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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지만 비관적인 사람들이 있다. 

어제는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6개월 정도 담임목회를 하려 하다가 성도들의 변화가 보이지 않아서 목회를 그만두고 

포기했다는 이야기. 

 

그분의 마음은 정말 십분 이해되고 그분을 위로한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마음에 그분을 향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훌륭하지만 뛰어나지만 귀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세상을 희망적으로 낙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사람들을 변할 수 있는 존재로 성화되어갈 존재로 보기보다는 

안됀다고 말하는 사람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자기 삶으로는 아니라고 저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꽤 오랫동안 그분들을 동경해왔다. 

나는 그들의 비관적 대상이 아니라 유일한 귀중한 소망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꽤 오랫동안 그들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적어도 이제 약 2년 정도부터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변했다. 

나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나는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 나를 동일시시키지 않는다.

더 이상의 분리와 편가르기는 의미 없다. 

왜냐하면 내가 우위에 설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그들을 미워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들을 미워하기보다는 그들로 좌절과 낙담과 그래서 비관적 체계를 가지게 하는 그것.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그것. 나는 그것을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제 소망을 바라보련다. 

성경이 말하는대로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다. 

예수의 소망이 임했고 그 씨앗이 심겨졌다. 

그래서 비관적 태도는 불신앙의 태도이며 예수를 모욕하는 행위다. 

 

나는 비관적이지 않겠다. 나의 육체로서 그것을 증명하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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