을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을 기억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무의식하면서 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끔 하는 존재 자체로 함께함 자체로 얼굴을 보는 것 자체로 자기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가 룻이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친척들 친구들과 그나마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고 살 수 있을텐데, 저 처녀는 누구요? 하고 물어보면 반드시 자신의 고통을 말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상처를 다시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룻이었습니다.

 

룻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오미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굴복시켰습니다. 무슨 말로 굴복시켰습니까?

룻은 모압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압은 그모스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룻은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론과 결혼해서 사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알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룻은 그 하나님을 따라 가는 /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가려고 하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환

우리가 이 지점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착하든 나쁘든. 능력이 있든 능력이 없든. 그가 어떠한 사람이던지 간에.

그는 하나님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룻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간 것입니다. 사실 시어머니를 따라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룻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았을까요?

그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세월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아마도 룻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랄론가 기룐을 키우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가르쳤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룻은 모압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룻은 고작해야 몇 년 정도만 하나님에 대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경험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녀의 신앙적 지식의 연약함과, 여성이라는 노동력이 없는 신체적인 연약함과, 이방인이라는 신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룻은 그의 동서인 오르바와 다르게 뭔가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를 본 것입니다. 얄팍하게 어림직하게 얕은 지식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본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답이 나오지 않는 길을 자처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의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른 것. 옳은 것.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부분. 의리로 이루어지더라.

이것은 인간적 의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리다.

 

답이 안 나오는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그 자리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이다.

 

진보에 대한 확신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은 있다.

그 약속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시고 완전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실 그 하나님의 뜻. 그 날이 우리가 이 두 눈으로 맛보지 못할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룻과 같이 세상이 던져주는 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바라본다. 희미하게 바라볼 수 도 있고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고 확신이 100프로가 아닐 수 도 있다.

연약할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자들인가/ 어떤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분 곁에 머문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 곁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진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고 그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죽으심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의 무덤 곁을 누가 지켰는가?

남자 제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도망갔다. 능력있고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보고서 모두가 다 도망갔다.

그러나 연약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그 눈물 많은 나약한. 쓸모 없는 그 여인들이 그 무덤 가를 지키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여인들의 후손들이다. 우리의 영적 스승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안드레나, 요한과 같은 잘난 선지자와 뛰어난 학자와 능력 있는 설교자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닮은 사람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의 영적 계보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이 연약한 여인들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 여인들의 마음을 아신다. 그를 사랑하여 그를 사랑하기에 의리를 지키는 그 여인들을 아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오신다.

세계 역사의 가장 놀라운 비밀. 세계 역사를 바꾼 최상의 사건. 부활의 역사가 가장 먼저 이 연약한 여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의리를 지키라. 능력 없어도 괜찮다. 걸리적 거리는 사람이라도 괜찮다. 좀 천천히 느리게 가면 됩니다. 다만 예수님 앞에 의리를 지키라 그분 곁을 떠나지 말라. 그분과 함께하라 그분을 사랑하라.

 

답이 나오지 않아도 그 길을 걸어가라.

 

적용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나아옵시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이고 우리는 왜 여기 모여 있으며, 우리는 뭘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곳은 영광에서도 가장 시골인 대마면입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곳에 남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답이 되는 잠재력이 있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영광 읍내라도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룻은 모압에 남지 않았습니다. 답이 나오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남편을 만나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과부로 평생을 살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골에 사느냐 도시에 사느냐 그 문제를 가지고 누군가를 비하하고 누군가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내 마음이 향하는 것이 하나님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향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하지만 내가 향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가치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착하고 나쁘고가 아닙니다. 오르바냐 룻이냐.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그리고 그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느냐입니다.

 

의리라는 것은 답이 나오는 걸 보고 지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의리는 답이 안나올 때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고수하는 것에서 나오는게 의리입니다.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십시오.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는 것은 멀리 있는게 아닙니다. 약한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무모하게 어리석게 나아가보십시오. 그렇게 함께 조금씩 나아가는 축복있으시길

그 의리로 살아가는 우리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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