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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시대에 어린 아이들은 참석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12시에 의무적으로 교육하는 예배에 보내야 한다. 

칼빈의 주석을 보면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주석의 내용이 1장부터 설교한 것을 다듬은 것인데. 

모든 가족이 모여 예배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신앙교육의 내용이 분리해서 하던 같이 하던지 세대 간의 차이가 없이 그 신앙의 내용이 연속되게 하는 것에 핵심이 있어야 한다. 통합 예배를 드리고 싶다면 늦으면 중학교부터 같이 하는게 좋을 듯 하다. 여러 예배들을 다 살펴도 전체가 예배 드리는 것은 발견하지 못함. 예배 드린 것을 부모가 확인하는 것은 맞지만 연령대와 지적 수준에 따라 신앙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했기에 그 애들을 다 고려해서 신앙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펠도른의 한 교회는 애들을 설교 직전에 따른 곳에 보낸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 점검이 안 되면 의미가 없다.

교회가 일사분란한 것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그 사람의 양심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일 수 있다. 

찰스 피니가 말하는 강단 앞에서 앉으면 은혜를 받는다. 그런 형태로 일사분란한 것은 의미가 없다.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평생을 두고 교육해야 한다. 집에서도 긴장, 교회에서도 긴장.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잘 하고 자발적으로 숨기지 않고 그러면서 연약도 드러내고 보고 개선하고 성장하려고 하는 것들, 그 기반 아래 모든 교육들이 이루어지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세대간의 신앙의 일치. 그러나 각 교회의 형편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먼저 교리를 가르친다. - 16세 정도부터는, 논쟁이 될만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았다. 신앙교육서 안에 대상이 실질적으로 청소년이다. 예정론을 담고 있으나 따로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교육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는 것을 피한 것. 따로 언급하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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