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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 . 

사효론, 인효론 

개혁파는 신효론 

ex opera operato

예배가 제사가 아니다 - 종교개혁

성례는 은혜를 상징한다. 종교개혁을 무효화하는 일을 하는 것. 

제단 altar -> table 성찬상.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다. 매일의 삶에서 제사장의 삶을 사는 것. 성례를 행하는 것만 제사라고 확정하는 것. 

 

라바누스 마우루스 : 수찬자들이 믿음으로 성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의 임재가 믿는 수찬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칼빈은 - 믿음으로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중세의 2차 성찬 논쟁 

투르의 베렝거

성찬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현존하는데 - 본질로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현존한다. 

본질? 본질로 있다는 것이 나중의 로마교의 입장 

성찬의 요소들이 축성 때 변하는데 그 본질이 변하는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란프랑크, 흄베르트. 

외양은 변화가 없지만 본질은 주의 몸으로 본질로 변한다. 

본체 본질 화체설.  

외형은 같지만 본질이 변했다. 본질과 본성은 같은 것. 

인성으로서는 그렇지만 신성으로서는 다르다. 

 

베렝거 영적인 현존을 말하다. 

 

화체설이 로마교의 공식 교리로 채택됨. 

- 투르의 힐데베르 화체설 (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 제4차 라테란 공의회. 공식적 교리.

818년부터 시작된 화체설이 11세기 거쳐 13세기에 공식화된 것이다. 교의화.

 

토마스 아퀴나스. 

공식적 교의로 된 것을 체계화한 것. 질료와 형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여 성찬을 설명.

축성 시에 질료는 그대로 있지만. 형상(idea, essentia)가 변하는 것.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 

그 새로운 사조에 맞게끔 성찬을 설명해 준 것이다. 중세적 종합.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천주교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음. 

 

시행을 하면 그대로 역사한다. 구약에는 할례를 받으면 . 

성례론과 로마 카톨릭적 이해를 반영하는 듯 하다. 

 

소위 준비주의 . 성례 자체가 효과를 낸다는 것. 예배가 제사다.

 

중세의 세례 이해와 문제점. 

기여 ; 표로서 세례를 강조, 유아세례에 큰 기여. 

 

사효성에 근거한 세례

세례를 베풀면 그 자체가 구원을 준다는 세례중생설

 

한국 로마교 전례 역사에서. 중국 신부 주문모를 모셔와서 미사함. 이후 김대건. 

제2바티칸 전이라 라틴어로 해야 하는데 다 못 알아 먹는다. 

뭔가 주문을 외워야 예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각국 언어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주문모는 라틴어로 예배함. 아무도 알아먹는 사람이 없음. 기계주의 의식주의. 

 

세례 중생설 (baptismal regeneration theory)

세례의 표가 그것이 표시하는 바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세례를 베풀면 그 시행 자체로 중생이 일어난다. 

 

이거 없으면 아직 교회에 있는게 아니다 -prot> 아직 세례를 못받았어도 교회에 있다면 교인이다. 

세례를 아직 안 받았으니. 세례를 받음은 full membership을 가지는 것.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는 의미. 

성도들을 계급화해서는 안된다. 암흑리에 초신자가 있고 상급신자가 있고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례를 받으면 중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주입된 은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이 공로가 주어진다. 세례를 받게 되면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혼에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는 것. 

지워질 수 없는 특성이 주어진다. 

종교개혁은 이런 특성이 있는게 아니다. 사제는 임직시에 그것이 주어진다. 목사는 그렇지 아니하다.

 

세례는 매우 중요하나. 그것에 대한 사효론이 문제고, 세례가 중생이다는 아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불멸의 특성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믿을때. 신효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믿기 전에 성령세례로 믿게 되는 작업.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미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안흔 교회 바깥에 있다면 

 

육체, 부패한 인간성. 

 

예배는 

 

성례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생한다. 진정 믿는 사람에게만 세례가 주어지는 것이다. 언제든지 안으로 향해서

그러나 말씀은 안과 밖으로 간다. 

 

성례주의 - 의식주의. 말씀이 약화되어지는 것. 

결국 천주교 체계에서 미사는 십자가를 재현하는 것. 

사소한 날마다의 죄를 용서하는 효과가 있고 중죄에 대해서도 참으로 유효한 구원적 효과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 

 

평신도라는 용어. 

모든 성도들에게 선지자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서 전하는 것이다. 

종교개혁때에 말하기는 하였으나 아주 강하게는 못한 것.

우리가 다 왕임을 강조해야 한다. 종교개혁에서는 이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전부 다 반역죄가 되었을 것임. 그래서 말하지 못함. 

 

이런 세가지 역할을 보편적 직임이라고 말한다. 

개혁신학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상. 교회에서 맞는 특별한 직임. 

모든 성도는 다 보편적 직임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다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왕이다. 

개혁파는 이를 강조해옴. 한국은 이를 덜 강조하다. 보편적 직임. 

로마교는 몇몇만 보편직. 이를 없애고서 이 의식이 없다면. 

왕에 대한 직임을 - 성도들과 공론할 때에 아담을 세상에 주셨을 때 온 세상을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라고 하심.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의 특별한 영역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이 구현되게 하는 왕역할. 

피조계 전체를 우리가 분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는 것.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 

제사장의 의의 - 가정, 교회 전체가 그렇게 가도록 하는 것.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포함되는 것이다. 기도의 제단이라 할 때에. 제단은 이제 완성된 것이고. 제단을 쌓는 게 아니다. 

 

성체 보관함을 들고 일년 한번씩 동네를 돈다. 그러면 마을의 신자들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에 절한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미신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파서 못 오면 남겨놨다가 전달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개혁자들은 거부한 것. 

성찬을 못하면 심방은 반드시 하며, 다음번 성찬때 오도록. 

 

입교 이후 성찬하는 이유? 고 자기를 살피고서야의 능력이 되어야. 고전 11장. 

중세교회의 성례 이해. 기계적인 성례론 성례주의. 세례 중생설이 중세의 기본적 세례 이해. 

세례는 영적인 사건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이 거기 필요하다는 것. 신앙이 없으면 안된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성례 이해의 공통점. 

성례의 절대적 필요성. 

1524년부터는 더 말하는데 재세례파가 유아세례 인정 안하기에 .

논쟁속에서 더 나타남.

 

세례 때에 죽고 살아난다. 

영국 성공회는 천주교적 세례 중생설을 가지는 것. 

 

루터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 

바르티안은 날마다 죽고 사는 것. -> 칭의가 매번 계속되는 것. 

 

신약 성경에 명확히 유아세례를 말하지 않지만 암묵리에 고백하는 것이다. 함의를 말한다는 것. 

재세례파는 열광주의자. 

 

세례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 생애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임.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는 사제다. - 루터. 

 

성례주의의 잔존. 

루터파는 로마교의 성례주의적 성례 이해를 극복하였으나 성례주의가 잔존하여 세례 자체가 무슨 효과를 내는 것으로 표현했다. 

개혁파는 성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계적 성례론을 말하지 않음. 

 

유아세례에 대한 언약적 이해. : 구약의 할례에 대한 연속성으로서. 은혜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할례로서 인친다면 이를 세례로서 나타낼 수 있다는 것. 

 

세례는 외적이고 법적 관계 언약의 표이다. 생명적 관계의 표와 인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법적 관계에 생명적 관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명적 관계 없이 법적인 관계만 있을 수 있다는 은혜언약의 이중적 측면. 항상 이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법적 외적 은혜언약은 반드시 생명적 언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적이나. 항상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시적, 비가시적 교회와 연결되는 것이다. 

 

성찬에 대한 칼빈의 이해. 

 

공재설은 기본적으로 화체설과 같이 간다.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대로 남고 동시에 공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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