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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현은 오늘도 외로히 외친다

 

518은 광주전남의 상흔이다

지금도 여전히 난도질당하고 있는 사냥감이 518이다

 

좌파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우파에 의해서 우롱당하는

 

뼈밖에 안남은 민중의 상흔이다

 

잔혹한 사탄들은 앙상히 남은 뼈에

더 남은 살점이 없는가 살핀다

매서운 눈으로 

탐욕스런 혓바닥을 훔친다 

 

518은 남은 살점마저 빼앗기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빼앗길 살점마저 없기에

 

애초에 가져갈 살점들이 있기는 했었던가

이제는 기억들도 가물가물하다

 

박관현은 오늘도 외로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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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트 주제

 

1. 기본소득 찬성 반대 (기본소득을 왜 부자가 받냐? 기본소득으로 사는 사람들 많다?)

2.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제한 찬반 (게임중독은 질병이다? 질병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위한 권리이자 자유다?)

3. 유전자 조작을 통한 아이의 탄생 찬반 (디자이너 베이비, 부모가 자녀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슈퍼맨과 같은 인간을 만들고 싶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엄친아를 만드는게 옳은가?)

4. 반려동물 보유세 찬반 (최근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려면 세금을 내야한다?)

5. 동물실험 찬반 (동물에게 권리가 있는가?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고 실험하는게 맞는가?)

6. 사형제도 찬반 (사형수에게 강제로 죽음을 명령할 권리가 있는가? 누명을 쓴 억울한 사형수의 가능성? 사형을 당하지 않으니까 범죄를 쉽게 저지른다?)

7. 흉악 범죄자의 신상정보공개 찬반 (흉악 범죄자의 얼굴을 알아서 뭐하냐? 흉악 범죄자니까 알고서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부작용은? )

8. 낙태죄 찬반 (태아는 사람인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산모의 자유는? )

9. 학교내의 폭력적 체벌 찬반 (폭력은 무조건 거부되어야 하나? 꼭 폭력의 방법이어야 하나? )

10. 여성 강제징집 찬반 (남자만 군대가나? 여자는 왜 안가나? 남녀차별인가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인가?)

11. 남북 통일 찬반 (북한과 우리랑 무슨 상관? 본래 한 나라였으니 다시 합치자? 무슨 이익이 있을까?)

12. 청소년의 이성교제 찬반 (청소년기 이성교제 막아야하나? 막는다고 막아지나? 그래도 막아야 선을 넘지 않는다?)

13. 안락사 허용 찬반 (중증환자의 고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차라리 죽고 편하게 해주자? 아니다 이건 명백히 살인이다?)

14. 소년 범죄 처벌 강화 찬반 (나이가 어리다고 책임을 안지나? 부모가 책임져야한다?)

15. 일회용 봉투 사용 금지 찬반 (환경파괴의 주범 일회용비닐 완전 금지? 너무 편하고 필요하다? 봉투가 문제가 아니다?)

16. 한류와 K-POP의 미래는 밝은가? (미래가 밝고 앞으로도 기대된다? 반짝 떴다가 끝날 것?)

17. 비트코인, 주식등의 중독 투자 찬반 (주식, 비트코인을 사는게 중독인가? 도박과 뭐가 다른가? 자기 재산으로 하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다? 불공정한 도박장이다?)

18. 재산 비례 벌금제 찬반 (재산이 많은데 벌금은 5만원? )

19. 네이버 별점 리뷰 찬반 (별점 때문에 가게가 망했다? 별점 때문에 신뢰가 가고 좋다?)

20. 노 키즈 존 찬반 (아이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 사장의 마음이다? 명백한 인권침해다?)

21.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 찬반 (동물의 권리? 돈이 되는데 뭐가 문제? 아이들의 행복은?)

22. 극단적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폐쇄 찬반 (일베, 메갈 등 사회악이다? 자유로운 표현?)

23. 학교에서 AI 인공지능 교사 도입 찬반 (똑똑한 AI가 더 낫다? 교육은 공부만 하는게 아니다? AI가 도덕도 더 잘 가르친다? )

24. 블라인드 채용제 찬반 ()

25. 먹방 폐지 찬반 (먹방은 가학적인 사회악이다? 피해부작용 크다? 재밌고 유쾌하다? )

26. 외모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 찬반 (인종차별적이다? 재밌으면 그만이고 그 사람들도 웃는다? 표현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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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의 시대이기 때문에

실제의 관계 실제의 사람 실제의 토지 실제의 재물이 더욱 중요시된다

가상현실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실제이다 그뿐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가상현실을 통하여 더욱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또한 인간의 상상력 안에서의 하나님의 창조영역 안에 있으니

 

창조하신 토지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사람은 살아난다

땅 토지 사람 실제적 만남 컨넥션 피지켤적 박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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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소를 키워봤다. 농촌에서 살았던 큰 유익 중 하나다. 

염소를 키우려면 염소가 얼마나 미련한 동물인지 알아야 한다.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염소에게는 그리고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는 매우 엄청난 어려움이 된다. 

인간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것을 네발짐승들은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 

 

염소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염소를 키울때 느꼈던 원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염소는 내가 박아둔 말뚝에 의해 생명이 좌지우지된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길고 튼튼한 밧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살찌는 정도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말뚝을 잘 박아두지 않으면 아무대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버려서 들짐승에 의해서 물어뜯김을 당하거나

혹은 농작물을 먹어 치운다고 해서 성난 말을 밷어오는 이웃의 클래임을 듣다가 더이상 키울 수 없다고 판단이 들어 염소탕을 끓어먹거나 팔아치우거나 관리소홀로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뚝의 뿌리는 아무리 흔들어도 빠져나가지 않게 깊이 박아두되 

그 줄은 길게 할 수록 더 좋다

줄이 길 수록 염소가 먹을 양식은 풍족해지고 뿌리가 단단히 박혀있을수록 안전하다

 

모든 문제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것이다. 

나는 보수라는 것에 뿌리를 깊이 박고 그 관점을 가지고 그 원칙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스케일의 최상위로 줄을 길게 늘어뜨려보려고 한다. 

 

낙태는 살인이다. 

10개월 전의 내가 나와 똑같은 생명체이고 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듯이

20년 전 29년전의 나를 죽이는 것은 지금의 나를 죽이는 것과 매우 똑같은 전혀 차이가 없는 

살인이다.

그래서 낙태는 살인이다. 

이 원칙은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가 태아였으며 태아였을때 누군가 나를 죽였더라면 그것이 정당화된다면

지금의 나도 누가 죽인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낙태가 살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도 이 원칙은 알고 있을거다.

 

하지만 이런한 원리를 가지고 그것을 들이대면 그렇게만 들이댄다면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낙태죄에 대한 이슈나 이와 비슷한 진영논리로서 동성애, 등등 많은 문제들의 가장 큰 맹점이

이원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우리 보수주의자들이 함께 공유할 땅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매우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가족이며 나의 형제자매이다. 그들과 나는 동료이며 나의 전우들이다.

그들에게는 매우 큰 잠재력이 있으며 미래 세대를 책임져나갈 이시대의 사명자들이다 .

나는 그렇게 공감한다.

그러나 이 사단의 세력이라는 것은 

무엇을 하는놈들이냐면 피아식별을 불가능하게 한다. 

누가 적이고 누구를 공격해야 하며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고 무엇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를 방해한다.

 

각설하고 이 낙태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낙태를 한다고 하고 낙태를 찬성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더라도 낙태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해보자

낙태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낙태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환경이 어려워서 준비가 안되서 자신의 계획과 다른 사건이라서 낙태를 하는거다

어쩔 수 없어서 태어나도 대책이 없어서 낙태를 하는거다

다들 죄책감이나 두려움과 함께 혼란스러움으로 낙태라는 선택을 한다. 물론 아주 예외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그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순전히 자기의 희생인데 10개월만 참으라는 거다.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정부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모든 양육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 아이는 보호시설이나 입양처로 인계되고 아이의 부모와는 전혀 어떤 관련이 없이 살게 해준다

 

낙태 희망 산모에게는 10개월을 참게한다. 이것은 정말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인건데

그 10개월을 강제적으로라도 참게한다. 그리고 낳게 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게 법적 조치하면 된다.

 

살인을 막기 위해서 개인이 10개월간 참을 수 있다면 합리적이며 공리적인 것이다.

살인을 막기 위해서 지금도 많은 부분들을 참고 있다. 

임산부에게 딱 그정도의 책임이나 역할만 부여하자

그리고 그 사회적 이미지 정부가 모두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기를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도기의 피해와 어려움들이 살인을 방조하는 것보다는 낫다

 

내가 보기에 이런 방법이 최소한이다. 내 생각은 최소한 이렇다

낙태는 살인이고 낙태를 하려는 자들도 낙태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대책을 낳는 대책을 확실히 마련해주고

산모와 태아는 이별하게 한다. 과도기를 지나면서 인식의 문제와 여러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고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윤리적 측면은 교회가 교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해야 할 일이지

법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게 파숀가? 자유주의적이지 않은가?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파쇼라도 해야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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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전망에 대하여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국 교회의 변화가 요구되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어떠했는지에 대한 진단과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어지며 이러한 진단과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한국교회적 전망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관계적 측면, 한국교회와 생태환경과의 관계적 측면, 한국교회와 지역사회와의 관계적 측면, 한국교회와 정치계와의 관계적 측면, 한국교회 안에서의 이웃교회와의 관계적 측면, 한국교회와

 

이러한 논의를 하기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전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다일교회김의신 목사에 의해 주장된 오늘날 코로나 상황에 대한 전제적 이해 수용하면서 본 논의를 지속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의신 목사가 주장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처한 전제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전제 1. 코로나 이후 우리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전제 2. 새로운 일상과 함께 새로운 신앙생활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중심에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명, 생태적 신앙, 신앙의 자리(공간,시간 개념)의 변화, 교회와 신앙의 공적인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전제 3.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혹은 더욱 강화될 것과 약화될 것이나 새롭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구별하고 좀 더 적절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전제 4. 교회 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좀 더 폭 넓은 대화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전제 5.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기는 위기라기보다는 교회의 신앙과 본질을 찾고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회이며 이를 잘 이용하고 사용한다면 한국교회는 보다 더 겸허한 자세와 개혁교회의 신앙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한국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신뢰와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도전들을 대입해보면서 실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들을 찾아봐야 할 것이며 특히 이 위기가 위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가 더욱 발전적이고 진리의 수호자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나아가길 소망해본다.

 

가장 먼저 우리가 겪고 있는 도전은 예배에 대한 부분이다.

예배는 기독교에 있어서 생명과 같다. 이는 마치 우리의 호흡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함께 주일에 모여 예배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앞에 무력하게 점령당했던 과거의 조선반도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침략과 정책에 따라 신사참배를 강요당하게 되었으며 신사에 굴욕적으로 참배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은 물론 신앙으로서의 생명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신사참배에 거부하고 제대로 된 예배를 수호하기 위해서 주기철 목사와 같은 영웅적 순교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남은 자들이 현재 한국교회의 후계자가 되어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지키고 있다.

한편 민족의 분열로 인한 한국전쟁과 공산주의 세력의 교회 핍박과 교인 살해 현장들을 떠올리게된다. 민족상간의 아픔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고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이 생명으로 지킨 예배를 수호하고 어떤 외부적 탄압 앞에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잡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아픔에 따라 예배를 방해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건에 대해서 매우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으며 매우 경계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수많은 목회자들이나 공산주의 세력에 굴복하여 배교했던 자들과 같은 역사적 맥락아래 놓이게 되는 치명적인 치욕과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제적 예배 중단과 여러 행정절차에 따른 불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의한 역사적 맥락에 서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용의가 정상적인 목회자라고 한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각오와 결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는 정부의 예배 정지 명령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와 이를 거부했을 시에 누가 어떤 이익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냉정한 사고를 가지고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일부 극우 세력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일삼고 있으며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서 교회가 급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가지게 하고 있으며 선교적 상황에 있어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과 호흡하지 못하며 자기들만의 선과 자기들만의 세상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교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더욱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과 함께 더욱 급격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지켜왔던 주일성수라는 전통적 신앙 가치에 대해서 혼란이 오고 있으며, 예배에 출석하는 문제와 헌금, 전도활동 등 신앙의 덕목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면서 온라인 예배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온라인 예배라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전부터 가나안 성도들을 중심으로 온라인 안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러한 움직임 아래 나름대로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류 교계에서는 이러한 가나안 성도들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 예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고선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온라인으로 예배해야 하는 강제적 상황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변화는 기존의 영상 예배가 어떻게 더욱 진정성있는 예배가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며 그렇나 고민을 따라 예배의 형식과 방법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예배드리는 기간이 장기화되고 그 가능성이 상존함으로 상황에 맞는 예배의 형식과 내용으로 조율되어지게 될 것인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설교의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설교자의 신학과 목회 철학이 더 드러난 차별성이 강조되어지고 소통이 가능한 설교도 개발되어야 하며 그 내용은 더욱 시사성이 강하고 삶의 자리에 대한 성서적 통찰력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설교에 대한 비중에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한번의 예배와 한번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을 따라 진행되어지는 통찰력이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모이는 예배의 차별성이 주어지는데 현장 예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나 예전이 요구 되어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안적인 예배의 형식으로 드려질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장 예배는 더욱 전통적 예전과 교회력 등으로 함께 모여 경험하는 모습으로 이전보다 풍성하게 진행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선교적 측면에 있어서 한국교회와의 관계성을 말할 수 있다.

해외중심으로 이루어져있었던 단기 선교는 다른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이 많다. 해외로 집중되었던 관심과 자원이 국내와 지역 사회 현안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미전도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존의 선교에서 국내의 환경, 교육, 문화 선교의 방식이 더욱 개발되어지고 교회 안에 그러한 전문성을 가진 그룹들이 성장하여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성경이 말하는 생명존중 사상과 생태계 환경 회복 문화를 지역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선교는 이웃과 함께하는 선교일 것이다.

생명 존중의 차원에 있어서는 기독교 윤리를 실현하고 그것을 더욱 알릴 수 있도록 자살예방이나 낙태, 차별 문제 등에 있어서 여러 선교적 역할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며, 자연 생태계를 회복하는 면에 있어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교육과 지구 환경과 마을 환경 교육 환경 등에 대해서 회복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교회에서 주도적으로 생태적 보호 활동을 일상화 하기 위해서 환경바자회, 빈 그릇 운동, 재생용지 주보, 탄소 금식, 개인텀블러 이용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실행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실천들을 전개해나갈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의미애서 생태계 회복에 있어서 역할 할 수 있다. 소외, 차별, 혐오 등 사회의 불균형 문제 해결과 사회 정의 실현 등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주어질 것이며 이를 통해서 교회의 새로운 선교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을 보았을 때에 선교적 측면에 있어서 복음을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복음의 온전한 의미에 대해서 더욱 드러내고 그러한 드러낸 내용들을 가치화시켜서 일상적 교인의 삶에 적용시키고 이를 통하여 사회적 의미에서도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선교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신앙생활의 패러다임 변화에 있어서 한국교회와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신앙은 주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목사라는 한 개인에게 중심이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건으로 인하여 주일이라는 한 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날로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교회 예배당에서만이라는 공간적 제한을 넘어 가정과 일터에까지 그 신앙 생활의 적극적 영역이 확대될 수 있다. 또한 목사라는 개인 중심에서부터 모든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지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진전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교회가 그런 시간과 공간과 인물의 확장을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이 바뀜으로 인하여 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니까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이다. 기존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에 대해서 많은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교회 중심의 신앙이 삶 중심의 신앙으로 전진하게 될 것이며 신앙생활의 공간에서 가정이 주체가 되므로 각 가정의 부모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는 더 작은 교회로 나누어져서 안전한 거리를 가질 수 있는 규모를 유지하게 되고 현실적 지도력을 세우게 되고 지방 분권형과 같은 체제로 운영되게 될 것이다. 또한 한 목사에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의지적 신앙으로 세워가기 위해서 개별 신앙 훈련이나 제도들이 마련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한국 교회의 문제가 이러한 장소와 시간과 인물의 중앙화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코로나를 통해서 오히려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위적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라 관계적 공동체로의 모습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교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조직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작은 교회라 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소그룹 모임들에 대해서 더욱 강조되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역할이 기대되어지며 이를 지향하는 운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임에 대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소그룹을 중심으로 선교회, 구역, 동호회 등 많은 모임들이 점차 사그러들고 작은 모임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즉 외형적 규모의 교회주의를 배척하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가진 교회의 변화가 요청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목양에 있어서 한국교회와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심방을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온라인 예배 등으로 대체되기에 심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에 있어서 심방은 매우 중요한 신앙 생활의 한 부분이며 이들에게 있어서 심방 없는 신앙생활은 매우 위태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 있어서 3040세대와 청년 청소년 세대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심방을 통한 전통적 목양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부담 없는 만남이며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대화와 진솔한 삶의 나눔이며 SNS을 통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방이며 목양의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근본적인 본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양의 역할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또한 관심과 사고의 영역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교회와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다.

코로나 사건을 통해서 이러한 바이러스의 창궐이 생명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지구 환경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게 된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 성경과 신학을 통한 연구가 단순히 기존 신학적 주제를 탐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입장에서도 심도 있는 공부와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제공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예언자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여 대답해주어야 할 자들이 바로 우리 개혁주의자들이다. 개혁교회들은 그 신학의 특성상 사회에 참여하고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신학이 발전해왔다. 그러한 풍성한 신학적 바탕 위에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적용하여 관점을 확대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민은 학자들만의 고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모든 성도들이 앞서 마주하게 되는 말세의 세상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함께 분투하며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터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결론

앞서 논의한 내용들은 짧은 글로서 모두 담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앞으로 급변하게 변화하게 될 교회 생태계와 신앙의 모습에 대한 도전들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문제를 묵상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문제 뒤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일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리더쉽과 교회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순간에 있어서도 남은 자들을 남겨두셨다. 우리 개혁교회는 이 시대의 남은자로서 그 소명을 감당해내야 할 것이다. 개혁교회가 아니라 어떤 신학과 교회가 성경적이면서도 전통과 심도가 있는 바른 신학을 가지고 이 세상에 대해서 앞길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개혁교회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 모든 교회들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전망에 대해서 더욱 논해야 할것이며 연구해야 할 것이며 특히 실천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조국 교회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며 자멸을 피하기 위한 책임감을 가진 문제이다. 우리는 더욱 연대하며 고민을 나누며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 옷을 입는 것에 있어서 전혀 거부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이며 그러한 숙제 위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지혜를 부어주시고 우리 한국교회를 견인해 나가실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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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콩 시민이었더라면 반드시 민주화 운동을 위해서 싸웠을 것이다.

중국 정부의 강제적 진압으로 인하여 

무고한 시민들이 강제로 연행되고 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압제와 폭력은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으며 

결국 모든 시민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모든 시민들을 노예로 만들어갈 것이다.

 

계획독재자들의 항상 그래왔던 역사의 반복이다.

그런데 홍콩이 이렇게 쉽게 넘어갈지는 몰랐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 자유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이 자유인지를 아는 사람은 결코 그 새장 속에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일 뿐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영혼이 피폐해진다고 하더라도 자유라는 허상을 쫒아 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자유자

 

자유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자유를 수호함으로서 이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예수에 메이면 된다. 

큰 것에 메이면 작은 것에서 자유로워진다. 

인류는 결국에 자유로워질 수 없으며 다만 그리스도 예수를 얻고 그것에 메일 때에만 

세상에서 자유로워질 뿐이다.

 

자유자 그리스도인은 홍콩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들은 나의 동지다. 

그들은 나의 형제다. 그들의 자유를 빼앗김은 결국 나의 자유를 빼앗김이 될 것이다.

그들이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면 나와 나의 후손의 혹은 교회의 자유를 빼앗아가게 될 것이다.

계획주의 독재자들의 횡포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

한발자국 물러서면 천걸음 물러선다. 이건 영적 싸움이다. 

 

나는 어떻게 이 영적 싸움에 동참할 것인가? 

무엇으로 

돈이라도 보내야 한다 사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나도 돕고 싶다. 나도 연대를 만들어서라도 뭔가 하면 좋겠다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 이 역사의 순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인 김수영과 같이 이미 사령에 있는 것이도 

나의 영은 죽은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내게 이런 사고를 하게 하셨으니 어떻게 도울지를 알게 하시고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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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와 그로 인한 여러 환경문제로 발생한 전지구적 재앙임이 분명해보인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역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하신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를 통해서 생존해나가는데
숙주인 박쥐가 살곳이 없어지고 개체수가 줄기 시작한다

 

그러자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고

스스로 변이를 일으켜 다른 동물에게도 적응해서 생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숙주인 박쥐가 적절히 번성하고 생존하고 있다면

코로나바이러스도 새로운 숙주를 찾아나설 이유가 없어진다.

 

박쥐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와서 실험하지 않았다면

코로나도 새로운 개체와 만나게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서사적으로 본다면 그들도 살기 위해 새로운 도박을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난 인간과

그 원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이런 재앙이 닥친 것이다

 

그러한 증거로 코로나 기간 중 탄소배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대기는 맑아지고 동식물들에게 회생의 기회가 잠시 생겨났다

 

하지만

빙하가 다 녹고 기온이 상승하면 

코로나와 같이 혹은 그보다 더 전염성과 치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창궐할지도 모른다

이는 기정 사실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교회의 목회적 실천은 어때야 하나

 

성경은 인간을 죄인으로 말한다. 이 죄인이라는 인식은 성경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어린 아이라도 죄인이라는 사실은 항상 자각하게 될 것이다.

 

죄의 특징은 먼저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죄의 특성,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의 죄인됨에 대해서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인간의 선택 구조가 이기적 동기에 의함이라는 말이다.

 

이기적 동기는 자신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다면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택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선택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도 어느정도의 이기적 수단이 되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건과 같은 판데믹 재앙은 이 이기적 동기에 기반한다

 

인간의 역사는 한번도 이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따지고 더욱 유익하고 많이 얻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진행되어온 역사다

이 흐름을 꺾을 수는 없다.

동학난이라는 것도 결국 분노한 민초의 이기심에 따른 것이 아니냐

독립운동이라는 것도 결국 억압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한에 사무친 자들이 

이기심을 동기로 하여 일본이 독차지하는 권리를 빼앗아오기 위함이지 않았나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이기심이다. 자신의 자기 가족의 유익이 핵심이다.

 

교회는 이 죄와 정 반대로 가야하는 것이고 그 반대를 이야기해야 하는 곳이다. 

세상과는 정 반대의 새로운 사상이 나와야하고 새로운 역사가 나와야 한다

그 마이너한 공동체의 파장이 어떠한 역사적 조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하여

기적과 같이 사용되어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이러한 전지구적 재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말하는 원리와 세상의 구조를 따라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그들이 바보라고 말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사회학자라거나 철학자라면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줍짢은 것들을 좋다고 멋있다고 시도하다가 

피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의 피에 절대로 보상할만한 명분이 없다.

그런 인간들을 많이 보았다. 

자신들이 말로 잘하는 글로 꼬드겨서 인생을 투자하게 만들고 

그 인생이 파탄나고 무너지는 것에 결국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피해는 가장 작고 가장 못배우고 가장 가난한 자들이 본다.

 

그러나 교회에는 피보는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보상할만한 명분이 있다.

그것은 천국이다. 예수의 부활이다. 신자게 주어진 가장 큰 보상을 넘어설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어진 상이다. 

그 자유다. 모든 억압을 상쇄하는 자유의 보상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명분과 정당성이 있다.

교회 안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권리와 확신이 있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 

체게바라의 말과 같이 불가능한 꿈을 가지고 

현실성있는, 여기서 말하는 현실성이라는 것은 실현가능성의 전체적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의미한다.

이 현실성 있는 작은 실천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그게 뭐냐 나에게는 뭐냐 

환경을 위해서 나의 이기심을 줄이는 것.

우리 교회의 이기심을 줄이는 것. 

자기만 아는 자기 교회만 아는 자기 가정만 아는 태도를 버리는 것.

그것이 코로나를 이기는?아니 이기는게 아니라 

코로나를 맞아들이는 받아들이는 태도다.

 

일회용 커피잔을 사용하지 말자.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자. 그런 캠패인과 문화를 만들자

 

교회가 신자가 움직여야 할 때이다. 이 시대를 해석해주고 진찰해줄 자가 없다.

실력자가 없다. 무지한 자들이 맹인들이 맹인을 인도한다.

그 앞은 낭떨어지인데도 그들이 인도한다. 

이 시대를 해석하라 이 시대를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라 신학을 가지고 해석하라

자신의 철학을 통하여 해석하라 그 해석의 능력이 생존의 능력이 되어지는 시대가

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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