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역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성실성이라고 생각한다. 

 

목동이 그가 가진 능력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가진 무기가 적다고 하더라도

늦은 밤에라도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고 아주 원칙주의적으로 고집스럽게 해야할 일을 

그래도 어느정도 해내는 그런 모습 말이다. 

 

저점이라고 한다. 저점이 높아야 한다. 

고점이 아니라 저점이... 

 

성실성에서 그 저점의 평균적 높음이 나온다. 

 

게으른 사역자는 양떼를 망가뜨린다. 양을 키울 수 없고 무엇보다 .제자를 키울 수 없다. 

반응형

'에세이 >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속주의와 율법주의  (0) 2026.01.08
다양한 은유로 형성되는 관계  (0) 2025.08.06
살아나는 길  (0) 2024.07.31
폴 트립 죄에 대한 교리에서  (0) 2024.06.22
생태신학으로르를  (0) 2024.05.09
반응형

최루탄을 맞은 백발의 할아버지, 그가 흘리는 눈물, 살려고 - 안간힘을 쓰는 바로 그 사람

 

무더운 여름날 노가다 판에서 안전모를 끝내 벗지 못하는 할아버지, 살려고, 쫓겨나면 일당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수박을 수확하는 기다란 비닐 하우스 안, 마주오는 일꾼의 헉헉대는 숨소리, 

 

살려고

 

예수님은 그 살려고 하는 몸부림을 몸소 아신다. 

 

신성으로만 알지 않으신 이유가 있다. 인성으로 아셔야만 했던 이유가! 

살려고 하는 그 세찬 숨소리와, 거친 눈물 그게 뭔지를 그냥 아시는 게 아니라, 몸소 아셔야만 했다. 

몸소 아셔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당해보지 않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위로가 불가능함을 아셨기에, 

그래서 오셨다. 

 

그러니까 이 살려고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 그들에게 진정 주어져야 하는 것은 

 

살려고하는 울음의 응답, 울분에대한 진정한 해답

예수 그리스도, 그가 이루셨다. 그 대답! 

 

 

반응형

'에세이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자 12시다  (0) 2025.12.18
상상속의 이야기를 실제로 만드는 것  (0) 2025.07.30
응답을 주셨는데  (0) 2024.07.01
the greatest desire  (0) 2024.06.12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0) 2024.06.11
반응형

두 가지를 묵상하라. you 목

 

맞다. 결국 세속주의 그리고 율법주의화 된 것 

나는 둘 다 있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외줄을 탄다. 

 

그래서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위해서 나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우상숭배  숭배의 내용이다. 

 

영선박의 실패를 보면 그에게 경건이 없다. 결국 경건이 없다. 

사상이 남았을 뿐. ㅅ사상가가 아닌 목사. 성도가 되어야 한다. 

반응형

'에세이 >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으른 사역자  (0) 2026.08.14
다양한 은유로 형성되는 관계  (0) 2025.08.06
살아나는 길  (0) 2024.07.31
폴 트립 죄에 대한 교리에서  (0) 2024.06.22
생태신학으로르를  (0) 2024.05.09
반응형

연애 유튜버

 

연애 유튜버 따위를 본다.

확신에 찬 목소리는 너에게

진정으로 성적 개방이 된다고 말한다.

 

참으로 연애 유튜버 따위를 본다.

자세히 더 자주 더 많이

나도 너님들에게 귀여운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게임이 끝난 것이다.

 

연애 유튜버라도 보라고 한다.

잔소리. 날 사랑하는 잔소리인가.

날 미워하는 잔소리인가?

잔소리로 연애 유튜버를 듣는다.

 

연애 유튜버 따위를 다시 본다.

나는 카톡하는 법도 모르고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손을 잡는 법도 모른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난

나는 그렇게 잊혀지는 사람

그래서 이 추운 겨울날

연애 유튜버 따위를 본다

 

너님들에게 난

귀여워보인 적이 있는가?

그런적이 없다면 나는 연애 유튜버가 아니다.

결국 다시 연애 유튜버를 본다.

반응형

'간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이 흔들린다  (0) 2024.10.09
부활  (0) 2024.03.30
물봉선  (0) 2023.11.16
배수의 진  (0) 2023.10.19
관성  (1) 2023.09.25
반응형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나는 내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조잡한 머리에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내 손에서 정직하게 피어나는 글 말이다. 

 

나는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는 그 말에 동의가 안된다

나는 미움 받더라도 미움으로 머물지 않은 글이 되고 싶다.

 

자자 12시다 내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나는 이제 35세의 마지막을 향해 간다.

반응형

'에세이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려고  (0) 2026.06.27
상상속의 이야기를 실제로 만드는 것  (0) 2025.07.30
응답을 주셨는데  (0) 2024.07.01
the greatest desire  (0) 2024.06.12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0) 2024.06.11
반응형

x세대의 신앙관은 그래도 - 성공주의적인 부분도 있으나

낮아지고 - 선교, 농촌, 약자, 장애인, 빈민, 함께함

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이런 부분이 높이 평가되지 않는가?

 

1. 선배 세대에게 본게 없다.

- 그 전 세대는 정말로 그렇게 살았다. 김익두, 이세종 같은 이들, 이현필 같은 이들

무지렁이더라도 이들의 삶은 진짜였다.

그 모습을 보았기에 그들의 살이 내뿜는 그 살내음을 맡아보았기에 그 모습에 동경과 경향성이 생겨나는 것.

그러나 이 세대에서 n86 - x 세대에게서 그 모습을 본 경험이 없다.

mz는 그래서 외로운 세대다. 

 

 정보가 너무 공개된다. 

- 이전에는 그렇게 살지 못해도 그럭저럭 숨길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다 공개된다. 진짜 진정성이 있어야만 산다. 

 

2. 신학적 정립이 없다.

- 낮아짐의 신학. 겸손의 신학적 정립이 없다. 그것이 그냥 미덕 정도로 여겨지는 부분.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그리고 높아지심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가지고서 - > 이 삶에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기독교 세계관의 부재 

 

3. 둘 사이의 균형을 갖춘 교육의 필요

- 몸의 신학 철저한 몸의 신학

- 뛰어남의 신학 철저한 하나님 영광을 위한 영역 주권의 신학 

둘 사이의 균형이 또한 견제가 필요함.

반응형

'에세이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불교 소태산 정리  (0) 2024.03.08
논문에 대해서  (0) 2023.11.27
반응형

1 וַיְהִ֗י בִּימֵי֙ שְׁפֹ֣ט הַשֹּׁפְטִ֔ים  וַיְהִ֥י רָעָ֖ב בָּאָ֑רֶץ

 וַיֵּ֙לֶךְ אִ֜יש  מִבֵּ֧ית לֶ֣חֶם יְהוּדָ֗ה לָגוּר֙ בִּשְׂדֵ֣י מוֹאָ֔ב

ה֥וּא וְאִשְׁתּ֖וֹ וּשְׁנֵ֥י בָנָֽיו׃

 2 וְשֵׁ֣ם הָאִ֣ישׁ אֱֽלִימֶ֡לֶךְ וְשֵׁם֩ אִשְׁתּ֙וֹ נָעֳמִ֜י וְשֵׁ֥ם שְׁנֵֽי־בָנָ֣יו׀ מַחְל֤וֹן וְכִלְיוֹן֙ אֶפְרָתִ֔ים מִבֵּ֥ית לֶ֖חֶם יְהוּדָ֑ה וַיָּבֹ֥אוּ שְׂדֵי־מוֹאָ֖ב וַיִּֽהְיוּ־שָֽׁם׃

 3 וַיָּ֥מָת אֱלִימֶ֖לֶךְ אִ֣ישׁ נָעֳמִ֑י וַתִּשָּׁאֵ֥ר  הִ֖יא וּשְׁנֵ֥י בָנֶֽיהָ׃

 4 וַיִּשְׂא֣וּ לָהֶ֗ם נָשִׁים֙ מֹֽאֲבִיּ֔וֹת שֵׁ֤ם הָֽאַחַת֙ עָרְפָּ֔ה  וְשֵׁ֥ם הַשֵּׁנִ֖ית ר֑וּת וַיֵּ֥שְׁבוּ שָׁ֖ם כְּעֶ֥שֶׂר שָׁנִֽים׃

 5 וַיָּמ֥וּתוּ גַם־שְׁנֵיהֶ֖ם מַחְל֣וֹן וְכִלְי֑וֹן וַתִּשָּׁאֵר֙ הָֽאִשָּׁ֔ה מִשְּׁנֵ֥י יְלָדֶ֖יהָ וּמֵאִישָֽׁהּ׃

사아르 동사 무트 동사 소망이 끊어진

 6 וַתָּ֤קָם הִיא֙ וְכַלֹּתֶ֔יהָ וַתָּ֖שָׁב מִשְּׂדֵ֣י מוֹאָ֑ב כִּ֤י שָֽׁמְעָה֙ בִּשְׂדֵ֣ה מוֹאָ֔ב כִּֽי־פָקַ֤ד יְהוָה֙ אֶת־עַמּ֔וֹ לָתֵ֥ת לָהֶ֖ם לָֽחֶם׃

사마르 이 절망의 상황에

 7 וַתֵּצֵ֗א מִן־הַמָּקוֹם֙ אֲשֶׁ֣ר הָיְתָה־שָׁ֔מָּה וּשְׁתֵּ֥י כַלֹּתֶ֖יהָ עִמָּ֑הּ וַתֵּלַ֣כְנָה בַדֶּ֔רֶךְ לָשׁ֖וּב אֶל־אֶ֥רֶץ יְהוּדָֽה׃

 8 וַתֹּ֤אמֶר נָעֳמִי֙ לִשְׁתֵּ֣י כַלֹּתֶ֔יהָ לֵ֣כְנָה שֹּׁ֔בְנָה אִשָּׁ֖ה לְבֵ֣ית אִמָּ֑הּ (יַעֲשֶׂה) [יַ֣עַשׂ] יְהוָ֤ה עִמָּכֶם֙ חֶ֔סֶד כַּאֲשֶׁ֧ר עֲשִׂיתֶ֛ם עִם־הַמֵּתִ֖ים וְעִמָּדִֽי׃

 9 יִתֵּ֤ן יְהוָה֙ לָכֶ֔ם וּמְצֶ֣אןָ מְנוּחָ֔ה אִשָּׁ֖ה בֵּ֣ית אִישָׁ֑הּ וַתִּשַּׁ֣ק לָהֶ֔ן וַתִּשֶּׂ֥אנָה קוֹלָ֖ן וַתִּבְכֶּֽינָה׃

 10 וַתֹּאמַ֖רְנָה־לָּ֑הּ כִּי־אִתָּ֥ךְ נָשׁ֖וּב לְעַמֵּֽךְ׃

 11 וַתֹּ֤אמֶר נָעֳמִי֙ שֹׁ֣בְנָה בְנֹתַ֔י לָ֥מָּה תֵלַ֖כְנָה עִמִּ֑י הַֽעֽוֹד־לִ֤י בָנִים֙ בְּֽמֵעַ֔י וְהָי֥וּ לָכֶ֖ם לַאֲנָשִֽׁים׃

 12 שֹׁ֤בְנָה בְנֹתַי֙ לֵ֔כְןָ כִּ֥י זָקַ֖נְתִּי מִהְי֣וֹת לְאִ֑ישׁ כִּ֤י אָמַ֙רְתִּי֙ יֶשׁ־לִ֣י תִקְוָ֔ה גַּ֣ם הָיִ֤יתִי הַלַּ֙יְלָה֙ לְאִ֔ישׁ וְגַ֖ם יָלַ֥דְתִּי בָנִֽים׃

 13 הֲלָהֵ֣ן׀ תְּשַׂבֵּ֗רְנָה עַ֚ד אֲשֶׁ֣ר יִגְדָּ֔לוּ הֲלָהֵן֙ תֵּֽעָגֵ֔נָה לְבִלְתִּ֖י הֱי֣וֹת לְאִ֑ישׁ אַ֣ל בְּנֹתַ֗י כִּֽי־מַר־לִ֤י מְאֹד֙ מִכֶּ֔ם כִּֽי־יָצְאָ֥ה בִ֖י יַד־יְהוָֽה׃

 14 וַתִּשֶּׂ֣נָה קוֹלָ֔ן וַתִּבְכֶּ֖ינָה ע֑וֹד וַתִּשַּׁ֤ק עָרְפָּה֙ לַחֲמוֹתָ֔הּ וְר֖וּת דָּ֥בְקָה בָּֽהּ׃

 15 וַתֹּ֗אמֶר הִנֵּה֙ שָׁ֣בָה יְבִמְתֵּ֔ךְ אֶל־עַמָּ֖הּ וְאֶל־אֱלֹהֶ֑יהָ שׁ֖וּבִי אַחֲרֵ֥י יְבִמְתֵּֽךְ׃

 16 וַתֹּ֤אמֶר רוּת֙ אַל־תִּפְגְּעִי־בִ֔י לְעָזְבֵ֖ךְ לָשׁ֣וּב מֵאַחֲרָ֑יִךְ כִּ֠י אֶל־אֲשֶׁ֙ר תֵּלְכִ֜י אֵלֵ֗ךְ וּבַאֲשֶׁ֤ר תָּלִ֙ינִי֙ אָלִ֔ין עַמֵּ֣ךְ עַמִּ֔י וֵאלֹהַ֖יִךְ אֱלֹהָֽי׃

 17 בַּאֲשֶׁ֤ר תָּמ֙וּתִי֙ אָמ֔וּת וְשָׁ֖ם אֶקָּבֵ֑ר כֹּה֩ יַעֲשֶׂ֙ה יְהוָ֥ה לִי֙ וְכֹ֣ה יֹסִ֔יף כִּ֣י הַמָּ֔וֶת יַפְרִ֖יד בֵּינִ֥י וּבֵינֵֽךְ׃

초실절 이후 유월절 직후에 출애굽과 같은 이미지 단어들 사용됨.

하나님게서 룻과 나오미를 함께 구원하시어 돌보시는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Ruth 1:1-17 WTT)

반응형

'구약설교 > 소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  (0) 2023.05.23
요나 1,2장  (1) 2023.05.20
반응형

주님 앞에 머무는 것 

 

의지하지 않고 씨름하는 것 

함께 씨름해야 하는데 씨름을 혼자 하는 것

때와 계절이 있는 듯

 

버티는 것 믿음이 있으니까 버티는 것

믿음이 없으면 안보이고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사람들은 잘 한다고 하는데 

때로는 현상 유지만 해도 

 

잘못된 견해가 쌓여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다양한 은유로 설명되는 관계가 좋은 관계다. 

(하나로 교인을 대하는 하나로 동료를 대하는 것은 건강치 못함)

 

첫번째 여자가 아내가 안되고 엄마가 되면 끝나는 것. 질서가 변해야. 

 

반응형

'에세이 >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으른 사역자  (0) 2026.08.14
세속주의와 율법주의  (0) 2026.01.08
살아나는 길  (0) 2024.07.31
폴 트립 죄에 대한 교리에서  (0) 2024.06.22
생태신학으로르를  (0) 2024.05.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