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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문 
주장 - 자신의 과제 
이슈 - 이 이슈에 대한 대표적 카테고리를 말하는것. 

해설 논문(역사신학)
1단계 - 해설논문은 역사신학에서 필요 : 처음 발견한 문헌 등.
2단계 - 주장논문은 해설논문이 원문을 제대로 읽었냐 하는, 이해를 돕는 배경 이해를 가지고 해재해주는 논문
3단계 - 이런 부분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다. 

주장논문(조직신학)
이슈에 대해서 말하는. 
조직신학 논문은 참이냐 거짓이냐의 싸움에 치들어가는 것. 
그래서 성경, 역사, 조직신학, 체제 등에 능해야 하는 것. 
이거를 다 할 수 없으니까 대표적 학자 하나를 잡고 그 사람에게 빗대어 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이슈가 뭐인지에 대한 명료화. 
그 이슈에 대해 어떤 것이 있다고 카테고리화
그 카테고리들에 대해서 평가 및 자기 주장.

 

아웃라인 자체가 논증 자체이다. 

 

몸과 영혼의 이슈와 관련하여 하나님 형상에 대한 이해의 차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가 몸과 영혼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몸과 영혼의 문제에서 하나님 형상만으로 좁아지는 것. 

몸과 영혼의 각각의 주장에서 하나님 형상을 뽑아내는 것. 초점이 좁아지는 것. 

 

초점을 좁히고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 그 신학 논개에서 어느편을 비평할 것이냐. 

관계적 삼위일체 몰트만은 밖에, 윌리엄 힐은 안에. 

양태론 칼바르트는 안이냐 밖이냐, 

삼위일체론의 접선에 붙어 있는 바르트. 기준 제시를 찾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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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소태산 정리  (0)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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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 

사효론, 인효론 

개혁파는 신효론 

ex opera operato

예배가 제사가 아니다 - 종교개혁

성례는 은혜를 상징한다. 종교개혁을 무효화하는 일을 하는 것. 

제단 altar -> table 성찬상.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다. 매일의 삶에서 제사장의 삶을 사는 것. 성례를 행하는 것만 제사라고 확정하는 것. 

 

라바누스 마우루스 : 수찬자들이 믿음으로 성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의 임재가 믿는 수찬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칼빈은 - 믿음으로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중세의 2차 성찬 논쟁 

투르의 베렝거

성찬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현존하는데 - 본질로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현존한다. 

본질? 본질로 있다는 것이 나중의 로마교의 입장 

성찬의 요소들이 축성 때 변하는데 그 본질이 변하는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란프랑크, 흄베르트. 

외양은 변화가 없지만 본질은 주의 몸으로 본질로 변한다. 

본체 본질 화체설.  

외형은 같지만 본질이 변했다. 본질과 본성은 같은 것. 

인성으로서는 그렇지만 신성으로서는 다르다. 

 

베렝거 영적인 현존을 말하다. 

 

화체설이 로마교의 공식 교리로 채택됨. 

- 투르의 힐데베르 화체설 (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 제4차 라테란 공의회. 공식적 교리.

818년부터 시작된 화체설이 11세기 거쳐 13세기에 공식화된 것이다. 교의화.

 

토마스 아퀴나스. 

공식적 교의로 된 것을 체계화한 것. 질료와 형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여 성찬을 설명.

축성 시에 질료는 그대로 있지만. 형상(idea, essentia)가 변하는 것.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 

그 새로운 사조에 맞게끔 성찬을 설명해 준 것이다. 중세적 종합.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천주교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음. 

 

시행을 하면 그대로 역사한다. 구약에는 할례를 받으면 . 

성례론과 로마 카톨릭적 이해를 반영하는 듯 하다. 

 

소위 준비주의 . 성례 자체가 효과를 낸다는 것. 예배가 제사다.

 

중세의 세례 이해와 문제점. 

기여 ; 표로서 세례를 강조, 유아세례에 큰 기여. 

 

사효성에 근거한 세례

세례를 베풀면 그 자체가 구원을 준다는 세례중생설

 

한국 로마교 전례 역사에서. 중국 신부 주문모를 모셔와서 미사함. 이후 김대건. 

제2바티칸 전이라 라틴어로 해야 하는데 다 못 알아 먹는다. 

뭔가 주문을 외워야 예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각국 언어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주문모는 라틴어로 예배함. 아무도 알아먹는 사람이 없음. 기계주의 의식주의. 

 

세례 중생설 (baptismal regeneration theory)

세례의 표가 그것이 표시하는 바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세례를 베풀면 그 시행 자체로 중생이 일어난다. 

 

이거 없으면 아직 교회에 있는게 아니다 -prot> 아직 세례를 못받았어도 교회에 있다면 교인이다. 

세례를 아직 안 받았으니. 세례를 받음은 full membership을 가지는 것.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는 의미. 

성도들을 계급화해서는 안된다. 암흑리에 초신자가 있고 상급신자가 있고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례를 받으면 중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주입된 은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이 공로가 주어진다. 세례를 받게 되면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혼에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는 것.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 

종교개혁은 이런 특성이 있는게 아니다. 사제는 임직시에 그것이 주어진다. 목사는 그렇지 아니하다.

 

세례는 매우 중요하나. 그것에 대한 사효론이 문제고, 세례가 중생이다는 아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불멸의 특성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믿을때. 신효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믿기 전에 성령세례로 믿게 되는 작업.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미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안흔 교회 바깥에 있다면 

 

육체, 부패한 인간성. 

 

예배는 

 

성례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생한다. 진정 믿는 사람에게만 세례가 주어지는 것이다. 언제든지 안으로 향해서

그러나 말씀은 안과 밖으로 간다. 

 

성례주의 - 의식주의. 말씀이 약화되어지는 것. 

결국 천주교 체계에서 미사는 십자가를 재현하는 것. 

사소한 날마다의 죄를 용서하는 효과가 있고 중죄에 대해서도 참으로 유효한 구원적 효과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 

 

평신도라는 용어. 

모든 성도들에게 선지자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서 전하는 것이다. 

종교개혁때에 말하기는 하였으나 아주 강하게는 못한 것.

우리가 다 왕임을 강조해야 한다. 종교개혁에서는 이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전부 다 반역죄가 되었을 것임. 그래서 말하지 못함. 

 

이런 세가지 역할을 보편적 직임이라고 말한다. 

개혁신학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상. 교회에서 맞는 특별한 직임. 

모든 성도는 다 보편적 직임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다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왕이다. 

개혁파는 이를 강조해옴. 한국은 이를 덜 강조하다. 보편적 직임. 

로마교는 몇몇만 보편직. 이를 없애고서 이 의식이 없다면. 

왕에 대한 직임을 - 성도들과 공론할 때에 아담을 세상에 주셨을 때 온 세상을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라고 하심.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의 특별한 영역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이 구현되게 하는 왕역할. 

피조계 전체를 우리가 분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는 것.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 

제사장의 의의 - 가정, 교회 전체가 그렇게 가도록 하는 것.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포함되는 것이다. 기도의 제단이라 할 때에. 제단은 이제 완성된 것이고. 제단을 쌓는 게 아니다. 

 

성체 보관함을 들고 일년 한번씩 동네를 돈다. 그러면 마을의 신자들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에 절한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미신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파서 못 오면 남겨놨다가 전달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개혁자들은 거부한 것. 

성찬을 못하면 심방은 반드시 하며, 다음번 성찬때 오도록. 

 

입교 이후 성찬하는 이유? 고 자기를 살피고서야의 능력이 되어야. 고전 11장. 

중세교회의 성례 이해. 기계적인 성례론 성례주의. 세례 중생설이 중세의 기본적 세례 이해. 

세례는 영적인 사건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이 거기 필요하다는 것. 신앙이 없으면 안된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성례 이해의 공통점. 

성례의 절대적 필요성. 

1524년부터는 더 말하는데 재세례파가 유아세례 인정 안하기에 .

논쟁속에서 더 나타남.

 

세례 때에 죽고 살아난다. 

영국 성공회는 천주교적 세례 중생설을 가지는 것. 

 

루터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 

바르티안은 날마다 죽고 사는 것. -> 칭의가 매번 계속되는 것. 

 

신약 성경에 명확히 유아세례를 말하지 않지만 암묵리에 고백하는 것이다. 함의를 말한다는 것. 

재세례파는 열광주의자. 

 

세례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 생애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임.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는 사제다. - 루터. 

 

성례주의의 잔존. 

루터파는 로마교의 성례주의적 성례 이해를 극복하였으나 성례주의가 잔존하여 세례 자체가 무슨 효과를 내는 것으로 표현했다. 

개혁파는 성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계적 성례론을 말하지 않음. 

 

유아세례에 대한 언약적 이해. : 구약의 할례에 대한 연속성으로서. 은혜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할례로서 인친다면 이를 세례로서 나타낼 수 있다는 것. 

 

세례는 외적이고 법적 관계 언약의 표이다. 생명적 관계의 표와 인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법적 관계에 생명적 관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명적 관계 없이 법적인 관계만 있을 수 있다는 은혜언약의 이중적 측면. 항상 이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법적 외적 은혜언약은 반드시 생명적 언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적이나. 항상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시적, 비가시적 교회와 연결되는 것이다. 

 

성찬에 대한 칼빈의 이해. 

 

공재설은 기본적으로 화체설과 같이 간다.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대로 남고 동시에 공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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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가 종교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 국가의 간섭을 피하면서도 지나친 방임을 피하면서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피선교국가의 다원주의 사회이고 종교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에 . 

건전한 종교를 육성하고 교육하는 구조인데 . 이단규정을 하더라도. 

국가가 관여할 의무가 있느냐에 있어서 현실적 부분이 필요함. 

90년대 오대양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국가가 관여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에서 국가의 사법적 판단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건전한 종교를 국가가 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종교의 다양성이 인정되기에. 

한국교회는 한번도 국가와 밀착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실제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신학적 정리가 필요하다. 

정교분리에 대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원칙을 이야기하고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공적 사항에 대해 협력할 수 있고 견제할 수 있다는 신학적 원리가 작동하려면 국가보다는 교회와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어찌 표현하는가에 대해서.

 

교회가 신학적 판단을 정해야 하는 문제다. 균형적으로 되겠느냐에 대해서 의문은 된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교회에서 정치인들이 와서 간증하고. 

포항중앙교회 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 방산업체 비자금을 거기 숨겨놓음. 

 

기독교 정당이 나타난다면 재세례파나, 자유주의에서 나와야 하는데. 

보수주의에서 정당이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상황. 

 

국가와 공적 책임을 지는 면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지. 

이를 위해 협의체를 만들었는데.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욕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되든 안되든 신학적 원리에 따라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 인식에 대한 부재가 있다. 연속성을 생각한다고 하면. 착한 목사 컴플랙스. 사실상 아무 일도 안하게 되는 것이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사는게 좋다. 그것이 신상도 편하고 자유롭고. 

교회의 틀과 규범을 마련하는 것.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민하고 실패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역사를 일으키고 일이 일어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종교개혁자들은 책상 앞에서 있지 않았고 나서서 일했다. 적극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다. 

 

불링거가 직분을 인정하면서 의무인 이유가 궁금하다. 취리히 교회는 국가적 빈민 복지사가 감당했고 제네바는 복지사들에게 집사를 한다. 취리히나 제네바 모델로 교회 개척의 모델인가? 

국가의 개념이 강조된 것은 . 종교적 역할을 국가가 대처하는 것은 계몽주의 이후 18세기다. 

그 이전까지 교회가 행복을 준다고 했는데 이제는 국가가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지에 대한 개념이 국가로 전환된다. 

노동과 관련해서 19세기 중후반의 발전. 점차 발전하면서 오게 되다. 지금은 분화된 형태이다. 

 

한국교회가 국가가 하지 못한 것을 해온 것. 선교원->유치원. 지역아동센터->국가화. 

경제 문제에 대해서 독립성이 없어서 국가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형태로 가고 있는 것. 

이에 대해서 끊을 수 있는가? 카이퍼의 영역주권 관련해서. 그 영역이 추구하는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리. 한국 종교 영역에서는 인정될 수 있는가? 고민이 된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감당하기에 지원을 받지만 교회의 정체성과 신앙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것. 

대안학교가 언제까지 갈 수 있는가. - 국가로 지원받으면 실제적으로는 흡수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어떻게 유지하는가? 교인이자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기에. 

 

교회 안에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안정되게 신앙생활 하는 집사직으로서의 개념. 

제네바나 취리히. 신칼빈주의에 가까운가 브루넨에 가까운가? 

종교개혁자들의 개념은 신칼빈주의에 더 가깝다. 지금도 양로원이나 병자들 심방.은 목사의 역할이다. 유럽에서도. 

스위스나 독일은 공공적. 설교는 1주 1회 하더라도 양로원, 심방, 병자, 상담 등은 목사에게 서구에서 의무로 되어있다. 요청하면 가야함. 교회를 안다녀도. / 교회를 안다녀도 목사는 다 안다. 

화란이나 영국은 

 

우리는 가만히 있고자 해도 사회가 가만히 있고자 해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럴 때에 신칼빈주의가 더 효용적이다. 

한국은 기독교적 토양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국가가 동의 없이 침범을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 - 언론, 교육, 정치참여. 

 

복음은 삶의 체계와 분리되었나? 그에 따른 체계와 신념을 가지고 그에 따른 삶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그 지식이 의식과 신념과 체계로 나와서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가? 

 

경건주의가 결국 중세 수도원주의로 간다. 교리도 포기하여 이상하게 간다. 

우리의 고유성을 지켜도 동 시대의 일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우리의 고유성을 지켜나가는 것. 

그러면 성도들이 세속에 살면서도 우리 신앙 정신에 따르는 신념체계.

구원에 관련해서는 . 삶에서는 신앙은 삶의 체계다. 

 

650년동안 왈도파가 핍박 속에 살았다. 어떻게 존속하는가? 

흑사병이 있을때에 가족의 절반이 죽는데. 살 수가 없는 구조에. 

 

한국 신앙의 형태는 거의 구원파에 가깝다. 

 

미국의 경우. 시대가 세속화되고 교육이 붕괴되자 ->홈스쿨, 기독교학교로

우리는 국가도 작고 해서 전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심방에 있어서 ; 목회자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 

치리의 목적은 회복이다. 그런데 다 공개해서 회복할 수도 있으나 공개하지 않을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죄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들춰내서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몇사람이나 하겠나.

회복이 목적이라면 이 목적을 위해서. 이 사람도 지키고 공동체도 지키면서 다스리고 있음을 인식할 정도로. 

 

보수 중도 자유. 

 

신앙교파화는 이미 1529년에 시작되었다. 

1. Rcc - prot

2. prot = Lc, Rc 

3. Lc = philipist, gnesio L

 

1560년대 루터파와 필립파. 

그네시오 루터파 논쟁의 종식이지만 이 세가지를 다 담고 있다. 

이를 종합하는 면에서 1580년 루터파 일치서. 모든 신앙고백서들을 담아놓는 신앙고백서 모음집이다. 

루터파 정통주의가 형성되었을 때에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루터파 신학이 더 정교해진다. 

켐니츠. 조직신학 책을 하나 쓰면 20권씩 쓴다. 

성경의 모든 신학책들을 백과사전으로 하는 시도들.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신학을 더 체계화하다. 

개혁파나 똑같다. 

정통주의는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신학적 주제를 서술하는 것. 

그러나 17세기 중후반에 가면 이성주의 영향으로 루터파나 개혁파나 비슷한데 

개혁파 정통주의는 루터파도 아주 정교해진다. ]

 

중재신학 중도신학 자유주의 

3가지 경향성이 유지된다. 개혁파도 후기 정통주의로 가면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교파주의적이면서도 3가지 경향성이 한 경향 안에 공유되고 있다. 

재해석을 하는가 어떤가.  

 

개혁파 중도주의와 루터파 중도주의를 보면 우리와 더 가깝다. 

일치신조를 보면 성만찬과 칼빈의 이중예정 제외하면 사실상 다 받을 수 있다. 

 

교파주의 전개 과정에서 필립파와 순수루터파의 것들을 초점을 두고 평가하지만. 루터파가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정리한 것이라 했을 때 이미 종교개혁이 하나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신학의 독특성으로 이 차이가 나왔다는 것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루터파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른가? 종교개혁사를 보고 할 때에. 

 

칼빈주의 독일 

 

루터파는 감독제에 가깝다. 그러나 로마교나 성공회와 같은 계급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개방성 정체성 구체성 이 잘 평가되어야 한다. 

 

신앙고백서를 다양하게 읽히는 것은 좋은데 

전문 신학 서적은 목회적으로 안좋다. 단절이 생긴다. 

개별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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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의 다니엘 기도회를 참여한지 3년차.

이곳에 와서 교회서 하기에 참여한다.

 

이른파 개혁주의를 따르는 분들이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는 것과

다른 측면에서 다른 입장에서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미 고신에서 잘 비판해주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른파 무덤파의 입장에서

무덤파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고 싶다.

 

2023 다니엘기도회

한마디로 말해서 영성이 떨어진다.

 

평이하다. 

쉽다.

가볍다. 

감정적이다.

 

이전에는 다른 의미에서 

들을게 있었다만

이젠 들을 게 없다.

 

그래서

이젠 누구나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 말이다.

공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공격받을 만한 내용 자체가 없으니까

운영은 쉬울 것이고 좋겠지 아마.

 

하지만

그것이 본래 가졌다고 들었던

생명은 없다.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케하며

움직여가는 꿈틀거림은 없다.

좋은 얘기 들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다니엘 기도회는 끝났다.

결국엔 돈잔치로 마무리될 것이다.

시간과 정성들이 너무 아깝다.

 

두 트렉이 있다.

하나는 말씀으로 고민하며 사색하며 치열하게 나가는 것이며

하나는 머리가 없어서 환경이 안갖추어주어서 배운게 없어서

기도로 몇 구절 암송하는 것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따라 제대로 하려는 두 가지에는 역사하신다만

사람의 눈치를 보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게 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게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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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답. 

스위스제2신앙고백서에서

중세에서 가져올 것이 있는가? 

중세 이단이 들어가 있을지 아닐지. 중세 이단이 들어가 있는. 

중세에 신학적 정리가 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 다른 신앙고백서와 비교해서 내용적 차이가 없다. 

 

특징적인 것들을 빼고 . 불링거는 충실하게 성만찬에 대해서 consensus tigurinus 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을 빼고 다른 신앙고백서와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중세에 대한 건전한 입장들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이 기준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제시한 것이다. 

트리엔트 종교회의 끝 무렵 작성된 것이므로 이 측면에서도,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학적 입장을 소개할 때에 정통 개혁주의자라고 말한다. 

개혁주의자랑 정통 개혁주의는 무슨 차이가 있냐? 

종교개혁과 17세기를 고려한 신학적 입장에 서 있다는 것. 

그런데 개혁주의자라는 말에는 19-20세기를 거쳐서 이성주의 영향을 받아서 있찌만 그 범주에서는 개혁파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분리하고자 하는 말이다. 

정통 개혁파를 추구한다고 했을 때에 연속성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개혁파가 생긴 게 아니라 전체 신학적 주제를 따라 체계화된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방법론에 따라서 정통주의가 형성되었고, 연속성의 문제. 종교개혁의 어느시점. 

그 시점을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부터 교파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공유하는 것들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루터파 일치신조를 보면 개혁파와 근본적으로 다르냐? 많은 부분 공통되고 특징적 부분만 다른 것이다. 

교파주의의 신학적 독특성으로 갈라지는 것이지 그 외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파의 정통성이 가미된 연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의 신학과 이후의 신학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17세기 이전까지 그 내용과 개혁파의 독특성과 그 입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면밀하게 논의되지 않는 것들이 세분화된 주제들이 있을 때. 

시대적 이슈와 관련해서는 창조론과 관련해서 대두되는 것. 

종말론에 대한 이슈들. 

이런 것들이 16-17세기의 기본적 틀은 있으나 세분화도니 것들이 확대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원리에 있어서는 근본적 변화는 없다. 

그런 기준에서 이단의 기준도 확인해야 한다. 

 

신론과 기독론 이단은 -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이단이다. 

구원론 교회론 이단은 -

불링거가 17세기 초 도르트총회 이후 신앙고백서를 보았다면 알미니안을 넣었을까? 문제는 우리 입장에서 교파적 차이 문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예민한 부분이다. 

오늘날 항론파 교회가 여전히 있는데 구원론에 대해서, 세미펠라기안인데. 그런 교파들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혹은 과연 거기게 구원이 없느냐는 근본적 질문이 있는데. 

개혁자들의 RCC에 대한 해석적 논의가 신론과 기독론에 대한 이단이 아닌 이상.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선명성을 더 드러내기 위해서 , 대척점의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공격적으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다른 점에 대해서 경계를 하되 그것을 가지고 구원이 없다는 식의 표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원리 - 모든 것이 논리적 체계로 하는 신학. 그 전에는 주제별로 약간의 간격과 연결성이 모호하는 것이 두가지가 공존한다. 

베자의 타플라 - 모든 것을 논리적 체계로 정립하는 것. 

멜랑히톤은 주제와 주제 사이에 느슨한 것이 있다. 

이런 두가지 식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타블라적 체계를 가지고 모든 것들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타블라 중 어느 한것을 오류로 빠지면 전체가 오류에 빠진다는 것.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는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보편 교회에 대해서는 쭉정이만 남아 있는 듯 하는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측면을 이야기하면서 . 개혁에 대상이고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소개할 의무가 있다는 것. 

 

문제는 개혁파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들어보고, 수용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개혁파적인 것을 강조하니까 개혁파만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보편 교회를 위한 신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왜 가장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신학이기 때문에. 그 기준과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현 상황.

스위스3일치신조 - 스위스 개혁파 전체가 알미나안에 대항하는 것. 프란시스 튜레틴. 

하인리히 호팅거. 하이데거, 중심들. 

작성을 했지만 오래 못갔다. 왜? 그 시대가 죽으니까 다음 세대가 완전히 다 이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신학 안에 이성주의가 들어온다. 초기 정통주의 중기정통주의 후기정통주의라고 할때에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초기와 중기 17세기 중후반. 

개혁파라고 해도 이미 이성주의 영향을 받아서 점점 자유주의로 흐르게 된다. 

개교회 안에서 신앙의 전통을 이전의 틀들을 유지는 하지만 

지금은 선택적이다. 현대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는 식. 이런 현상이 이미 100년 전부터. 교회와 국가가 영역이 완전히 구분된 것이 18세기 후반이다. 그리고 그 형태가 강화되면서 신앙교육이 약화되고. 

학생이 세례를 받고 14살 정도에 입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는데. 교회를 나가든 아니든 입교를 하려면 의무적으로 목사에게 가야 한다. 얼마전까지는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데 지금은 가르치지 않는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교단차원의 결정은 고백을 요구했는데 지금은 고백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란

국가와 교회가 분리.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한다. 

지금 학생들이 부족해지고. 보수 신학들이 다 없어진다. 캄펜. 레이든은 자유주의화. 보수주의는 아벨도른밖에 없다. 

학생수부족으로 유지 자체가 안되는 문제. 그런데 화란은 교단 교회들은 국가와 독립된 교회다. 

보수성이 남아 있지만. 독일과 스위스는 국가교회지만ㅇ 화란은 \중립적이고. 미국,캐나다는 교파교회다. 

영국성공회는 국가교회. 자유교회는 독립. 

화란 개혁파가 통합과 분리의 과정을 거쳤지만 왕실은 기본적으로 개혁파를 추구하지만 특성이 완전히. 

그러나 기독교 국가니까 우리와는 다른 분위기. 

미국, 캐나다, 호주는 완전히 다른 교파주의의 교회여서 교단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신학의 색이 달라진다는 것. 

국가교회는 17세기에 분명히 신학자들,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추구하느냐가 교단의 색이 달라진다. 

 

한국

총신은 교단직영. 장단점은 같이 갈 수 있고, 안정되지만 지도자들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색이 달라진다. 

합신은 교단인준으로 지원은 받지만 신학적 정체성은 교수들이 확보할 수 있는 것. 

교단이나 노회가 신학적 정체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개교회중심으로 가서. 

 

유럽은 그래도 공교회적 특성을 가지는데. 목회자 사례 체계가 개교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한국은 완전히 개교회적. 그 노회나 총회를 주도하는 자들의 신학적 입장을 보면서 공교회적 원리로 인해서 신학이 타락할 수 있는 것. 

개교회 중심이라면 개교회별로 지켜질 수도 있는 것. 하지만 보편교회적 시스템은 아주 부족함. 

 

그나마 이상적인 것은. 

화란 아펠도른속한 교단, 캐나다 해밀턴 신학교. 그랜드레피드 보수적으로 하는 곳. 개혁신학. 

 

공교회성의 부재에 대한 문제 진단.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문제. 교육의 부재. 한국교회지도자들의 책임. 

태생적으로 약한 공교회적 인식. 

 

미국 호주 캐나다 장로교회들이 대부분 교파주의다. 

유럽의 개혁파가 왔다면 좀 달랐을 수도 있겠다는 것.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교파주의 신학교의 선교사들이었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연합하면서 했었다. 

분명한 소속과 체계가 있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함. 

그런데 다른 면에서 부흥에 있어서는 이정도로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긍정적 측면도.

그런데 이런 부흥의 급진성이 정말 긍정적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연대 해야 할 필요. 같이 공부하고 하는데 생각 차이가 있어도 앞으로의 교회 방향을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하는 것. 시대적 파도를 넘는 방법이 된다는 것. 

 

스위스신앙고백서 구조적 특징 

1-16 신학적 

17-30 실천적

 

신론에 앞서서 성경론을 모든 주제들에 앞서서 논의한다. 

 

칼 바르트가 불링거의 성경론을 재해석하는 측면에서 계시와 성경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다르다. 바르트가 재해석하는 것임. 

우리는 계시 기록으로서 성경이지 성경은 계시 기록으로서 성경이기에 분리해서 이해하지 않는다. 

불링거는 바르트가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것. 

불링거 자신은 신앙고백서에서 종말론적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설교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냐? 앞에서 말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계시의 내용이고 잘 담아서 설교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혹 설교자가 문제가 있어도 선포된 말씀이 바르다면 그 설교를 듣고 순종해야 함을 말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목사에 대한 3부류 1. 말씀 생활 잘 . 2. 말씀잘 생활은 아닌 3. 말씀도 아니고 생활도 아니고

3번째는 설교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목회자에 대해서 이런 내용들은 2번은 권면해서 개선하도록. 바른 말씀이 가장 중요 -> 교회의 표지이기에. 

 

성경에 충실한 내용을 설교자들이 잘 해석하고 담아내서 설교하는 것이 교회의 표지인데. 그것이 목회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리적 이해 속에서 성경이 해석되고 설교되는 것을 바른 설교라고 하지 그것 없이는 바른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민이 많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으며. 성경의 기록된 내용에 충실히 설교해야 하는 것. 

 

이단들에 대해서 말하는데 프락세아스 아리우스 터키인들 세르베투스 등. 당대에는 현대적 이단들.  

 

불링거는 스위스제2신앙고백서 - 성경에 기록된 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대한 지식. 삶에 대한 지식. 

믿는 것과 행하는 것. 교회의 성숙과 사역, 경건의 모든 의무들에 대한 가르침 교리의 변증 변호 모든 오류들에 대한논박과 권고.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설교자가 윤리적 문제가 있으나. 설교와 설교자를 분리시키는 것. 스위스2신조. 

불링거 ; 우리는 설교된 말씀 자체에 주목해야 하며 그것을 선포하는 설교자를 주목해서는 안된다. 그가 죄인이라도 선포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설교자를 절대로 완벽한 사람으로 낙관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잘 권면해서 개선해나가도록 개선하도록 함. 

불링거 취리히만이 아니라 제네바에서 원리가 적용되어서. 제네바는 더 구체적으로 윤리적 규범. 3달마다 살피도록. 1년마다 신앙점검. visitatio.  치리 모범을 통해서 개선하고 경고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설교자의 윤리적  부분이 공적으로 드러날때에는? 심사를 했으나 . 칼빈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걸렸다면 실질적으로 면직했다. 칼빈은 5명을 면직하다. 프랑스에서 치리복원 회의록 자체가 필사되었기에 현대화하지않으면 읽을 수 없다. 이 문제에 있을 때 면직한다는 기준을 두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그랬는지 확인하지는 못함. 제네바에서는 있었다. 

 

제네바의 목사 2명도 면직 당했는데 다른 지역에서 목회를 함.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40-50-60대인데 그렇게 면직이 되었으나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다시 목사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돕는 제도가 있다면. 

화란 계열의 개혁파는 중간에 그만 둘 때에는 노회가 일정 시간동안 돌봐준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쉽겠는가? 

해벌의 기회는 주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근신하고 하면 다시 회복하도록 하는 제도를 주어야 한다. 

가장 쉬운 것은 교단을 탈퇴하는 것이다. 개교회차원에서도 혼란을 줄이기 위해 타협점을 주는 것이다. 

 

기독교를 규정할 때에 윤리적으로 완벽함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잘못하는데 다시 일어서서 반성하고 나아가는 방향성을 보는 것이다. 연약함과 함께 . 자유로움에 대한 성숙함을 가지기가 힘들다. 

강제로 가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는가. 가정을 개방해야 한다. 하지만 

목사가 거의 신선 느낌. 신비주의. 훈련을 어떻게 하느냐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겉에서 단정하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모범적인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런 교회는 목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그렇게 된다. 교회가 경직된다. 교회는 자율적이고 실수도 있고 그러나 경건한 곳이어야 한다. 경건을 추구하되 너무 무겁지 않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격이 안좋고. 결혼한 미망인의 아들과 딸. 아들은 떠나고 - 아마 카톨릭의 용병으로 갔을 것이다. 딸은 치리법원에서 치리를 받음. 칼빈은 죽을때 의붓딸들을 돌봐달라고 부탁.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노력하는 것이지 이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설령 설교자가 나쁜 사람이더라도 선포된 것이 성경과 다르지 않다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가 설교를 보고. 자괴감이 있어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서 서야 한다는것. 

 

사도들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사도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것처럼 사도적 교부들도 사도와 반대되는 것을 제시하지 않았다. 

모순되는 것을 전달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적이다. 

어떤 기준으로 신학을 규정했는지에 대해서. 사도와 사도적 교부들에 대한 연속성. 

 

불링거의 교회론 : 정통교리의 기준.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공유하는 정통교리의 기준. 하나님의 교회는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확고하고 지속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선지자적 사도적 정통신학적이다.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인 것은 처음부터 교회가 그 사역으로 세워졌고 그들의 가르침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었고 끝날까지 확장될 것이다. 정통신학이라는 것은 참된 가르침을 소유하기에. 이런 표현들이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신학적 기준을 가지고 종교개혁의 사상을 정립했다. 그것을 통해 로마교의 문제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이루고자 함. 

 

50편의 설교에서 이중예정을 정확히 하고 이중예정의 성격을 그리스도 밖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예정론이 칼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스위스제2신앙고백서가 출판될 때에 제네바에도 검토하도록 선제후가 보내다. 베자와 콜라독이 검토해서 보내다. 이것과 관련해서 어느것도 지적하지 않은 것들. 내용적 수정은 아니고 예정론과 그대로 수용되었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장키우스가 예정론과 관련해서 이의가 있을 때에 개혁파가 하는게 뭔지 질문서를 하자. 버미글리가 작성했지만 불링거와 협조하면서 정리를 했다. 이와 관련해 장키우스는 칼빈의 에정론에 충실히 서 있엇고 이 답변서에 동의하다. 불링거는 타락후택론적이고 유기에 대해 extra christum인데 장키우스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불링거는 그래서 목회적이다. 

칼빈이 신학자로서 예정론을 지식적 체계적으로 하면, 불링거는 교회적으로 목회적으로 신자들을 고려해서 다루다. 

엄밀한 예정론을 주장하는 칼빈과 장키우스를 포용하다. 구원의 설명에 있어서 다양성이 있었다. 

 

알미니안이 등장하면ㅅ서 이를 구체화 할 필요가 있어서 도르트신조에서 개혁파가 정리되었으나 종교개혁초기에 그렇지느 ㄴ않았다. 후대의 시각에서 모두를 ㄷ재단해서는 안된다. 교회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중예정의 방식으로 풀어가도록 전제하는 것이다. 

 

스위스신앙고백서

공교회 통일성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통치와 관련해서 

교회의 질서를 위해 필요한 2가지 기능 로마교의 계급적 성직제도와 감독정치를 대응해서. 교회직분과 정치의이해를 가지게 된다. 1. 직분. 2. 정치

 

장로정치 원리는 로마교의 독재를 극복하며 사도적 이상적 정치를 위해 장로정치를 제시한 것이다. 

교회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 

교회정치를 로마교의 사제를 없애고 무질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닌, 이상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가정법원 -

1525년 가정법원 .취리히. 

어떻게 성도들의 권덕을 살필지에 대한 것. 그래서 정부 참여적인 교회법이다. 

제네바에 영향을 미침. 

치리히 법원으로 발전하는데 제네바의 치리 법원 형태로 해석하지만 작동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취리히 가정 법원이 제네바의 법원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다. 목회자 감독 관리 기관 . 

감독이라는 

목회자들의 신학의 건전성을 살핀다. 이런 기구를 통해서 목회자의 신학과 생활의 건전성을 유지했다는 것. 

이런 면을 볼때에 노회 관련해서 노회를 회의로 보기 때문에 노회는 임시적 위험적인데 노회장은 의장의 개념이 있을 때 회의체로서는 없지만 누군가는 행정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칼빈은 감독 개념이었다. 계급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 목회자를 관리감독하고 실질적으로 회의를 주제하는 역할을 했다. 대표목사 개념이었다. 개교회 안에서도 대표 목사라는 개념이고 부목이라는 개념을 없애야 한다.

보편교회의 원리에서 보면 담임목사라는 말은 없어야 한다. 

관리감독하는 기구의 대표자다. 중재의 역할을 하고. 회의의 의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원리들이 노회는 회의체만 있냐? 아니다. 회의체로서는 그렇지만. 노회는 치리회의 개념이다. 상설 기구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대표가 있어야 한다. 어떠한 항존성이 있는 것이다. 

 

치리는 그러한데 집사에 대해서. 집사를 교회 자체에서 세워서 명칭을 집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복지사로서 종합구빈원을 세워서 구빈원의 제정담당과 그 사람들에게 집사 직을 주었다는 것. 

이것이 화란과 스코틀랜드에서 개교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상회와 하회의 개념으로 가는 것. 

제네바는 도시 자체가 국가 개념이지만 프랑스나 화란은 범위와 인구수 자체가 다르다.  상회와 하회 속한 목사 개교회를 관리하는 것에서 노회와 총회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교회사적 이해가 없으니 장로정치 원리와 이해하기 어렵다. 

 

상회와 하회가 청교도들에 의해 발달했다. 

원리는 같지만 각 지역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프랑스개혁교회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부터 국가와 분리된 교회였기에 개교회의 원리. 건전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과도기적 형태에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총회를 하면서 하나씩 정리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1치리. 2치리 발전된다. 

 

피택에 대해서 .

2년 기한으로 1년은 하고 1년은 쉬고 하는 식으로. 연달아서 연속되도록. 

집사, 장로. 당회에서 논의해서 투표를 따로하고. 등등. 

 

장로직, 집사 직을 시키는 것이다. 직분에 적합하게 장로들은 치리를 하고 집사는 봉사하는 것이다. 

직무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표지와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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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전 심방에 대해. 점검의 측면, 성찬 전 심방을 하면 검열 차원은 아니지만 성찬의 치리적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세속화가 많이 들어와서. 1) 인본주의 2) 개인주의-교회는 공동체, 다른 사람과 관계가 어려움 그 안에서 안정감이 있어야 3) 다원주의

 

교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게 도와야 한다.

교회가 혜택을 많이 주나 국가가 혜택을 주나? 국가가 해준다.

교회가 뭘 할 것이냐? 국가와 교회의 세밀한 틈새를 살피면서 공동체를 견고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요하다. 아애 간섭을 안한다. 

 

공예배의 경우. 참석을 해야 하는게 의무이고, 참석을 하지 않으면 양해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이고 어떤 일이든 나눌 수 있고 해결할 수 있고 삶의 위기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에 대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선거철이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것처럼 공약을 한다. 

물질주의적 측면에서는 국가를 더욱 의존하게 된다. 좌파우파를 떠나서 강화되는 형태이다. 교회가 이런 면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그 원리에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 답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가 중요하다.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겠는가가 중요하다. 목회자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이중적 의미 - 자기 삶에 대한 오픈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너무 힘든 것. | 성도와 목회자가 어느정도 거리가 있으면 존경받고 가릴 수 있지만, 공동체성에 대해 목회자가 얼마나 다가가는가. 치리의 성격에 있어서 얼마나 서로를 살피는가. 그런 삶을 사는가에 대해서. 

 

종교개혁시대에 시민이며 교인이었기에 개별 교회 문제가 아닌 국가 교회였다. 

그것이 화란에서는 개교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변환. 

집사회를 통해서. 종교개혁시대에는 집사회가 개별 교회의 집사가 아닌 국가적 차원이었고 모두를 살피다. 

 

여성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바뀐다. - 중세시대에는 사람과 짐승의 중간 정도였다.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종교개혁시대에 남성과 여성을 동등히 말하다. 가정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지다. 

 

목회적 돌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 초대교회 쓰여진 글을 보면, 성도들의 삶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  공동체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 츠빙글리가 전쟁에 나서는 것은 목회적 돌봄을 위해 간 것. 

 

왈도파가 850년을 유지해왔다. 아미쉬 500년. 그 원리가 무엇이냐? 재세례파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한국교회 139년 동안에 여러 상황에서 내부적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다 종합해서 대입을 한다면. 

 

목사들이 절대로 힘을 주면 안된다. 강압 무게로서 오면 안된다. 성도의 교제가 함께함이 좋고 연약도 있으나 같이 뭔가 움직이는 신앙과 삶의 안정감에 대해서. 개혁교회의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위에서 찍어 누르듯 . 교회가 너무 경직된. 그런 것들을 주의해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봐라. 죄인들을 포용하고 책망하시지만 모두가 비난하는 그 죄인들을 품으면서 같이 함께하는 것이다. 개혁교회가 규범적 원리만 남아서 그것을 적용하는 것에만 기계적으로. 이 간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 

 

예정론에 대해서 칼빈과 불링거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이중예정의 개념에 대해서 말했다가 이후에

1556년 summa religion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중예정의 개념을 말하지 않고 선택만 예정으로. 유기는 extra christicum 으로 

그렇다면 둘 사이에 의견 일치가 있나? 

스위스 제2신조에 대해서 베자가 의의 제기를 해야 하는데 안했다. 

찬키우스가 예정론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버미글리와 불링거가 답변서를 정리하고. 

찬키우스는 이중예정을 강하게. 버미글리도 이중예정을 수용. 

불링거는 자기 목회적 입장 속에 예정론을 드러낸 것임. 

 

아우구스부르크 제국회의와 관련해서

불링거의 신앙고백서는 12개의 언어로 120판 정도 출판된 것. 여전히 개혁파 안에서 중요한 신앙문서로 남아 있다. 

 

도르트총회에서 어느 한 편에서 이중예정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 오해된 것. 

알미니안적 입장을 / 알미니안이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불링거에 대해 가져온다. 이것에 대해 해명했지만. 

불링거가 죽으면서 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칼빈의 영향력이 강화된 것과 관련해서. 칼빈의 입장이 더 선명히 드러난 신앙고백서들이 대두되는 것. 

 

예정론과 장로정치가 강하게 드러나 있는 것. 이 측면에 대한 이해가 드러난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칼빈 오페라가 작성될 때 대부분의 연구가. 루터 츠빙글리 칼빈 연구가 중심이었다. 

후기 연구 그 외의 연구들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불링거가 한국에서 실제로 소개되지 않은 것. 영미권에서 자료가 없었고 자료는 다 독일권이었던. 

 

개혁파의 예정론과 장로정치 원리와 관련해서 칼빈과 관련된 신앙고백서적 특징과 교리적 특징으로 칼빈에 대한 중심 속에 개혁파가 소개된 것이다. 그래서 스위스제2신조도 강조되지 않은 것. 

책 한권이다. 사실 너무 방대함. 

 

불링거는 요한계시록 100편 설교를 하면서 주석하다. 

초기 정통주의의 입장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지속적이고 / 사도적 선지자적 정통신앙적이라고 명칭될 수 있다. 

교회가 처음부터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사역으로 세워졌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으며 

세상 끝날까지 확장될 것이다. 정통신앙적이라 명칭되는 것은 교회가 참된 바른 신앙을 소유한다. 

 

정통신학이라고 할 때에는 계승되어온 신앙 정신에 대한 정통신학이라는 개념이 . 

교파주의가 시작될 때에 신앙고백서는 독특성이 들어가는 것. 

17세기 철학적 개념이 정리되었을 때에는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한 것들. 

 

종교개혁이 하나의 종교개혁이고 루터든 츠빙글리든 칼빈이든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해서 면면히 계승되어온 정통을 추구했다. 종교개혁사상은 이 개념을 전제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왜 사도적 가르침. 정통이라는 개념이 왜 중요한가. 이게 없으면 보편교회도 깨지고, 개신교 내의 연합도 깨지고, 이단 대응의 기반도 무너진다. 

 

멜랑히톤이 종교개혁 사상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 초판을 유심히 봐야 한다. 이 영향을 대부분의 개혁자들이 받는 것이다. 

루터파와 개혁파는 같으면서도 다르지. 본래 다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사를 잘못배우니까 공교회성이 다 무너지는 것이다. 이단문제 대응 등에 명분이 다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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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드린다

눈물이 난다

왜인지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기도드린다

다른 기도할 때는 눈물이 나지 않는데

왜 이상하게 나라를 위해 기도할때는

막 눈물이 안에서부터 벅차오른다

 

아마도 하나님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을까 

나라를 위해 울어줄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을까

 

어쩌면 이 나라가 정말 망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먼저 울게 하시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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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날이다 일년에 한번 피할 수 없는 그날

나는 쫄보고 나는 소심하여

피하고만 싶다

그러다 미루다 오늘이 그날이다

 

근 10년 동안 나는 자라지 않았다

여전히 쫄보이며 여전히 소심하다

여전히 대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10년이 지나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한계짓는 것 같다

나 스스로를 한정짓고 국한지어서 가두며

그정도의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가두어 지내는 것 같다

그게 더 효과적이다 

할 일과 안할 일을 구분해주니까 

 

하나님은 나를 쫄보의 심장으로 만드셨다

다른 애들보다 훨씬 나는 쫄보였다 

한때는 관종이기도 했다만 역시나 쫄보는 쫄보다 

역시 지금도 약간은 관종이기도 하다만

 

지금 이런 순간도 즐길 수 있을까 내가. 

오늘은 한번 즐겨볼까나 

어쩌면 미친놈이라고 하니

평범하게 담담하게 하자 

 

그러니까 심장이 쫄ㄹ린다고 하던 일을 멈추지 말고 묵묵히 해나가면서 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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