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답이 안나와도 가야 하는 이유.

 

기쁘게 반보 앞으로.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1: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서론

 

나오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원래 유다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몇째아들? 4번째 아들입니다.

나오미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입니다.

유다 지파의 땅인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 땅에 기근이 생겼습니다.

 

예전에 한국이 아주 못살았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일본으로도 많이 갔습니다. 변호사, 사업가 잘 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미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거기서 쓰레기를 뒤져도 산다. 세탁소를 해도 산다.

우리 친척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면 산다. 너무 풍요로우니까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되게 너무 좋은 땅이니까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이와 같이 나오미의 가족들도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이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갑니다. 도저히 살지 못합니다. 모압이라도 가서 밥이라도 먹고 살아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거기서 잘 살았습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성장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그곳의 처녀를 구해다가 두 아들 모두 결혼을 시켰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하면서 나오미는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갑자기 자기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어버립니다.

 

나오미는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량한 신세에 처하게 됩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나오미가 갑자기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 한 소식이 들려 옵니다. 원래 자기가 살던 땅인 베들레헴 땅이 유대 땅에 기근이 그치고 예전처럼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모압 땅에서 사는 것보다, 여기서도 못 살지만, 내 고향 땅에라도 돌아가서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결심합니다.

 

그러니까 나오미의 신세는 어떤 신세였습니까? 그녀는 이판사판. 이래도 거지꼴, 저래도 거지꼴입니다. 남편도 없고 두 아들도 없습니다. 너무나 외롭습니다. 외로움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얼마나 일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나오미는 이제 나이가 차서 다시 결혼하지도 못합니다. 그녀는 정말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나는 이제 내 고향 유다 땅으로 가려 한다. 너희는 아직 어리고 젊으니. 원래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다시 결혼을 하고 남편을 맞이해서 그래도 먹고 살수는 있지 않냐. 나를 따라와서는 나 혼자서도 살 수 있을지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너희가 나를 따라와서는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하나님이 너희를 축복해주시길 원한다.

나오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로서 이 두 며느리를 축복해주고 떠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웁니다. 여성들이 잘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슬픈 상황에서 함께 잘 웁니다. 이 세 여인들도 그랬습니다.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인들의 장기가 뭐냐? 우는 것입니다. 울면서 말합니다. 어머니,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 가겠습니다. 어머니 혼자서 어떻게 가시려고 하십니까?

며느리들도 참 착하지요. 심성이 곱습니다. 시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정말로 위하고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가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가라. 가야한다 며느리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를 보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아프다. 죽은 내 아들들이 생각나서 내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다. 그냥 가다오. 제발 가다오.

나오미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둘째 며느리 오르바가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의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훔치며 시어머니 곁을 떠납니다.

 

하지만 첫째 며느리 룻은 여전히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은 아주 강력하게 시어머니를 설득합니다.

뭐라고 말하냐? 어머니 죽는 곳에서 나도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나오미는 룻의 결심을 보고. 큰며느리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룻과의 동행을 결심합니다.

둘이 함께 유다 땅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본론

룻은 왜 그랬을까? 룻은 왜 그랬을까?

룻이 말하는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더 나아가

우리는 이 룻의 말에서 이 룻의 마음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가 오늘의 말씀의 주제입니다.

 

첫째로 알아야 할 것은 룻은 분명히 나오미를 따라가서는 답이 안나온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룻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처한 상황을 알았습니다. 이미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와서 정착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도 거기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신은 외국인으로서 어떤 차별을 당해야 할지도 잘 아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알아야 할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작은 며느리 오르바를 설득하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인정으로는 오르바도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나는 것은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며느리 룻은 착하고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나쁘다는 그런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차원이라면 오히려 룻이 더 나쁜 며느리일 것입니다. 이전의 과거를 다 잊고. 자신이 생명보다 더 사랑했을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을 기억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무의식하면서 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끔 하는 존재 자체로 함께함 자체로 얼굴을 보는 것 자체로 자기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가 룻이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친척들 친구들과 그나마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고 살 수 있을텐데, 저 처녀는 누구요? 하고 물어보면 반드시 자신의 고통을 말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상처를 다시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룻이었습니다.

 

룻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오미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굴복시켰습니다. 무슨 말로 굴복시켰습니까?

룻은 모압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압은 그모스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룻은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론과 결혼해서 사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알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룻은 그 하나님을 따라 가는 /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가려고 하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환

우리가 이 지점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착하든 나쁘든. 능력이 있든 능력이 없든. 그가 어떠한 사람이던지 간에.

그는 하나님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룻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간 것입니다. 사실 시어머니를 따라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룻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았을까요?

그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세월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아마도 룻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랄론가 기룐을 키우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가르쳤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룻은 모압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이방인이었습니다. 룻은 고작해야 몇 년 정도만 하나님에 대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경험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녀의 신앙적 지식의 연약함과, 여성이라는 노동력이 없는 신체적인 연약함과, 이방인이라는 신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룻은 그의 동서인 오르바와 다르게 뭔가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를 본 것입니다. 얄팍하게 어림직하게 얕은 지식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본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답이 나오지 않는 길을 자처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의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른 것. 옳은 것.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부분. 의리로 이루어지더라.

이것은 인간적 의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리다.

 

답이 안 나오는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그 자리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이다.

 

진보에 대한 확신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은 있다.

그 약속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시고 완전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실 그 하나님의 뜻. 그 날이 우리가 이 두 눈으로 맛보지 못할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룻과 같이 세상이 던져주는 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바라본다. 희미하게 바라볼 수 도 있고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고 확신이 100프로가 아닐 수 도 있다.

연약할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자들인가/ 어떤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분 곁에 머문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 곁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진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고 그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죽으심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의 무덤 곁을 누가 지켰는가?

남자 제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도망갔다. 능력있고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보고서 모두가 다 도망갔다.

그러나 연약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그 눈물 많은 나약한. 쓸모 없는 그 여인들이 그 무덤 가를 지키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여인들의 후손들이다. 우리의 영적 스승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안드레나, 요한과 같은 잘난 선지자와 뛰어난 학자와 능력 있는 설교자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닮은 사람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의 영적 계보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이 연약한 여인들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 여인들의 마음을 아신다. 그를 사랑하여 그를 사랑하기에 의리를 지키는 그 여인들을 아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오신다.

세계 역사의 가장 놀라운 비밀. 세계 역사를 바꾼 최상의 사건. 부활의 역사가 가장 먼저 이 연약한 여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의리를 지키라. 능력 없어도 괜찮다. 걸리적 거리는 사람이라도 괜찮다. 좀 천천히 느리게 가면 됩니다. 다만 예수님 앞에 의리를 지키라 그분 곁을 떠나지 말라. 그분과 함께하라 그분을 사랑하라.

 

답이 나오지 않아도 그 길을 걸어가라.

 

적용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나아옵시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이고 우리는 왜 여기 모여 있으며, 우리는 뭘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곳은 영광에서도 가장 시골인 대마면입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곳에 남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답이 되는 잠재력이 있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영광 읍내라도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룻은 모압에 남지 않았습니다. 답이 나오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남편을 만나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과부로 평생을 살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골에 사느냐 도시에 사느냐 그 문제를 가지고 누군가를 비하하고 누군가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내 마음이 향하는 것이 하나님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향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하지만 내가 향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가치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착하고 나쁘고가 아닙니다. 오르바냐 룻이냐.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그리고 그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느냐입니다.

 

의리라는 것은 답이 나오는 걸 보고 지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의리는 답이 안나올 때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고수하는 것에서 나오는게 의리입니다.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십시오.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는 것은 멀리 있는게 아닙니다. 약한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무모하게 어리석게 나아가보십시오. 그렇게 함께 조금씩 나아가는 축복있으시길

그 의리로 살아가는 우리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

'구약설교 > 역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상 10:1-10 11:1-5  (1) 2023.04.15
반응형

솔로몬이 잃어버린 것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3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4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5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6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7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8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9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10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S.1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산다.

본문 설명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그의 지혜와 그의 행적을 칭찬하며 그에게 많은 선물을 한다.

10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한 달란트 34kg - 20120 달란트 :  24백억. +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

4000?

열왕기상은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솔로몬을 띄워준다. 그의 지혜와 명예 하나님 앞에서 했던 축복의 말들. 그의 지혜로운 판결,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관계, 애굽과 동맹 등 - 우상향곡선/

 그러한 모든 것들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이 10장이다. 스바 여왕. 신비의 나라. 애굽 밑쪽에 있는 미지의 나라. 강대한 나라. 그 나라가 찾아와서 4천억원정도의 뇌물을 바치고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형성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는 것. 나라로서의 최전성기다.

 그 누구도 솔로몬과 같은 영광을 누린 왕이 없고 그와 같은 지혜가 없고 그가 누린 것과 같은 태평성대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태평성대의 시대를 살아간다. 마치 솔로몬의 시대와 같이 말이다.

뭐만 하면 k-음식 k . k 요리 k 반도체 k drama k 영화 등등

 한국이 정말 부강해지고 태평해졌다. 해외여행 출발 기준 2016. 10명당 4명은 해외여행. 2천만명. 1인당 평균 125만원 쓰고 온다. 우리도 매년마다 좋은 곳에 가서 여행한다.

 우리 집의 개가 있는데 사료를 안먹고 고기만 먹는다. 개들도 잘먹고 잘산다. /-/ 남는 밥도 안먹이는 집도 있다. 너무나 너무나 부강하고 너무나 부유한 삶을 살아간다.

 앞으로 세대가 불안정한 이유가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부모 세대의 수입보다 다음 세대의 수입이 더 많아지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에서부터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느낄 뿐이지. 공장에서 일하고 노가다를 해도 다들 해외여행 가고 잘 먹고 잘 산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면 누구나 일하면 다들 먹고 살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평화의 위협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살아가지도 않는다. 우리는 너무나 평온하고 부유하고 좋은 시대를 산다. 다들 다이어트 한다고 난리지 못 먹어서 난리가 아니다.

 

 외국에서 한국에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말 한국 사람들 대단하다고 한다. 정말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한국 안전하고 살기 좋고 깨끗하고 부자고 좋다고 한다. 수많은 외국 유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영광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돈 벌기 위해 있다. 마치 이런 말씀과 같이 말이다.

 

23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24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25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 여러분 좋다고 여기나? 우리나라에 대해서 신뢰가 되나? 이 사회에 대해서 기대를 하나? 이 사회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은가? 아니다. 뭔지 모르지만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는 것들이 있다. 아니면 걱정을 하고 있나? 이 나라가 이대로 가다간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이대로 가다간 무너질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나? 그게 뭘까?

 우리가 솔로몬과 같은 영광을 살아가지만 이 영광 속에서 뭔가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안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S.2 솔로몬은 영광의 때에 무너진다.

11:1-5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은 이러한 영광의 때 바로 이후에 무너지게 된다. ? 그에게 많은 이방 여인들 아내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섬기지 않는 여인들이었다. 이 사람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던 솔로몬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외관은 변한 게 아니다. 그의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일천번제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던 그가. 이제는 이방의 신들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그를 정말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두 번이나 말씀하신다.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솔로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어떻게 되느냐?

 

 바로 다음에 솔로몬은 어떻게 되었는가?

11: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니 과부더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버리신다. 솔로몬 몇 년 살다 죽었다. 하고 끝난다.

 

1. 아버지를 잊었다.

 그 모든 영광은 솔로몬이 잘나서 얻은게 아니었다. 그가 누리는 외교적 평안 왕국의 번영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피를 흘리며 죽기를 각오하고 창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낳은 피로 쌓아올린 결과물들이었다.

 다윗의 인생은 정말 불행한 인생이었다. 그의 삶 전체에 그를 죽이려하는 사람들 왕 사울, 게다가 자기 친아들에게서까지 배반을 당해서 / 전쟁과 전쟁이 항상 그에게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다윗의 인생이었다. 다윗에게는 평온함이 없었다. 어릴때부터 없는 아들 취급을 당한 막내아들에서부터 격동과 험난함 그 자체의 청년과 장년기를 거쳐서 그의 말년에 까지 평온함이 없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고난과 위협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그러한 싸움 속에서 삶의 전투 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의뢰함으로서 절대 질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분. 하나님을 발견했다.

 다윗의 삶을 생각하지 않고서 시편 23편을 읽는다면 묵상이 안된다. 죽을 위기에서 생명의 위협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을지어다. 라고 고백하는 그의 절절한 고백을 우리는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다.

 솔로몬은 그의 영광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영광의 원인을 바라보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 예화) 지금 한국의 모든 발전은 앞 세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혹은 목숨 값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재연 성도님의 예화. 사우디 낮에는 50도까지 올라가고 차문을 그냥 열수도 없다. 그런 분들의 피와 땀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이지 그냥 이것들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앙은 그냥 온 것이 아니었다. 선조들의 박해와 수난 때문에 우리에게 전달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수난을 당했다. 매맞고 고문 당하고 죽임당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전혀 박해를 받지 않습니다. 나도 신앙 때문에 놀림받은 적은 있지만 박해를 받은 적은 없다. 내가 박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당연한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특권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의 희생 때문에 이루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솔로몬은 한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그 많은 전쟁은 이미 아버지 다윗이 치러 놓았고 솔로몬은 모든 문제를 외교술로 나이스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애굽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직접적으로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마병이 만2천명 지금으로 말하면 탱크가 만이천대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들은 왕권 강화용 방어용이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솔로몬은 자기 아내들과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자기 아내가 되었으면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도록 이방의 신들을 포기하도록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그는 교묘하게 타협한 것이다.

 외교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격렬한 싸움을 피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타협을 심어놓은 것이다. 사탄 마귀는 이 타협 안을 파고든다. 사탄은 우리가 결정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흔들지 않는다. 우리의 틈을 파고든다. 별거 아니라고 그럴수도 있겠지 하는 것을 파고든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파고든 틈으로 우리를 싸우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말처럼 반성경적 표현이 없다. 사탄이 파고드는 좋은 수법이 이런 방식이다.

 예화) 마음씨 좋은 주인이 낙타와 함께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로 하는데 낙타가 머리만, 목까지만, 앞다리까지만, 뒷다리까지만, 다음날 보니까 낙타는 텐트 안에서 자고 주인은 텐트 밖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자고 있었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이 낙타 주인이 마음씨가 좋았다는 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씨 좋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공의로우라고 말한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주안에서 의리를 지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하는 것.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정하고 더러운 타협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명예가 없는 사람에게는 싸움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명예가 없어진 것.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주안에서 부정한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싸워야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싸우라.

 

3. 도전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그분께 더 큰 영광을 올려드리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서 더 큰 영광을 가진 나라로서 성장시키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다윗은 그의 나라를 더 크게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 도전한다. 블레셋과 싸우고 이방 나라와 싸운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냥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 자신이 가진 것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고자 하신 땅은 더 큰 땅이었다.

 여호수아 1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솔로몬은 이 땅에서 만족한다. 자신이 누리는 큰 영광도 대단한 것이었지만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은 더 큰 영광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은 더 큰 자로 큰 왕으로 세우실 수 있었지만 그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다. 만족하고 주저 앉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영토에 있던 이방인들이라도 온전하게 멸하지 않고 노예로 삼는다. 그들과 맞서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 앞에서 솔로몬은 더 큰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신 것보다 크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시다

 기적의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다. 기적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자기 아버지 다윗과 같이 죽음의 사람에서부터 영웅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니까 그는 도전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마음에서부터 져버렸다. 믿음의 승부에서부터 져버렸다.

 

 결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존재로 이끄셨는가?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 이 순간에 지혜로운 자로, 의로운 자로, 거룩한 자로, 구원하시는 자로 세우셨다.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일하시는 지혜와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실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에 나 자신을 묶어두고 그 자신을 제한하고 더 이상 못가게 막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여러 가지 환경에 대한 불평을 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 이것을 믿음이 없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전하고 나아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싸울때에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가 싸움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모두가 절대 안돼라고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매 순간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으면 그분이 승리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리고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있는곳에서 싸움을 포기하고 멈춰 있기를 선택한다면,

 수십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믿음을 선택하며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반응형

'구약설교 > 역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룻기 1장  (1) 2023.11.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