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혼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
오늘 말씀은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1-4절까지 읽었습니다만 전체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9절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이고
10-22절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이고
23-26절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현재와 미래와 끝날까지 신실하심에 대해 찬양하는 시입니다.
세상의 처음부터 모든 중요한 역사들을 모아 세상의 끝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사탄의 세상에는 감사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오늘이 감사에 숨겨진 우리가 감사할 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첫째로, 감사는 배우는 것입니다.
저절로 감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감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감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감사함을 자꾸 배우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감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주의 전체 역사가 감사 덩어리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하나의 노래와 같다.
내 삶이 오늘 환경 속에서도 모든 부분에서도 감사함을 찾아내어 그 감사함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초등교사 문제 : 뉴스에서 말하길 –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칠 수 없는 환경이다. 우정, 용서, 예의, 인내, 감사 이런 것들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려울 수 있지만 배우게 끔 해야 하는 것이 학교의 교사의 역할인데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다는 좌절감.
세상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뜻하시는 것을 가르치는 것 자체를 막아 섭니다.. 시간이 지나면 교회의 설교시간에서도 말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문제를 삼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것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떠하던지간에 감사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나 스스로에게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 말씀에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했습니다. 내 안에 감사가 메마르기 시작할 때부터 뭔가 문제가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안에 불평불만 짜증들이 가득 차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가 뭔가 문제가 있구나 지금 조심해야 하는구나
마틴 루터는 말하길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 내 안에 감사가 없다면 내 내면은 마귀의 세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 마귀 우리의 대적에게 내 내면을 내어 주는 것이 됩니다.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감사가 내 안에 차고 넘쳐서 감사할 수 없는 형편에도 감사를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 팁을 드린다면 짜증이 막 밀려오는 그 순간에 욕을 하거나 짜증나는 말을 하지 마십시요. 대신에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이고 하나님 진짜 감사합니다. 마치 반어법처럼 비꼬는 것처럼 해보십시요. 이게 큰 도움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더 자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올라옵니까? 어머니들이 밥을 힘들게 차려서 왔는데 젓가락만 깨작깨작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올라옵니까?
열심히 뭔가 숙제를 하거나 작성을 했는데 클릭 하나 잘못해서 전체가 다 날아가버리는 그런 상황에 어떤 마음이 올라옵니까?
바로 그 순간에 그 상황에서 불평 불만하는 짜증내는 말들이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서 미쳐버리겠네요. 해보십시요. 내 안의 짜증이 나를 더 크게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좋은 효과를 가집니다.
나 스스로에게 감사를 가르칠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 교회 전체가 함께 감사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배워야 할 것입니다. 개인은 힘이 약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그런 분위기와 습관을 가진다면 우리가 함께 세워져 나갈 것입니다. 감사를 공동체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예배 드릴 때에 자꾸 뭐 말하라고 시킵니다. 귀찮지요. 이거 뭐 좀 어색하기도 하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해보고 연습해보고 배웁시다. 우리가 함께 감사합시다.
우리 서로에게 감사합시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형제, 자매, 자녀, 부모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둘째로, 감사는 능력입니다.
이시형 박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정신과 의사. 뇌 과학자. 90세까지 건강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세로토닌이라는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대해서 말합니다. 세로토닌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 세로토닌은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물질입니다. 뇌에 세로토닌이 부족한 사람은 말하자면 ADHD와 같은 모습입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든 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술, 담배, 게임,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이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폭력적이게 되고 날카롭게 되고 쉽게 실증을 내면서 점점 악화되어 갑니다. 우리 주변에 세로토닌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세로토닌아 좀 나와라 기도해주십시다.
그런데 이 이시형 박사가 하시는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정신과에 가서 세로토닌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거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분이 말하길 세로토닌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우리 몸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세로토닌은 가장 평안한 감정을 느낄 때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지는 그런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그래서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시형 박사님은 이 세로토닌이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감사하는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평안하고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분비되는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가 감사의 습관을 가질 때에 더 깊이 더 많이 더 자주 감사할 때에 우리 뇌에서 세로토닌이 마구마구 분비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능력과 힘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공부도 더 잘하게 되고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더 분별력 있게 알맞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와 관계되어서 감사가 능력을 가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하게도 이 감사가 나타날 때 일어나는 영적인 원리가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감사할 때 능력이 일어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도행전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도 불평 불만 짜증 원망 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미친 사람들처럼 한밤중에 다른 사람들 자는데 막 방해하는 것 같아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가장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밀려오고 하나님께 이게 뭐에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게 뭐에요 하면서 불평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바로 그날에 이들은 절대로 입술을 더럽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 뿐만 아닙니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기도하는데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린다. 위기의 상황에 그는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던 이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기적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찬양할 때에 감사할 때에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뇌에 세로토닌이 감사할 때에 나오게 하셨을까요? 감사할 때에 왜 우리에게 능력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비밀들이 심겨진 것입니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그것에 빠져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듭니다.
셋째로. 감사는 신앙고백입니다.
성도가 감사하는 이유는 감사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감사를 배워야 하는 것은 뇌의 세라토닌이 분비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맛보기 위해서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적인 차원에서 얻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시편 136편은 아주 장황한 시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구원하심. 하나님의 영원히 지키심 다스리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 내가 지금까지 있어 왔으며 내가 현재 호흡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 안에 살아갈 것을 믿는 고백이 바로 오늘 말씀이 말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감사 기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감사 기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감사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죽음을 고통을 앞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믿음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왜? 그것이 하나님과의 신의를 의리를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적이나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기쁘게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감사했던 것이 이들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의 간증을 나눕니다. 어떨 때 속상한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을 당했을 때에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의 제목이 처음에는 불평과 불만입니다. 간구를 가장한 요청을 가장한 불평과 불만 원망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시간에 나를 만져주시기 시작하면 놀라운 기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나 스스로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비천함 가운데 기억해주셨는지 얼마나 나를 죄의 속박과 권세 가운데 건져주셨는지, 나의 작은 필요에도 응답하셨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보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나의 응답이시다. 나의 기도 제목의 본질이 그분이 주시는 무엇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시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시다. 깊은 기도로 들어갈 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관계를 가지시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이용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가지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가장 비천함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빼먹기 위해서 찾아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건지십니다.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먹이십니다. 입히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부모와 자녀로서 신랑과 신부로서 주인과 종으로서 가장 깊고 친밀한 관계 가운데 들어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에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믿음 없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안에서 다시 살 것을 안다면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내 생각과 뜻과 방식과 계획과 예상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습니까? 감사하십시요. 어쩌면 내 평생이 그런 문제와 씨름하다가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신의를 지킨다면 감사하십시요. 감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존재를 드러냅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