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철학의 영향에 따라서 플라톤의 영향에 따라서 신약을 해석하지 말라는 시도를 넘어서서 성경 자체가 신학적 이원론의 영향으로 되어졌다는.
해석이 이원론이라는 것은 / 성경 주석적인 측면이 있는데 성경 자체가 플라톤적 영향력이라고 말한다면 계시의 본연은 사라지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가? 계시의 점진성을 이해하지 않는 것. 이미 이것을 얘기할 때 신약의 명료성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 신약은 더 명료하다.
총괄적으로 구약의 스올과 르바임에 대한 이해는 신약을 통해서 계시의 점진성의 맥락에서 풀어갈 것이다.
그것들은 모순적이지 않다. 구약과 신약이 모순적이지 않고 차이점은 명료성이다.
그 단계를 넘어가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의 고리를 살피는 중간계는 어떠냐?
결국 사두개인. 바리새인 들의 견해를 살피는데
사두개인의 견해는 - 에피쿠로스 관점처럼 유물론적으로 - 사후에 nothing이라는 견해
러셀은 사두개인이 - 소멸을 포함하지 않는 스올이다.
어쨋든 우리는 신약성경까지 결론으로 보았을때에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이 없다는 것에 대한 논쟁.
바울도 부활에 대한 논의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혼란케 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신학적으로 보면 요세푸스의 것이 일반적인가?
사두개인은 구약과 일치가 안되는가? 구약적 인간론과 관계 없이 멸절을 말한 것이냐?
사두개인들이 멸절을 말한 영향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느냐? 이들에게 이미 헬라적 영향 아래 있어서 그들이 유대인이지만 사상은 성경을 통한 사상보다는 지배적 문명에 대한 영향을 입은 것이 아니냐? !
사두개인들은 자기 전통도 무시하고 플라톤적인 주류를 거부하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후상태로서의 존재 특성을 말하는 . 사후 존재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뭐냐? 이원론이 아니면서 존재가 뭔지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있다
구약에서 사후 상태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신약과 구약은 통일성이 있는데 둘다 일원론적이다.
현대 일원론자들의 성경해석임.
존재가 사후 상태에 있느냐? 의식이냐 잠자는거냐? 잠자는 것에 대해선 동의 안하는 것. \
구약이 사후세계를 말하지 않는다면 -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모른다?
사실상 사후 존재가 없어야 죽는게 아니냐? = 성경의 죽음관이 바꿔지는 것이냐?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이 땅에서의 육체의 기능 중지. -> 영혼과 몸의 분리.
몸의 연속성.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모습으로 부활하냐? 영광이냐? 영광의 압도적 모습은 이땅의 모습을 삼켜버릴 정도의 모습이다.
정체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연속성을 보면서.
눈으로 하나님을 본다? 1) 예수님을 보는 것 -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 그러나 성부 그 자체는 아니다. 그분의 영광이다. 마찬가지로 그날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2) 육안으로 보는 것은 - 우리의 차원과 같아야 가능한 것. 몸의 구성의 차원을 보는 것. 그러나 직관할 수 있는 것. 직관은 차원을 뛰어넘는다. 순간의 직관으로 우리는 우주 끝까지 간다.
직관적 인식을 통해 하나님을 뵌다는 것이고 죄가 없이 소멸하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이다. 직관이 있다는 것은 인간 사이에서도 그렇게 나타나는. 육체의 흔적 유사성을 넘어서는 영광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능가하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것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몸의 형태의 유사성을 보기에는 어려운게 영광성이 너무 큰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그런데 실재적으로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닌게 되는 것이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을 베드로가 보고 좋다는 표현은 직관으로서 말하는 것이라.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야를 본 적이 없다. 어찌 첨 보는데 아냐? 직관으로 아는 것이다.
아담의 직관은 무엇으로 봐야하나? 하나님과의 교제 / 그 음성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실때 그것이 물리적 음성이었겠는가? 물리적 음성이 아닌 심리적 음성이지 않을 수 있는 것. 기도하다가 주께서 우리게 뭔가 말씀하실 때에 경험하는 것이 있느냐?
---------
낙원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니다. 하데스는 구약의 스올이다. 게헨나는 최종적 상태다. 하데스는 최종 상태가 아닌 중간상태이다. 스올에 하데스와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식의 개념 정리 .
네페쉬나 루아흐를 몸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구약에서는
중간기의 네페쉬가 사후 존재 상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사후에 뼈와 몸과 살이 없는 존재를 네페쉬 루아흐라고 말했다. 그런데 구약에서 그렇게 가리킨 적이 없어서. 중간기의 네페쉬 루아흐의 용례를 인정할 수 없다.
쿠퍼는 이에 대해서 중간기의 네페쉬루아흐가 살과 뼈가 없는 인간을 가리키고 구약에서도 실재로 그렇게 사용한다!
중간기가 헬라의 영향력 때문에 전체론적 사상이 바뀐게 아니다. 그것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사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헬라 이원론 때문은 아니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었어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하나님게서 존재하지 않게 하면 끝나는 것
몸은 썩으나 영혼은 존재케 해주시는 원리로 작용하신다.
하나님은 어떤식으로? 영혼만으로도 생명력을 주시는 것이다.
사후 상태란 뭐냐? 이 모든 것들의 전제가 하나님이 사후 상태의 존재적 원리로 계신다는 전제이다.
어떻게 실재하느냐? 의인의 몸과 다르다. 몸도 없이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냐?
몸없는 중간기의 상태가 어찌 고통을 느끼는가? 모든 고통은 육체를 통해서 많이 온다. 육체적 피로. 상처
육체와 상관없이 오는 고통은 뭐가 있냐? 정신적 마음의 심리적.
심리적 고통도 바라는 욕망과 관련된 좌절. 몸에서 자유롭게 되는 욕망은? 그 상실과 고통.
심리적 고통도 순수히 몸과 구별되나?
육체의 고통이 수반될 때 심리적 고통이 더 커진다. 사실상 육체 관계 안에 살면서 죄책과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회개하는 죄에 대한 고통은 정말 순수히 하나님 앞에 고통하는 것.
악인의 회개는 두려움 /때문에 떠는 것이고 . 신자의 죄를 미워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회개
참된 회개로 들어가는 것은 /
육체가 없는 상태의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서 / 형벌적 두려움 혹은 영혼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영혼의 기쁨은 -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 몸은 아픈데/ 몸은 즐거우나 죄 가운데 있으면 심령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유물론에서 이런 부분은 넌센스가 된다.
새 생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 = 일어난다는 표현.
뇌 생리학적 능력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 언어를 배우는 논리를 배우는 능력/ 지성적 감성적 의지적 모든 활동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설명이 안된다. 몸의 활동과 연관되는 것은 분명함. 죽으면 안되니까. 그러나 뇌의 작용을 넘어선 것이라는 것은 안다.
물리적으로 전기작용을 볼 수 있지만 = 환원시킬 수는 없다. 결과론적으로 감정과 생각의 일치성을 찾아보는 것인데/ 그것이 완성되면 다른 물리적 수단으로 이식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이원론적이라면 / 일원론적이지 않는다면.
영혼이 따로 이것을 가진다면 사용하지만 그렇게 절대 넘기지 못한다. 기억을 옮긴다는 것도 물리내 생리적 작용의 어떤 것들을 옮겨온다는 것.
이게 정신적 능력인데 - 몸과 밀접하지만 이것과 환원되지 못한다는 .
은사 체험의 경험이 있다면 영혼의 경험이 몸과 결합될때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뇌 작용에 환원적으로 어찌 연결되는지는 못하지만.
뇌사 상태가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는 의학적 견해가 계속 나오는데/ 생명이 있는데 0
영혼이 언제 떠나느냐? 영혼이 뇌사에서 떠난다고 봐야 장기이식도 가능한 것인데/
그 상태에서 돌아오는 은사 체험을 본다면.
이원론에 입각하여 - 본다 경험한다 간다 / 지상적 존재와의 연속성이 강화되는 식으로 생각하고 사후의 존재나 /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
육체가 몸을 낳는 것. bodily form 을 가지느냐. flesh body를 갖느냐? 만일 사후 존재 상태가 육체가 아닌 / 다른 형식의 body라면 그 몸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물질이 아니다. 완전한 비물질도 아니다.
영체라고 말하는 것.
천사가 bodily form flesh가 없다. 그러나 \
definitiva - 한정되었지만 spiritual이다. 이것이 뭐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냐? soul 일 수 있다는 것. 전체론이면서 / 끝까지 가지고 나간다면 영혼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가 인격성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
이원론이 아니면서도 사후존재를 말할 수 있냐? 구약에서 사후 상태가 있다. 그런데 실체이원론은 아니야 하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 것. 전일론적 개념이 있으니까.
신약에서도 압박이 계속 드러오니까 전체론이 맞다. wholistic dualism 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사후상태에 뭐가 있냐? 영혼이다 그러면 이원론이네/ 영혼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뭐가 있따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
'에세이 >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몸과 영혼 5 (0) | 2023.09.18 |
---|---|
몸과영혼 2 (0) | 2023.09.04 |
몸과영혼1 (0) | 2023.08.21 |
눈 수술 없이 시력 교정해주는 안경 (0) | 202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