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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의 깨달음 내역은 두가지이다

1. 불생불멸의 원리 - 불교의 사유로 전생과 현생 내생이라는 영생사를 인정하는 것으로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길이 생사가 없다.

2. 인과보응의 이치 - 인연연기의 은혜충만이 이 세상의 생명원리다!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

각각의 업보에 따라 선연선과 악연악과로서 생로병사의 윤회를 한다. 

소태산은 깨닫고 보니 불교와 같았다. -> 불교 혁신을 주창. 

 

성리 연마의 중요성 :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는 것으로 진리를 깨닫는 방법으로서 요긴하다. 

마음공부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향한 길이다. 

깨달음의 체험이 중요하다. 

 

1장 깨달음은 뭐냐? 

오 또는 오. 마음의 깨우침, 실상의 꿈에서 깬다. 

깨달음을 통하여 청정한 자성을 회복하고 죄복이 돈공한 경지를 누리는 것. 자성극락. 사사로운 분별심에 구애되지 않는 것. 모든 것에 실체가 없고 나라는 것이 없다. 

사적인 나를 극복한 이상 깨달음은 착심을 버리고 현재 그 자리에 바르게 제대로 있는 것을 말한다. 

진리의 깨달음은 적적성성의 신앙체험과 관련된다. 이 체험으로 일원상에 의해 생존하는 존재 법칙을 알게 된다. 

1) 나라는 것.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 긴장관계를 극복하여 자유와 평등을 얻는다.

2) 생사문제와 연결하여 생사는 나의 존재에 대한 본질문제이다. 영생의 입장에서 생사는 일종의 변화일 뿐이다. 

 

깨달음의 가치는

성찰속에서 일상적 삶에서 역사적 존재 가치임을 확인시킨다. 

교법실천 및 신앙체험과 연결된다. 교리 실천. 양심. 교법으로 살고, 진리적 원리로 산다. 

반야지혜를 발휘한다. 

이고득락과 전미개오. 전미개오로 현실구원에 직결. 

 

[왜 자기만 깨달으면 되지 다른 사람에게도 설법하려고 하는가?] - 무아의 본질을 발견하기에 중생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다. 그리스도교는 이타적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리스도와 성도는 분명히 분리된다. 성도와 성도는 분명히 개별적 존재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한다. 사랑은 타인을 조건없이 희생하는 것 헌신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함과는 다르다. 

[이들은 천상천하유아독존 즉,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우상을 재발견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라는 인격에 매달린다. 그분이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이시다. 그분 안에 있다]

 

[이들의 깨달음과 그 적용에서는 너무 빈약하다. 내용이 없다. 근거도 없고. 더 발전시킬 수 있을텐데. 그냥 철학적으로라도 말이다.]

 

중생과 부처의 간극

누구나 여래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다. 

깨달은 자라면 정진 적공의 자세와 체험이 자발적으로 나타난다. 

 깨달은 후에도 깨달음 자체를 부서야 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깨달음은 결국 덧없는 솔로몬의 전도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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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대해서  (0)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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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논문 
주장 - 자신의 과제 
이슈 - 이 이슈에 대한 대표적 카테고리를 말하는것. 

해설 논문(역사신학)
1단계 - 해설논문은 역사신학에서 필요 : 처음 발견한 문헌 등.
2단계 - 주장논문은 해설논문이 원문을 제대로 읽었냐 하는, 이해를 돕는 배경 이해를 가지고 해재해주는 논문
3단계 - 이런 부분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다. 

주장논문(조직신학)
이슈에 대해서 말하는. 
조직신학 논문은 참이냐 거짓이냐의 싸움에 치들어가는 것. 
그래서 성경, 역사, 조직신학, 체제 등에 능해야 하는 것. 
이거를 다 할 수 없으니까 대표적 학자 하나를 잡고 그 사람에게 빗대어 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이슈가 뭐인지에 대한 명료화. 
그 이슈에 대해 어떤 것이 있다고 카테고리화
그 카테고리들에 대해서 평가 및 자기 주장.

 

아웃라인 자체가 논증 자체이다. 

 

몸과 영혼의 이슈와 관련하여 하나님 형상에 대한 이해의 차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가 몸과 영혼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몸과 영혼의 문제에서 하나님 형상만으로 좁아지는 것. 

몸과 영혼의 각각의 주장에서 하나님 형상을 뽑아내는 것. 초점이 좁아지는 것. 

 

초점을 좁히고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 그 신학 논개에서 어느편을 비평할 것이냐. 

관계적 삼위일체 몰트만은 밖에, 윌리엄 힐은 안에. 

양태론 칼바르트는 안이냐 밖이냐, 

삼위일체론의 접선에 붙어 있는 바르트. 기준 제시를 찾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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