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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그냥 발버둥 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것들이 헛수고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종말론적 소망 주권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실망일 뿐이다. 의미가 뭐겠나. 

 

시대의 영향력이 그나마 매우 적은 상황에서

 

사실은 경제적인 면에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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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문 
주장 - 자신의 과제 
이슈 - 이 이슈에 대한 대표적 카테고리를 말하는것. 

해설 논문(역사신학)
1단계 - 해설논문은 역사신학에서 필요 : 처음 발견한 문헌 등.
2단계 - 주장논문은 해설논문이 원문을 제대로 읽었냐 하는, 이해를 돕는 배경 이해를 가지고 해재해주는 논문
3단계 - 이런 부분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다. 

주장논문(조직신학)
이슈에 대해서 말하는. 
조직신학 논문은 참이냐 거짓이냐의 싸움에 치들어가는 것. 
그래서 성경, 역사, 조직신학, 체제 등에 능해야 하는 것. 
이거를 다 할 수 없으니까 대표적 학자 하나를 잡고 그 사람에게 빗대어 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이슈가 뭐인지에 대한 명료화. 
그 이슈에 대해 어떤 것이 있다고 카테고리화
그 카테고리들에 대해서 평가 및 자기 주장.

 

아웃라인 자체가 논증 자체이다. 

 

몸과 영혼의 이슈와 관련하여 하나님 형상에 대한 이해의 차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가 몸과 영혼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몸과 영혼의 문제에서 하나님 형상만으로 좁아지는 것. 

몸과 영혼의 각각의 주장에서 하나님 형상을 뽑아내는 것. 초점이 좁아지는 것. 

 

초점을 좁히고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 그 신학 논개에서 어느편을 비평할 것이냐. 

관계적 삼위일체 몰트만은 밖에, 윌리엄 힐은 안에. 

양태론 칼바르트는 안이냐 밖이냐, 

삼위일체론의 접선에 붙어 있는 바르트. 기준 제시를 찾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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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소태산 정리  (0)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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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 

사효론, 인효론 

개혁파는 신효론 

ex opera operato

예배가 제사가 아니다 - 종교개혁

성례는 은혜를 상징한다. 종교개혁을 무효화하는 일을 하는 것. 

제단 altar -> table 성찬상.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다. 매일의 삶에서 제사장의 삶을 사는 것. 성례를 행하는 것만 제사라고 확정하는 것. 

 

라바누스 마우루스 : 수찬자들이 믿음으로 성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의 임재가 믿는 수찬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칼빈은 - 믿음으로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중세의 2차 성찬 논쟁 

투르의 베렝거

성찬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현존하는데 - 본질로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현존한다. 

본질? 본질로 있다는 것이 나중의 로마교의 입장 

성찬의 요소들이 축성 때 변하는데 그 본질이 변하는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란프랑크, 흄베르트. 

외양은 변화가 없지만 본질은 주의 몸으로 본질로 변한다. 

본체 본질 화체설.  

외형은 같지만 본질이 변했다. 본질과 본성은 같은 것. 

인성으로서는 그렇지만 신성으로서는 다르다. 

 

베렝거 영적인 현존을 말하다. 

 

화체설이 로마교의 공식 교리로 채택됨. 

- 투르의 힐데베르 화체설 (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 제4차 라테란 공의회. 공식적 교리.

818년부터 시작된 화체설이 11세기 거쳐 13세기에 공식화된 것이다. 교의화.

 

토마스 아퀴나스. 

공식적 교의로 된 것을 체계화한 것. 질료와 형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여 성찬을 설명.

축성 시에 질료는 그대로 있지만. 형상(idea, essentia)가 변하는 것.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 

그 새로운 사조에 맞게끔 성찬을 설명해 준 것이다. 중세적 종합.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천주교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음. 

 

시행을 하면 그대로 역사한다. 구약에는 할례를 받으면 . 

성례론과 로마 카톨릭적 이해를 반영하는 듯 하다. 

 

소위 준비주의 . 성례 자체가 효과를 낸다는 것. 예배가 제사다.

 

중세의 세례 이해와 문제점. 

기여 ; 표로서 세례를 강조, 유아세례에 큰 기여. 

 

사효성에 근거한 세례

세례를 베풀면 그 자체가 구원을 준다는 세례중생설

 

한국 로마교 전례 역사에서. 중국 신부 주문모를 모셔와서 미사함. 이후 김대건. 

제2바티칸 전이라 라틴어로 해야 하는데 다 못 알아 먹는다. 

뭔가 주문을 외워야 예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각국 언어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주문모는 라틴어로 예배함. 아무도 알아먹는 사람이 없음. 기계주의 의식주의. 

 

세례 중생설 (baptismal regeneration theory)

세례의 표가 그것이 표시하는 바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세례를 베풀면 그 시행 자체로 중생이 일어난다. 

 

이거 없으면 아직 교회에 있는게 아니다 -prot> 아직 세례를 못받았어도 교회에 있다면 교인이다. 

세례를 아직 안 받았으니. 세례를 받음은 full membership을 가지는 것.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는 의미. 

성도들을 계급화해서는 안된다. 암흑리에 초신자가 있고 상급신자가 있고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례를 받으면 중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주입된 은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이 공로가 주어진다. 세례를 받게 되면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혼에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는 것.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 

종교개혁은 이런 특성이 있는게 아니다. 사제는 임직시에 그것이 주어진다. 목사는 그렇지 아니하다.

 

세례는 매우 중요하나. 그것에 대한 사효론이 문제고, 세례가 중생이다는 아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불멸의 특성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믿을때. 신효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믿기 전에 성령세례로 믿게 되는 작업.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미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안흔 교회 바깥에 있다면 

 

육체, 부패한 인간성. 

 

예배는 

 

성례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생한다. 진정 믿는 사람에게만 세례가 주어지는 것이다. 언제든지 안으로 향해서

그러나 말씀은 안과 밖으로 간다. 

 

성례주의 - 의식주의. 말씀이 약화되어지는 것. 

결국 천주교 체계에서 미사는 십자가를 재현하는 것. 

사소한 날마다의 죄를 용서하는 효과가 있고 중죄에 대해서도 참으로 유효한 구원적 효과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 

 

평신도라는 용어. 

모든 성도들에게 선지자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서 전하는 것이다. 

종교개혁때에 말하기는 하였으나 아주 강하게는 못한 것.

우리가 다 왕임을 강조해야 한다. 종교개혁에서는 이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전부 다 반역죄가 되었을 것임. 그래서 말하지 못함. 

 

이런 세가지 역할을 보편적 직임이라고 말한다. 

개혁신학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상. 교회에서 맞는 특별한 직임. 

모든 성도는 다 보편적 직임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다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왕이다. 

개혁파는 이를 강조해옴. 한국은 이를 덜 강조하다. 보편적 직임. 

로마교는 몇몇만 보편직. 이를 없애고서 이 의식이 없다면. 

왕에 대한 직임을 - 성도들과 공론할 때에 아담을 세상에 주셨을 때 온 세상을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라고 하심.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의 특별한 영역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이 구현되게 하는 왕역할. 

피조계 전체를 우리가 분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는 것.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 

제사장의 의의 - 가정, 교회 전체가 그렇게 가도록 하는 것.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포함되는 것이다. 기도의 제단이라 할 때에. 제단은 이제 완성된 것이고. 제단을 쌓는 게 아니다. 

 

성체 보관함을 들고 일년 한번씩 동네를 돈다. 그러면 마을의 신자들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에 절한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미신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파서 못 오면 남겨놨다가 전달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개혁자들은 거부한 것. 

성찬을 못하면 심방은 반드시 하며, 다음번 성찬때 오도록. 

 

입교 이후 성찬하는 이유? 고 자기를 살피고서야의 능력이 되어야. 고전 11장. 

중세교회의 성례 이해. 기계적인 성례론 성례주의. 세례 중생설이 중세의 기본적 세례 이해. 

세례는 영적인 사건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이 거기 필요하다는 것. 신앙이 없으면 안된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성례 이해의 공통점. 

성례의 절대적 필요성. 

1524년부터는 더 말하는데 재세례파가 유아세례 인정 안하기에 .

논쟁속에서 더 나타남.

 

세례 때에 죽고 살아난다. 

영국 성공회는 천주교적 세례 중생설을 가지는 것. 

 

루터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 

바르티안은 날마다 죽고 사는 것. -> 칭의가 매번 계속되는 것. 

 

신약 성경에 명확히 유아세례를 말하지 않지만 암묵리에 고백하는 것이다. 함의를 말한다는 것. 

재세례파는 열광주의자. 

 

세례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 생애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임.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는 사제다. - 루터. 

 

성례주의의 잔존. 

루터파는 로마교의 성례주의적 성례 이해를 극복하였으나 성례주의가 잔존하여 세례 자체가 무슨 효과를 내는 것으로 표현했다. 

개혁파는 성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계적 성례론을 말하지 않음. 

 

유아세례에 대한 언약적 이해. : 구약의 할례에 대한 연속성으로서. 은혜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할례로서 인친다면 이를 세례로서 나타낼 수 있다는 것. 

 

세례는 외적이고 법적 관계 언약의 표이다. 생명적 관계의 표와 인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법적 관계에 생명적 관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명적 관계 없이 법적인 관계만 있을 수 있다는 은혜언약의 이중적 측면. 항상 이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법적 외적 은혜언약은 반드시 생명적 언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적이나. 항상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시적, 비가시적 교회와 연결되는 것이다. 

 

성찬에 대한 칼빈의 이해. 

 

공재설은 기본적으로 화체설과 같이 간다.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대로 남고 동시에 공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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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죄악을 몰아내라

1.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1-4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는 내보내라는 단어이다. 

하지만 레위기에서는 부정한 질병이 있을 때에 격리를 시키고 다시 돌아오게 했다. 

여기서 의미하는 내보내라는 말은 공동체 안에 죄가 있을 때에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죄가 있다면 그것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드시 내보내야 하는 쫓아내야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해 민감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가만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 죄를 멀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2. 자복하라

죄가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 모두는 죄를 짓는다. 죄를 사랑한다. 

우리가 죄를 많이 지어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7절은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라고 말한다. 

죄가 있으면 그것을 자복해야 하며, 그 값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값을 갚을 수 없다. 돈으로 물어낸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죄의 값을 온전히 치를 능력도 없는 죄인인 것이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완전한 책임을 지실 수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책임져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자복이다. 자복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죄에 대해서 애통해하는 것이다. 슬퍼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책임져주셔야만 했던 그 죄에 대해 애통하며 그것을 미워하길 결단하는 것이다. 

 

3.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민수기 5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의심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하나님은 죄가 있을 때에 그것이 확인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숨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숨기기 바쁘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숨기려 애썼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놓으며 중요한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버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와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요일4:18은 말한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냄새나고 더럽더라도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속여도 이 믿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우리의 죄가 드러나도 괜찮다. 죄가 드러나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사탄 앞에 당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반드시 드러나는 죄 앞에서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애통하며 미워하면서도

절대로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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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가 종교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 국가의 간섭을 피하면서도 지나친 방임을 피하면서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피선교국가의 다원주의 사회이고 종교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에 . 

건전한 종교를 육성하고 교육하는 구조인데 . 이단규정을 하더라도. 

국가가 관여할 의무가 있느냐에 있어서 현실적 부분이 필요함. 

90년대 오대양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국가가 관여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에서 국가의 사법적 판단을 받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건전한 종교를 국가가 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종교의 다양성이 인정되기에. 

한국교회는 한번도 국가와 밀착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실제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신학적 정리가 필요하다. 

정교분리에 대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원칙을 이야기하고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공적 사항에 대해 협력할 수 있고 견제할 수 있다는 신학적 원리가 작동하려면 국가보다는 교회와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어찌 표현하는가에 대해서.

 

교회가 신학적 판단을 정해야 하는 문제다. 균형적으로 되겠느냐에 대해서 의문은 된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교회에서 정치인들이 와서 간증하고. 

포항중앙교회 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 방산업체 비자금을 거기 숨겨놓음. 

 

기독교 정당이 나타난다면 재세례파나, 자유주의에서 나와야 하는데. 

보수주의에서 정당이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상황. 

 

국가와 공적 책임을 지는 면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지. 

이를 위해 협의체를 만들었는데.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욕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되든 안되든 신학적 원리에 따라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 인식에 대한 부재가 있다. 연속성을 생각한다고 하면. 착한 목사 컴플랙스. 사실상 아무 일도 안하게 되는 것이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사는게 좋다. 그것이 신상도 편하고 자유롭고. 

교회의 틀과 규범을 마련하는 것.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민하고 실패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역사를 일으키고 일이 일어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종교개혁자들은 책상 앞에서 있지 않았고 나서서 일했다. 적극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다. 

 

불링거가 직분을 인정하면서 의무인 이유가 궁금하다. 취리히 교회는 국가적 빈민 복지사가 감당했고 제네바는 복지사들에게 집사를 한다. 취리히나 제네바 모델로 교회 개척의 모델인가? 

국가의 개념이 강조된 것은 . 종교적 역할을 국가가 대처하는 것은 계몽주의 이후 18세기다. 

그 이전까지 교회가 행복을 준다고 했는데 이제는 국가가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지에 대한 개념이 국가로 전환된다. 

노동과 관련해서 19세기 중후반의 발전. 점차 발전하면서 오게 되다. 지금은 분화된 형태이다. 

 

한국교회가 국가가 하지 못한 것을 해온 것. 선교원->유치원. 지역아동센터->국가화. 

경제 문제에 대해서 독립성이 없어서 국가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형태로 가고 있는 것. 

이에 대해서 끊을 수 있는가? 카이퍼의 영역주권 관련해서. 그 영역이 추구하는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리. 한국 종교 영역에서는 인정될 수 있는가? 고민이 된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감당하기에 지원을 받지만 교회의 정체성과 신앙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것. 

대안학교가 언제까지 갈 수 있는가. - 국가로 지원받으면 실제적으로는 흡수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어떻게 유지하는가? 교인이자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기에. 

 

교회 안에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안정되게 신앙생활 하는 집사직으로서의 개념. 

제네바나 취리히. 신칼빈주의에 가까운가 브루넨에 가까운가? 

종교개혁자들의 개념은 신칼빈주의에 더 가깝다. 지금도 양로원이나 병자들 심방.은 목사의 역할이다. 유럽에서도. 

스위스나 독일은 공공적. 설교는 1주 1회 하더라도 양로원, 심방, 병자, 상담 등은 목사에게 서구에서 의무로 되어있다. 요청하면 가야함. 교회를 안다녀도. / 교회를 안다녀도 목사는 다 안다. 

화란이나 영국은 

 

우리는 가만히 있고자 해도 사회가 가만히 있고자 해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럴 때에 신칼빈주의가 더 효용적이다. 

한국은 기독교적 토양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국가가 동의 없이 침범을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 - 언론, 교육, 정치참여. 

 

복음은 삶의 체계와 분리되었나? 그에 따른 체계와 신념을 가지고 그에 따른 삶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그 지식이 의식과 신념과 체계로 나와서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가? 

 

경건주의가 결국 중세 수도원주의로 간다. 교리도 포기하여 이상하게 간다. 

우리의 고유성을 지켜도 동 시대의 일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우리의 고유성을 지켜나가는 것. 

그러면 성도들이 세속에 살면서도 우리 신앙 정신에 따르는 신념체계.

구원에 관련해서는 . 삶에서는 신앙은 삶의 체계다. 

 

650년동안 왈도파가 핍박 속에 살았다. 어떻게 존속하는가? 

흑사병이 있을때에 가족의 절반이 죽는데. 살 수가 없는 구조에. 

 

한국 신앙의 형태는 거의 구원파에 가깝다. 

 

미국의 경우. 시대가 세속화되고 교육이 붕괴되자 ->홈스쿨, 기독교학교로

우리는 국가도 작고 해서 전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심방에 있어서 ; 목회자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 

치리의 목적은 회복이다. 그런데 다 공개해서 회복할 수도 있으나 공개하지 않을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죄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들춰내서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몇사람이나 하겠나.

회복이 목적이라면 이 목적을 위해서. 이 사람도 지키고 공동체도 지키면서 다스리고 있음을 인식할 정도로. 

 

보수 중도 자유. 

 

신앙교파화는 이미 1529년에 시작되었다. 

1. Rcc - prot

2. prot = Lc, Rc 

3. Lc = philipist, gnesio L

 

1560년대 루터파와 필립파. 

그네시오 루터파 논쟁의 종식이지만 이 세가지를 다 담고 있다. 

이를 종합하는 면에서 1580년 루터파 일치서. 모든 신앙고백서들을 담아놓는 신앙고백서 모음집이다. 

루터파 정통주의가 형성되었을 때에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루터파 신학이 더 정교해진다. 

켐니츠. 조직신학 책을 하나 쓰면 20권씩 쓴다. 

성경의 모든 신학책들을 백과사전으로 하는 시도들.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신학을 더 체계화하다. 

개혁파나 똑같다. 

정통주의는 철학적 방법론에 따라 신학적 주제를 서술하는 것. 

그러나 17세기 중후반에 가면 이성주의 영향으로 루터파나 개혁파나 비슷한데 

개혁파 정통주의는 루터파도 아주 정교해진다. ]

 

중재신학 중도신학 자유주의 

3가지 경향성이 유지된다. 개혁파도 후기 정통주의로 가면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교파주의적이면서도 3가지 경향성이 한 경향 안에 공유되고 있다. 

재해석을 하는가 어떤가.  

 

개혁파 중도주의와 루터파 중도주의를 보면 우리와 더 가깝다. 

일치신조를 보면 성만찬과 칼빈의 이중예정 제외하면 사실상 다 받을 수 있다. 

 

교파주의 전개 과정에서 필립파와 순수루터파의 것들을 초점을 두고 평가하지만. 루터파가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정리한 것이라 했을 때 이미 종교개혁이 하나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신학의 독특성으로 이 차이가 나왔다는 것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루터파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른가? 종교개혁사를 보고 할 때에. 

 

칼빈주의 독일 

 

루터파는 감독제에 가깝다. 그러나 로마교나 성공회와 같은 계급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개방성 정체성 구체성 이 잘 평가되어야 한다. 

 

신앙고백서를 다양하게 읽히는 것은 좋은데 

전문 신학 서적은 목회적으로 안좋다. 단절이 생긴다. 

개별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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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의 다니엘 기도회를 참여한지 3년차.

이곳에 와서 교회서 하기에 참여한다.

 

이른파 개혁주의를 따르는 분들이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는 것과

다른 측면에서 다른 입장에서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미 고신에서 잘 비판해주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른파 무덤파의 입장에서

무덤파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다니엘 기도회를 비판하고 싶다.

 

2023 다니엘기도회

한마디로 말해서 영성이 떨어진다.

 

평이하다. 

쉽다.

가볍다. 

감정적이다.

 

이전에는 다른 의미에서 

들을게 있었다만

이젠 들을 게 없다.

 

그래서

이젠 누구나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 말이다.

공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공격받을 만한 내용 자체가 없으니까

운영은 쉬울 것이고 좋겠지 아마.

 

하지만

그것이 본래 가졌다고 들었던

생명은 없다.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케하며

움직여가는 꿈틀거림은 없다.

좋은 얘기 들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다니엘 기도회는 끝났다.

결국엔 돈잔치로 마무리될 것이다.

시간과 정성들이 너무 아깝다.

 

두 트렉이 있다.

하나는 말씀으로 고민하며 사색하며 치열하게 나가는 것이며

하나는 머리가 없어서 환경이 안갖추어주어서 배운게 없어서

기도로 몇 구절 암송하는 것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따라 제대로 하려는 두 가지에는 역사하신다만

사람의 눈치를 보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게 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게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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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봉선

물가에 가면 만날 수 있나
찾아가 보았더니
말려진 단지에 숨었나보다

 

반그늘가에 만날 수 있나

건드려 보았더니
깜짝 놀라 튀어나가 버린다  

물.봉.선. 너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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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5장 

 

죄를 몰아내라!

 

1.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사람은 다시 돌아오게 함.

다른 의미가 있음. 죄에 대한 공동체 안의 죄에 대한 것.

 

2. 죄가 있으면 분명히 지적하라

죄는 자복, 자백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반드시 갚게 하는 것.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미 갚아주셨다. 

우리가 할 일은 자백하는 것.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내가 정말 죄인임을 말할 때에. 회개할 때에 우리를 회복해주신다. 

 

3.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간통. 바람을 피우는 일. 증거가 없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극적인 상황에서 그 임재를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3회 반복

 

내 안에 죄가 있는데 드러나지 않을 방법은 없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신다. 

 

그런데 그 방법이 사랑이신 것이다. 

 

요일4장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책임도 예수님이 함께 져주신다. 죄가 있으면 드러내고 고백하고 그것을 끊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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