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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철학의 영향에 따라서 플라톤의 영향에 따라서 신약을 해석하지 말라는 시도를 넘어서서 성경 자체가 신학적 이원론의 영향으로 되어졌다는. 

해석이 이원론이라는 것은 / 성경 주석적인 측면이 있는데 성경 자체가 플라톤적 영향력이라고 말한다면 계시의 본연은 사라지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가? 계시의 점진성을 이해하지 않는 것. 이미 이것을 얘기할 때 신약의 명료성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 신약은 더 명료하다. 

총괄적으로 구약의 스올과 르바임에 대한 이해는 신약을 통해서 계시의 점진성의 맥락에서 풀어갈 것이다. 

그것들은 모순적이지 않다. 구약과 신약이 모순적이지 않고 차이점은 명료성이다. 

그 단계를 넘어가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의 고리를 살피는 중간계는 어떠냐? 

 

결국 사두개인. 바리새인 들의 견해를 살피는데 

사두개인의 견해는 - 에피쿠로스 관점처럼 유물론적으로 - 사후에 nothing이라는 견해

러셀은 사두개인이 - 소멸을 포함하지 않는 스올이다. 

어쨋든 우리는 신약성경까지 결론으로 보았을때에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이 없다는 것에 대한 논쟁. 

바울도 부활에 대한 논의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혼란케 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신학적으로 보면 요세푸스의 것이 일반적인가? 

사두개인은 구약과 일치가 안되는가? 구약적 인간론과 관계 없이 멸절을 말한 것이냐? 

 

사두개인들이 멸절을 말한 영향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느냐? 이들에게 이미 헬라적 영향 아래 있어서 그들이 유대인이지만 사상은 성경을 통한 사상보다는 지배적 문명에 대한 영향을 입은 것이 아니냐? ! 

 

사두개인들은 자기 전통도 무시하고 플라톤적인 주류를 거부하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후상태로서의 존재 특성을 말하는 . 사후 존재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뭐냐? 이원론이 아니면서 존재가 뭔지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있다 

구약에서 사후 상태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신약과 구약은 통일성이 있는데 둘다 일원론적이다. 

현대 일원론자들의 성경해석임. 

 

존재가 사후 상태에 있느냐? 의식이냐 잠자는거냐? 잠자는 것에 대해선 동의 안하는 것. \

 

구약이 사후세계를 말하지 않는다면  -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모른다?  

 

사실상 사후 존재가 없어야 죽는게 아니냐? = 성경의 죽음관이 바꿔지는 것이냐?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이 땅에서의 육체의 기능 중지. -> 영혼과 몸의 분리. 

 

몸의 연속성.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모습으로 부활하냐? 영광이냐? 영광의 압도적 모습은 이땅의 모습을 삼켜버릴 정도의 모습이다. 

정체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연속성을 보면서. 

눈으로 하나님을 본다? 1) 예수님을 보는 것 -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 그러나 성부 그 자체는 아니다. 그분의 영광이다. 마찬가지로 그날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2) 육안으로 보는 것은 - 우리의 차원과 같아야 가능한 것. 몸의 구성의 차원을 보는 것. 그러나 직관할 수 있는 것. 직관은 차원을 뛰어넘는다. 순간의 직관으로 우리는 우주 끝까지 간다. 

 

직관적 인식을 통해 하나님을 뵌다는 것이고 죄가 없이 소멸하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이다. 직관이 있다는 것은 인간 사이에서도 그렇게 나타나는. 육체의 흔적 유사성을 넘어서는 영광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능가하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것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몸의 형태의 유사성을 보기에는 어려운게 영광성이 너무 큰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그런데 실재적으로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닌게 되는 것이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을 베드로가 보고 좋다는 표현은 직관으로서 말하는 것이라.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야를 본 적이 없다. 어찌 첨 보는데 아냐? 직관으로 아는 것이다. 

 

아담의 직관은 무엇으로 봐야하나? 하나님과의 교제 / 그 음성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실때 그것이 물리적 음성이었겠는가? 물리적 음성이 아닌 심리적 음성이지 않을 수 있는 것. 기도하다가 주께서 우리게 뭔가 말씀하실 때에 경험하는 것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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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니다. 하데스는 구약의 스올이다. 게헨나는 최종적 상태다. 하데스는 최종 상태가 아닌 중간상태이다. 스올에 하데스와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식의 개념 정리 . 

네페쉬나 루아흐를 몸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구약에서는 

중간기의 네페쉬가 사후 존재 상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사후에 뼈와 몸과 살이 없는 존재를 네페쉬 루아흐라고 말했다. 그런데 구약에서 그렇게 가리킨 적이 없어서. 중간기의 네페쉬 루아흐의 용례를 인정할 수 없다.

쿠퍼는 이에 대해서 중간기의 네페쉬루아흐가 살과 뼈가 없는 인간을 가리키고 구약에서도 실재로 그렇게 사용한다!

중간기가 헬라의 영향력 때문에 전체론적 사상이 바뀐게 아니다. 그것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사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헬라 이원론 때문은 아니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었어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하나님게서 존재하지 않게 하면 끝나는 것 

몸은 썩으나 영혼은 존재케 해주시는 원리로 작용하신다.

하나님은 어떤식으로? 영혼만으로도 생명력을 주시는 것이다. 

사후 상태란 뭐냐? 이 모든 것들의 전제가 하나님이 사후 상태의 존재적 원리로 계신다는 전제이다. 

 

어떻게 실재하느냐? 의인의 몸과 다르다. 몸도 없이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냐? 

몸없는 중간기의 상태가 어찌 고통을 느끼는가? 모든 고통은 육체를 통해서 많이 온다. 육체적 피로. 상처

육체와 상관없이 오는 고통은 뭐가 있냐? 정신적 마음의 심리적. 

심리적 고통도 바라는 욕망과 관련된 좌절. 몸에서 자유롭게 되는 욕망은? 그 상실과 고통. 

심리적 고통도 순수히 몸과 구별되나? 

 

육체의 고통이 수반될 때 심리적 고통이 더 커진다. 사실상 육체 관계 안에 살면서 죄책과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회개하는 죄에 대한 고통은 정말 순수히 하나님 앞에 고통하는 것. 

악인의 회개는 두려움 /때문에 떠는 것이고  . 신자의 죄를 미워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회개

 참된 회개로 들어가는 것은 / 

육체가 없는 상태의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서 / 형벌적 두려움 혹은 영혼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영혼의 기쁨은 -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 몸은 아픈데/ 몸은 즐거우나 죄 가운데 있으면 심령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유물론에서 이런 부분은 넌센스가 된다. 

 

새 생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 = 일어난다는 표현. 

 

뇌 생리학적 능력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 언어를 배우는 논리를 배우는 능력/ 지성적 감성적 의지적 모든 활동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설명이 안된다. 몸의 활동과 연관되는 것은 분명함. 죽으면 안되니까. 그러나 뇌의 작용을 넘어선 것이라는 것은 안다. 

 

물리적으로 전기작용을 볼 수 있지만 = 환원시킬 수는 없다. 결과론적으로 감정과 생각의 일치성을 찾아보는 것인데/ 그것이 완성되면 다른 물리적 수단으로 이식시킬 수 있다. 

이것이 이원론적이라면 / 일원론적이지 않는다면. 

영혼이 따로 이것을 가진다면 사용하지만 그렇게 절대 넘기지 못한다. 기억을 옮긴다는 것도 물리내 생리적 작용의 어떤 것들을 옮겨온다는 것. 

이게 정신적 능력인데 - 몸과 밀접하지만 이것과 환원되지 못한다는 .

 

은사 체험의 경험이 있다면 영혼의 경험이 몸과 결합될때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뇌 작용에 환원적으로 어찌 연결되는지는 못하지만. 

 

뇌사 상태가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는 의학적 견해가 계속 나오는데/ 생명이 있는데 0 

영혼이 언제 떠나느냐? 영혼이 뇌사에서 떠난다고 봐야 장기이식도 가능한 것인데/ 

그 상태에서 돌아오는 은사 체험을 본다면. 

 

이원론에 입각하여 - 본다 경험한다 간다 / 지상적 존재와의 연속성이 강화되는 식으로 생각하고 사후의 존재나 /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 

육체가 몸을 낳는 것. bodily form 을 가지느냐. flesh body를 갖느냐? 만일 사후 존재 상태가 육체가 아닌 / 다른 형식의 body라면 그 몸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물질이 아니다. 완전한 비물질도 아니다. 

영체라고 말하는 것. 

 

천사가 bodily form flesh가 없다. 그러나 \

definitiva - 한정되었지만 spiritual이다. 이것이 뭐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냐? soul 일 수 있다는 것. 전체론이면서 / 끝까지 가지고 나간다면 영혼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가 인격성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

 

이원론이 아니면서도 사후존재를 말할 수 있냐? 구약에서 사후 상태가 있다. 그런데 실체이원론은 아니야 하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 것. 전일론적 개념이 있으니까. 

신약에서도 압박이 계속 드러오니까 전체론이 맞다. wholistic dualism 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사후상태에 뭐가 있냐? 영혼이다 그러면 이원론이네/ 영혼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뭐가 있따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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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질료와 원형 

ontological holism 과 functional holism 존재론적 전일론

기능적 전일론 

 

몸과 영혼이 별개의 실체이고 두 가지는 각각의 기능을 하지고 있는데 둘이 조화를 이루어 실체를 이루고 있다는. 죽음 이후에도 각각의 독립적 기능을 유지한다는

전체론적 전일로은 두개는 구별은 되는데 하나가 되어야 존재거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기능적은 하나로 존재할 때 기능성이 나타나지만 그것이 각각 구성의 두 요소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몸과 영혼이 수평적이라면 죽는 순간 각각의 구별된 형태로서의 존재성은 못가진다. 합쳐져야 존재성을 가진다만. 

사람의 몸이 사라지는 것이 전

몸이 떨어지는 순간 사람은 없다. 존재론적 전일론 

사후의 상태가 구약에서 말한다면 / 

 

부활때에 부활한다는 것. 사후 상태가 없는데 -> 존재론적 전일론이 유지되는가? 죽음으로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서 부활이라는 것으로 합쳐서 된다면 문제가 없는데 - 

사후 상태가 없다면 문제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봐도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뭐가 남아있기는 하는가? 그것의 철학적 함의가 뭐냐? 

 

아리스토텔레스와 

 

에녹과 엘리야. 

아직 구약이니까 - 

결국은 / 사울을 어떻게 보느냐 - 강령술에 대해서 ; 대체적으로 2가지 전통. 

하나님이 악한 상황 속에서 실제 사무엘을 불렀을 까 혹은 악한 영이라는 / 악한 영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부담. 

그러나 예외적으로서 사울에 주는 저주의 메시지는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 

 

죽은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기느냐 - 

전도서 상징적이냐? 현재를 비추어 볼때에 활동하지 않아서 잠잔다고 말하지만 그 실제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왜 죽으자는 잠잔다고 말하냐? - 다 현세적 관점에서 볼때에 죽은자는 active하지 않기에. 현재의 unrest를 보고서 평안을 보는 것이다. 

 

사울의 상태 속에서 의식과 직접적 상태를 말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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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요인, 원자로 본다. 

그들은 정신 영혼 의 실체를 잘 모르는데 그것이 있다고 전제해야만 정신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정신현상이 설명 가능하니까 인과성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영혼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생각할 이유도 없고 그런 근거도 없다.

 

// 변증의 논쟁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 예수 믿는 과학자에게는 어떻게 대답하나? 

과학의 힘은 대단하다. 

기원과학과 실험과학의 구별의 문제. 

 

뇌의 생리적 관찰과 반응에 대한 이해. -> 정신현상을 낳음. 

둘 사이의 인과성이 어떻게 되느냐의 질문. 원인 결과 - 환원될 수 있는 것. / 결과를 원인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음. 

환원주의적 유물론 비환원주의적 유물론이 되는. 

1,2는 너무 다르고 . 1,2는 항상 같이 간다. 

정보라는 / 

모든 것들은 전제에서 온다.

형이상학적 전제가 형이하학적 실체를 보는 틀을 결국 제공한다. 

 

토마스 쿤 - 절대 중립적인 과학은 없다. 패러다임이 있다. 

이를 거부 왜? 실험하면 증명한다. 아니다 이 실험 자체가 패러다임으로 간다. 

순수실험적 - 검증. = 과학자들은 물러서지 않는 것

 

 

다름과 정도 사이의 관계를 보니. 

 

 욕구 자체가 있어서 실현이 되는가? 아니면 뇌 반응에서 욕구가 만들어지는가? 

 생각과 반응은 너무 ㅂ밀접해서 - / 

과학자들은  : 항상 뇌안에서의 변화가 먼저 있고 정신현상이 뒤에 나타난다는 것. 그러면 유물론이 되는 것. 

이에 대한 실험을 계속 하는 것. 그랬더니 시간차에 대해서 뇌가 앞선다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얼마나 앞서냐? 찰나! 천분의 1초만큼 뇌가 빠르다. 그런 식의 반응을 보면 유물론의 실험 결과를 내놓는것. 

 

그런데 과학은 자꾸 틀리다. 시차가 잘못 계산되거나. 등. 

생각은 주체가 말을 해야 안다! 말을 할 때에 이 사람의 생각과 뇌를 측정할 수는 있다. 결국 실험도 완전성이 없는 것. 

사람의 생각을 포착해서 읽어낸다는 것이 / 결과만 보지 그 과정을 볼 수없는. 계속 개선하는 실험일 뿐. 확정된 이론이 여전히 없다. 모르는 것. 

 

상사병0 정신적 스트레스. 인과관계는 어디서 오나? 뇌 자체의 /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를 장악. 

정신이 몸과 너무나 연결되어서 몸 자체가 상하면 정신은 살아있으나 정신 자체의 고뇌도 몸을 상하게 한다.

무엇이 우선적인지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에는 

 

죄를 지으면 건강해지나/? 죄책감이 몸의 질병으로 온다. 인지적 노력이 바껴지면 / 인지치료 / 

정신 속의 정보 자체는 / 논리는 뇌와 상관 없다. 우리 정신은 뇌 생리적 체게를 읽어낸다. 뇌는 자기가 뭘하는지 모르는데 정신은 뇌를 읽어낸다. 뇌의 생리적인 반응응 초월한다. 정신은. 

metaphysic은 어디서 오나? 뇌에서 온다고 할 때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비물질적 정신현상 안에 있는 것들을 설명하지 못하니까 말하지 못하는 것. 

 

방법적 자연주의로 설명해보라 하면 - 그래서 영혼이 없다는 것은 metaphysical로 넘어온다는 것. 그것은 그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같은 우주 공간에서 소비에트는 하나님 없다. 나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다. 

 

현대 신학에 있어서 범신론적 아이디어 유물론적 과정신학적 아이디어 

창조에 대해서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들. 

철학으로 계시를 생각하는 것은 . 현대에만 있는 것. 

 

 계몽주의 이후에 성경을 해명할 때 

헬라 철학이 교부 신학을 만들엇따 _ 하르낙의 견해 . 아니다 신학이 헬라철학을 이용한 것. 

중세 신학에서도 성경적으로 찾고 버릴 건 버리고 하는 것. 

 

전통적 기독교 이원론에 대한 도전이 있음

 

 - 여성 억압이 기독교 이원론에 대해 근거하는가? 

: 하나님 형상으로서 남성 여성은 큰 차이가 없고 획일화할수 없다. 

 

- 세속주의에 기여하는가? 

세상 자체를 거부하게 하는가?

기독교의 이원론과 플라톤의 이원론을 같게 보는 것.  육적인게 뭐고 영적인게 뭐냐 

농부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 통합적으로 보는 것. 플라토니즘에게는 육적인 것

한국교회에서 영육 이원론에 대해서 / 사실상 플라톤주의적인. 

지식의 오류와 부패성이 나타나는 양상이 이분법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신학적 이해 때문에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 . 적용이 너무 뻔하다. 

 

복음주의적 신앙관이 세속화에 밀려서 일과 사회 전 영역에 신앙적 가치로 살아가는 것은 너희들끼리고 우리에게는 말하지 말라 해서 주관화가 시작된다. 

직장, 스포츠, 결혼, 사랑, 등등 신앙적 가치가 주관주의화되고 보편영역에서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 

라고 하니까 세계관 자체도 복음주의에 더해서 나오는데 

신칼빈주의는 세계관 구축인데 복음주의와 합쳐 있는데 - 우리끼리라도 세계관 구축 하자 는 거 ㅅ이다. 

 

우리 안에서 육과 영이 통일체로 말하지만 밖에서는 말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 

밖에서 말할 근거가 뭐냐를 말할 때 1. 세상에 발휘 영역주권 2. 다른 방법 찾자. 

종교개혁은 세속화에 힘에 밀리는 것.

분리적 이원론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아서 . 교회 안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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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에게도 낙원에 간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후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유주의도 부활은 말하는데 중간기간에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 해석이 바뀌면서 성경에서 죽은 이후 사후 상태의 기능성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그들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도전하는 수용하는 / 

김학철 교수 : 사후 상태에 대해서 성경은 계속성을 말하지 않고 단지 부활을 말할 뿐이다. 

 

여전히 현실적인 주제다. 

기독교 중간상태에 대해서 인간론적 이원론을 가진다. 몸과 영혼은 존재적으로 다르다. 두가지가 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룬다. 

사후에는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인격성은 계속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영혼은 실체적으로 기능하다. 기능만이 아니라 실재성을 가진다는 것. 몸과 결합하여 실재해야 하는 것. 부활하여 비물리적 실체인 영혼이 어떤 의미에서 인격성 지성 감각 의지의 기능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 

감정, 느낌 등 인격성을 반응하는 심리적 반응. 몸이 없을 때 영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기억성을 연속성을 가지긴 할것이다. 자아로서의 연속성이 뭔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 

다만 비물리적 영혼의 기능이 살아있다. 낙원에서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 

 

인간의 영혼의 분리에 대해서 

샌더스가 유대 배경사를 연구하면서 구원론적으로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감. 샌더스는 유대인들 사이에 영혼의 실재적 것에 대해서. 라이트도 

 

기독교 철학에서도 

알빈 플라팅가 - 이원론에 대한 분명한 지지를 표함 \\

 

 

가정신학은 만유재신론. 우주가 몸이면 그 정신은 신적 존재 / 신적 존재가 만유를 몸으로 삼아 변화과정이니까 그래서 몸과 영혼이라는 이원론적 이해를 과정신학과 전제한다. 구성이 같으니까

\

창발론 emergentism 

새로운 이론으로 - 사람의 존재는 순전히 물질적 유기체 / 정신적 영적 능력을 지닌 / 창발의 과정은 다 설명 못하지만 사람의 인격은 물질적 유기체와는 구별되면서 도 유기체에 의해 발생/ 유기체와 서로 상호작용한다. 유기체라는 것이 없으면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정신이 창발하는 것이라.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이 발생하고 발생한 영혼이 물질적 유기체와 발생하여 살아가는 존재 / 창발론은 몸과 영혼이 각각 실체로 있다 그런데 둘로 나눠 따로 존재가 아니라 둘이 결합하는 전인적 전체적인 하나의 인간을 염두해두고 구성분을 둘로 했을 뿐이다 라는 실제 이원론에 비해서 

창발론은 물질 우선성이 있고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 영혼이다. 그런 읨ㅇ미에서 영혼은 물질과는 다른 것이 된다. 하지만 서로 상호적으로 기능한다는 것. 그래서 wholistic 한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지닌 유기체적 존재. 그것을 하나님이 구할 때까지 초자연적 역사와 능력으로 유지시켜 주신다. 몸이 죽으면 유지시켜주신다. 그래서 일단은 인간이 두 구성이 있는데 다만 

 

영혼과 유기체가 나온다는 것은 창조원리이기에 결과론적으로 보면 둘다 기능이 있고 몸이 죽어도 영혼의 기능이 살아잇다ㅡㄴ 것 성경의 고백과 구조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최근 신학 경향

 

중간상태를 부인하는 신약 학자

영혼 수면설을 반영함. 

신약 성경 자체가 존재론적 단일론이다. 죽음의 육체가 분리된 것을 신약이 말하지 않는다. 

눅 23장을 회피하고 눅 16장이 중간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철학적 과학적 접근 가장 대세적이다. 

영혼은 뇌의 기능일 뿐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다 물질이다. 

성경의 몸과 영혼에 대해서 = 성경 해석을 플라톤적 관점에서 읽은거야  2천년 교회사가 잘못되었다. 프레임을 가지고 읽었기에 

 

인간의 유니티는 육체에 잇는 것이다. 육체에 맞는 정신이 따라 붙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상태는 없다고 보는 것. 있다면 중간상태에 따른 몸이 따로 있다 . 

 

피지컬주의는 물리적 구성 요소로 설명하는 것.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어떻게 피지컬리즘인가/ 그것이 어떻게 유물적  

ㅁ 

사람은 복합적 기능을 하는 물리적 유기체다. 인간을 더럽히는 기능을 물리적 현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정신은 허상이 아니다. 머피는 그렇다고 해서 인간정신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이원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정신속성으로 연결되어 나온다. 별도의 속성이 있다. 

머피의 얘기를 쉽게 말하면 순전히 물리적인 피조물인데 인간의 의식은 뭐냐? 그ㄴ 뇌에서 나오는데 도저히 믿기어려운 복잡성이 있다. 

 

사후에 물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 자체는 육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혼이다. 

신약은 중간상태를 말하고 있다. 중간상태는 불멸하는 영혼에 대한 플라톤에 대한 개념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최근의 연구는 중간상태를 심각히 도전하지만 그것은 연구가 덜되었다. 끝도 ㅇ벗어\

성경의 여러 증거들은 더 많다. 

 

영혼이 뭐냐. 때로 

 

물질 주의적 사고가 현대에는 너무 큰 것. 

창발론은 그런 의미에서 기원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지만 쿠퍼는 아애 유물론적 이원론에 비추어 볼때 그렇게 발생한 정신이 육체가 죽어도 사후상태를 산다는 것을 유지시키기에 / 철학적 입장에서는 더 낫다. 

 

 

이원론과 일원론의 차이 

근본적 이원론이냐 환원적 유물론이냐

 

그리스도인이 지지하는 이원론의 유형들 

실제 이원론

전체론적 이원론

창발적 발생적 이원론

 

그리스도인이 지지하는 일원론적 유형들 

 

자연주의적 이원론 0 실제 이원론의 유형으로 정신상태나 뇌와 같은 물리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본래적 자연적이다. 

창발적 / 발생적 이원론 - 정신은 화학물질로 발생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원과 존속을 화학물질에 의존한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정신이다. 자석은 자기장을 발생한다. 유기체도 의식이라는 자기장을 발생한다. 

 

양면 일원론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것은 동일한 실체에 기초한다. 상보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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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sia.nikkei.com/Business/Health-Care/Myopia-correcting-smart-glasses-from-Japan-to-be-sold-across-Asia

 

Myopia correcting 'smart glasses' from Japan to be sold across Asia

Kubota Pharmaceutical eyes Taiwan, Hong Kong and ASEAN for gadget

asia.nikkei.com

 

눈 수술 없이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이 일본에서 출시되었다고 한다

 

눈 수술 안하고 있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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