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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음한 여인과 바리새인

 

서론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적인 나라입니다. 우리 집안은 유교집안이야.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기독교인들도 할 때가 있습니다. 유교집안이라는 말의 의미에는 우리 집안은 양반의 집이야. 뼈대 있는 집이야. 하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비의 모습과 기독교인의 모습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유교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 뭡니까? 제사입니다. 저희 할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노인분들은 항상 만날때 자신이 고생했던 이야기를 많이 되풀이해서 하십니다. 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제사가 한달에 한번씩 있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뭔가요? 조상 신이 있는데 그 조상신을 달래기 위해서입니다. 조상을 경배하고 존경해서 하기보다는 조상 신이 지금 후손들을 잘 봐달라는 식으로 하는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유교의 제사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카톨릭은 제사를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귀신에 절하는 명백한 우상숭배니까 우리 개신교는 이를 우상숭배로 금한 것입니다.

유교의 제사만 그런게 아닙니다. 이슬람교도는 할렘이라는 천국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 개념은 72명의 지하드 성공자. 자살 폭탄 테러.

불교 힌두교 환생을 믿는다. 그래서 더 나은 생애로 태어나고자 한다.

 

결국 이들은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신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떠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세상의 종교다.

 

종교만 그러냐? 요즘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복수극이다. 범죄도시. 문동은의 더글로리. 복수에 대한 것. 정의에 대한 실현이 그들이 과거에 지었던 악행에 대해서 되갚는 것.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선한 행실을 쌓으면 좋고. 구원을 얻고. 악한 행실을 쌓으면 결국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어떠한 세상의 원리. 세상의 철학이 말하는 바이다.

 

본론

기독교는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고 더 행복해지고, 예수를 믿고 더 잘살고 돈 많이 벌고 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초대 교회에 예수를 믿으면 핍박을 받았다. 모든 사회적 특권에서 박탈당했다. 억압과 오해와 분란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굉장한 성장을 했다. ?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적과 기적이 일어나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때 그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천국가기 위함이 아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이 아니다. 성취하는 것은 세상의 철학과 종교다.

 

기독교의 목표는 뭐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뭐냐? 오늘 말씀이 이를 보여준다.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간음한 여인을 데려왔다. 간음한 여인은 모세 율법의 정죄에 따라 돌로 쳐서 죽어야 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무언가를 해야 얻는 것이었다. 세상의 종교로서. 율법으로서는 이 여인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돌에 맞이 죽어야한다. 악한 일을 했기에 악한 결과를 맞이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주의 원리다.

하지만 온 인류 중에 오직 한분. 예수님만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과는 다른 복음의 원리를 말하신다.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치라!

 

죄 없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법 율법을 모두 지키는 사람은 없다. 동은이도 연진이에게 당했지만, 동은이 역시 죄인이다. 죄인은 죄인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 죄 없는자가 그 권한을 가진다. 똑 같은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느냐. 그럴 수 없다. 저 사람 머리에 똥이 묻어있으면. 내 몸통에 똥이 묻어있을 뿐이다.

 

예수님이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신다. 성경에서 기록되는 유일한 예수님의 글쓰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 요한복음은 집중하지 않는다. 허리를 숙여 글을 쓰는 모습 자체에 집중한다. ?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친히 쓰셨다의 원래 의미는 그의 손가락으로 돌판에 쓰셨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출애굽기의 그 십계명의 율법을 수여했을 때에 했던 방식과 동일하게. 온 세상에 적용되어야 하는 온 세상에 드러나야 하는 원리를 부여하고 계신 것이다.

내가 바로 모세 율법의 수여자다. 내가 선과 악을 지정하는 자다. 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 권위자가 제공하시는 그 원리는 새로운 말씀은 뭐냐?

요한복음 15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누구든지 그가 행한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나와의 관계로 구원받는다. 나에 속한자 나의 백성에 속한 자. 그가 구원받는다. 그가 잘하고 못해서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속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소속의 문제다. 내가 어디 속했느냐는 것이다. 내가 예수께 속했다면 그렇지 않고 예수 밖에 세상에 속했다면 그 소속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하나님께 예수께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외식한다. 외식이라는 말은 척한다는 말이다. 뭐 하는 척하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척한다.

신명기 6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내가 하나님께 속했다. 예수께 속했다는 정체성을 가지는 가장 큰 증거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에 누가 뭐라해도 내가 잘하든 못하든 어떻든지간에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다.

이 명령이 말하는 바가 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한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시기인 신명기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첫 명령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를 사랑하라. 사랑은 자발성이다. 자유다. 줘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도 나를 사랑해주겠니?

얼마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내가 너희를 사랑하여 영새 전부터 영원의 시간이라는 그 개념 이전부터 세상의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마지막 시간의 밖 영원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너를 사랑한다.

내 사랑에는 너희가 미칠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의 마음을 다해 날 사랑하겠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마음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식.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내가 지키고 산다는 외식. 그러는 척 근엄한 척이 있을 뿐. 그들의 마음은 공허했다. 비어있었다.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여러 율법들로 자신을 치장하고. 남과 나를 비교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정죄할 뿐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가는 방향으로 행동하면 된다.

8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 이 자유는 아들의 자유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유다.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내 마음에 찾아오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분과의 관계가 종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율법에 메인 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아들이 된다. 자유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것 정도가 아니다. 아버지를 존중하지만 아버지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에 그 마음에 열정과 열심히 생성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신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에게 있어 여자가 간음이라는 엄중한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에 속한 자가 된다면. 그가 얼마나 막중한 죄를 가진 사람이든지간에 그가 얼마나 악독한 자이든지 간에 그는 예수님의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납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여인은 이 장면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무조건적인 용납을 경험한다. 여인도 그 마음에 바리새인들과 같은 공허가 있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욕정이라는 수단. 간음이라는 죄악으로 빠져들었다. 바리새인과 증상만 다를 뿐이지 원인이 같다. 그 마음 속의 공허를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자 발버둥 친 것이다. 예수님이 그 마음을 아셨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그 자체로 용납해주신 것이다.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공허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죄들로 인하여 핏물과 오염된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쓴 상태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너는 살아 있으라. 제발 살아달라. 너는 꼭 살아야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용납한다.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다. 그 마음이 채워졌다. 그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구멍이 예수님이라는 분으로 메워졌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변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수님과 관계가 형성되었다.  

 

5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래서 믿음은 사랑이다. 예수님과 관계가 있기에 그를 믿는다. 예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를 있는 그대로 살아 있으라 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를 믿고 사랑한다.

우리는 모두가 바리새인이거나 반대로 간음한 여인이다. 어느정도는 바리새인이고 어느정도는 간음한 여인이다. 우리의 그 공허한 자리를 채우려고 한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라. 그분은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우리게 주실 것이다.

 

결론

 

사랑의 자유로 행하자. 아들로 딸로서 행하자. 율법을 채우려고하는 어리석음을 따르지도 말고 / 쾌락을 채우려는 미련함을 따르지도 말자.

뭐든 좋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이끄는 대로 행하라.
그리고 준비하자. 이제 실력을 갖추자. 능력을 갖추자. 애송이가 되지 말자.

이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는 예배를 사모한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한다. 더 깊이. 그리고 그에게는 거룩한 열정이 있다. 거룩한 헌신이 있다.

 

그런 사람은 멋있다. 아름답다. 명예롭다. 영광스럽다. 그 옆에 가면 그것에 전염된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리 가운데 그 사람으로 나타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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