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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은 사실상 플라톤주의자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영감해주셨고, 그것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조명해주셨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플라톤주의자라? 

 

불트만은 부활신앙을 강조하지만 부활을 믿지 않는다. 

부활의 역사성, 사실성을 강조한 어거스틴. 부활의 역사성.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아니다. - 과학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과 같지 않다. 

독특한 일이다. History가 아니라 Gershirthle 바르트, 일어난 일이라는 것. 

그것을 역사성에 기록될만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은 볼 수 있는 눈이 없기에. 

바르트가 부활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것인가. 의도가 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탐구를 해서 책에 기록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실제 일어났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주는 사건이 뭐냐가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임이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건을 게시르테. 

 

그러니까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의도는 일어남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불트만과 같은 사건. 이런 식으로 표현함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최소한으로 하면 일어났음을 인정하더라도, 역사적 탐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대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과학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이 세상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활의 독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말 속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우리는 창조나 부활에 대해서 과학적 사실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따를 뿐. 플라톤주의자가 아니다. 

 

바빙크는 전인으로서의 사람을 강조한다. 칼빈에게 배워서 칼빈을 교정하는 것이다. 

 

몸과 영혼을 둘 다 중요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인물에 대해서 평생 연구해라~! 혹은 아닌 사람에 대해 잘 연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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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파에 대해서 

가구레 기리스탄 

 

이들에 대해서 단순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이 죽이려 할 때에 피하셨다는 말. 

칼빈은 현실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피해라. 피할 수 없다면 순교하라.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답변이 안되는 것이 많다. 

 

국가를 위해서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 

신앙의 원칙은 가지고 연약한 신자들을 돕고 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니고데모의 변명 - 칼빈 성도의 처신(박해의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밝혀놓음) 

위그노 피난 간 사람들이 농노들이 없음. 거의 귀족, 상공업 수공업자, 하층계는 하인들 정도. -> 

 

제네바에서 난민들의 기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으로. 

교회 공동체가 생각할 때에 혼자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협력함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520년대 중반까지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찾을 길이 없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정황상 볼때에 여러 지역과 곳에서 개신교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1555년 공식적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짐. 

그 사료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조항으로 되어있지 않다. 짦은 내용들이다. 6조항 정도 6 단락 정도로 되는 신앙 고백적 성격이 담겨있지는 않다. 성경에 대한 고백. 성경에 대한 존중. 성경과 사도 신조 고대신조를 고백한다는 정도 / 성찬에 대한 입장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의 성찬 조항을 그대로 가져온다. 

 

프랑스신앙고백서와 웨민이 다른 것이 뭐냐 - 표면적인 내용을 보면 1조항 신론 2-5조항 성경. 

칼빈의 신학적 인식론과 관련되서 신론이 먼저인 것. 

 

웨민이 칼빈의 신학적 전통을 따랐다고 현재 많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스위스 제1신조, 2신조에서 성경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인식론적근거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의 전제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임. 칼빈의 신학적 특성이 신론부터 다루는 것. 

 

웨민이 나올때는 앞선 신앙의 글들을 다 살피고 종합하는 것. 개혁파 신학을 정립하는 것의 의미. 

1537년 칼빈의 제안 : 교회에 대한 제시 그러나 1538년에 쫓겨남. 

1550년대부터 강조되는 것이 신앙점검. =/= 칼빈의 정치원리가 도르트, 스코트, 웨민,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적용과 해석이 다들 조금씩 다르다. 

제네바의 경우 : 교회가 4-3-4개로 바뀜. 장로는 개교회의 장로가 아니라 전체 교회의 장로다. 

스코트, 도르트의 경우 장로는 개교회의 장로. 그래서 개교회 노회 총회의 개념이 확증되는 것. 

칼빈의 개념에서는 총회 개념에서 장로, 목회자의 역할을 규정한다. 칼빈은 사실상 감독과같은 취리히는 감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 계급적 의미가 아니라 전체 교회 목사들을 대표하는 자. 목사들 관리감독. 국가와 교회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것. 

 

오늘날 총회가 끝나면 그 사람이 노회와 총회를 대표하는 사람은 필요하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누군가 대표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개념에서 노회장 총회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 그 교회를 대표해서 해야 하는 행정적 처리 등. 

 

프랑스 신앙고백서의 구조 : 

서론 : 1항에서 5항까지 - 인식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 인식론적 전제가 앞서 있다. 

본론 : 6항 - 40항 신앙의 주제들. 하나님의 존재6. 하나님의 사역7-40.

 

프랑스의 장로정치 원리가 어떠했는가? 

프랑스 신앙고백의 신학적 특성 

12항 : 예정론은 후택론적이다. 

 

28항 : RCC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는가? 보편 교회의 일원으로 보는가 아닌가? 개별 신자들의 구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보긴 하는 것. 쭉쩡이와 알곡이라고 보면 RCC는 쭉정이다. 그러나 개별 신자들의 신앙과 관련해서 완전히 보편교회에서 제외하지 않음. 

 

세례전적. 사효론적인 것이 아니라 성례와 성례의 표적이 분리되어 있어서

RCC의 박해 안에서도 객관적으로 구원의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 어렵지만 항상 추구해야 할 신앙의 자세이다. 

 

보편교회의 일치된 신조라고 볼 때에 RCC를 니케아와 칼시돈 아타나시우스 . / 그 외의 것들은 다 받을 수 없는 것. 그런 면에서 보편교회라고 받아들이기가 / 

사도적 가르침을 추구하는 이들의 고백. 이 고백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은 저주. 

보편교회가 아닌 이단이라면 -> \

바빙크가 교의적 책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이 아닌 고백이 참된 고백이 중요하다.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것. 

참된 교인은 주님만 판단하실 몫이고, / 이런 부분들이 종교개혁자들에게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개혁자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칭한다. 하나는 교황 하나는 마호메트.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할 때에 거짓 교회라는 전체 교회라는 것을 의미. 그러나 개별 신자들에 대해서는 성례에 대한 본질의 성분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분리하는 것. 

 

종교개혁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사도적 가르침에 벗어날 때 회복하는 것.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한 부분은 거의 건드리지 않음. 이런 부분에서는 존중이 있었던 것. 

RCC는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거의 사라지는 교회의 표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교회로서의 모습. 그런 면에서 RCC는 개혁교회의 개혁 대상. 

어떤 부분은 잘못 가르치거나 내 신앙이 나를 구원하지 신조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고백이라고 할 때에 /\ 성도들이 신앙고백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의 적정선을 말한다면 사도신조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을 고백한다면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고백이 있다면 구원의 유무를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것. 

RCC가 참된 신앙을 가진다면 개신교 신앙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개신교에 대한 신앙의 모습이 충분히 신뢰할 정도의 성격인가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 것. 

신학적 지식과 교회의 모습, 특성과 관련해서는 개신교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성경 전체가 규정하는 신앙의 내용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단을 규정하는 문제와 

 

이신칭의를 고백하지 않는 교파들 : 감리교 엄밀히 그렇지 않음. - 구원이 없다 단정지을 수 있냐? 있을 수도 있다는. 

단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데 . 역사적 정황을 보지 않고 조항만 보면 엄밀하게 편가르기만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그 당시에 교회를 보편교회를 어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바라본다면. 

 

교회 정치 문제

25-28항 보편교회와 참된 교회. 29-30항 교회론과 교회 표지와 정치 / 교회론이 약 9조항정도로

1) 정치 R.C.C -> 장로정치 문제/ 

종교개혁 이후 대안적 교회 정치가 필요한 것이었음. 그것을 위해서 정치 원리를 생각하고 규범을 정한 것임. 

장로정치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 

2) 권세 교회의 주인이 누구냐? RCC는 교황. 30조항에서 머리로서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교회의 권세는 주께. 직접적 통치. 말씀과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섬기지만 세부적으로 그 교회를 다스리는 구체적 수단으로 직분을 이야기하는 것임. 

3) 시행 

 

동등성만 이야기할까 아니면 직무에 따른 질서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임. - 직분의 동등성은 하나님께서 목사의 직무를 주시고 / 그 직무를 충실히 하는 것을 서로 존중하는 것에서 동등성이다. 직무적 차이와 함께 질서가 있다! 

 

현대 교회에서 개교회 안에서 ; 목회자의 권위가 거의 없다. 질서적 차이가 거의 무너진다. 

교회 모든 조직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 목사에게 주어져 있다. /\ 장로와 집사 /\ 질서적 차이. 

 

프랑스 교회는 실재로 어찌 운영되었는가?

국가와 분리된 교회-장로정치가 어떻게 시행되는지에 대한 첫번째 모델이다. 

1) 국가가 교회를 인정하지 않음 

2) 프랑스는 제네바보다 훨씬 크다 ; 프랑스는 박해, 너무 넓어서 총회가 불가능. 당회 (지방회) 노회 전국총회. 4단계. 

3) 임기제-> 종신제 . 무목교회, 무장로교회 - 집사도 치리회 안에 들어옴. 교회 안에 장로나 집사가 교회를 관리해야 하는 것. 혼합된 형태. 시간 속에서 정리가 되었음. 박해가 계속되어서 종신제로. | 대도시에는 목사가 있을 수가 없음. 

직무에 따른 차이에서 설명해야 하는 것. 청빙을 받아서 실제로 장로나 집사처럼 교회 속에서 은사에 따라 대처하거나 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기에 목사는 종신적 개념을 가짐. 목사의 직무와 관련된 책임. 말씀을 잘 배워서 가르치고 목회적 돌봄과 관련해서 감당하는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목사의 직무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해서 목사와 장로의 직무적 차이에 대해서 질서적 차이에 대해서 어떤 근거로 하는지에 대해서. 교회 청빙에서 세워졌기에 목회자는 종신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담임목사 부목사 개념은 종교개혁의 원리에서 맞지는 않다.

대표목사 - 동역목사식으로 해야 한다. 

당회에도 옵저버라도 참여시켜야 한다. 

 

1562년 오르레앙 총회때 담임목사가 당회 의장이 되는 것이 규정화 되었다. 

민주주의적이 귀족주의적인 특성. 귀족적인 것은 배움과 인격에 있어서 존경받는. 

 

개신교가 1555년 공식적 교회가 설립하기 전까지 각 지역에 어떻게 퍼졌는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다들 해석이 다르다.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곳의 특성과 상황들이 고려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았을 때에 프랑스 교회를 잘 봐야 한다. 국가와의 분리. 노회와 총회의 분리 등을 보았을 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역사적 배경

1) 고지대와 저지대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연합 -> 스코틀랜드 ; 콜룸바 기독교와 문자를 전함.

2) 종교개혁의 여명기

14세기 말 존 위클리프 / 패트릭 해밀턴-이신칭의를 이해한 최초의 사람. 화형.

3) 정치적 상황

섭정의 지속 왕권 약화. 카톨릭의 친불파, 개신교의 친영파./ 헨리8세의 수장령-개신교화

4) 조지위샤트의 순교와 존 낙스의 등장

위샤트;지식인 대상 광범위 전파-화형->존낙스 제네바 메리여왕으로 망명.

5) 아가일 백작 가문과 회중의 귀족

아가일 백작의 종교개혁시도 - 낙스와 대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종교정착 개신교화. 

6) 존 낙스의 귀국과 회중의 귀족들의 전쟁.

낙스의 귀국. 퍼스에서 집결. 스코트와 프랑스는 개신교도들을 압박함. 

기스메리의 사망 이후 에든버러 조약. 

7) 종교개혁회의 1560년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 통과-> 종교개혁 신앙을 국가의 신앙으로 받아들인 최초국가.

 

작성인물

존 낙스, 존 로우, 존 윌록, 존 스포티스추드, 존 더글라스, 존 윈람. 

 

작성 목적

개신교 귀족들이 종교개혁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작성. 

4일만에 급히 작성. 여전히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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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 -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가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불변하는 진리라는 실재는 하나님 자신이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모든 것의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합리적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성이 하나님의 합리성이다. 

르네상승 이후 하나님이 없어도 합리성이 가능하다는 것. - 어거스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합리성의 근거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가 네오플라토니즘을 극복했다고 보는 것. 

세상은 모든 점에서 하나님께 의존한다. 

어거스틴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바라본다. 세상 것 또한 하나님의 빛 안에서 발전해야 한다. 

세상은 실재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어거스틴에 의하면 창조주에게 존재와 생명, 이해함, 복됨의 구별구별이 없다. 그로부터 존재라는 말이 나오고, 이것이 참으로 속한다. 하나님은 초본질적이라고 표현하다. 

하나님은 초본질적이다. 

본질과 속성을 구별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속하는 본질 / 하나님의 한 속성이 simplicity

 

어거스틴 하나님의 단순성 - simplicity

               하나님의 삼위일체 - unity

위격을 나누어 언급하는 것은 그 상호 관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삼위의 한 본질이 있다! essntia - 그 상호 관계적 구별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삼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말이 위격보다 더 현대적인 용어이지만 -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위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로고스가 있다면 창조해야 한다.  창조는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이다. 

하나님이 시간 안에서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하신 것.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에 cum tempere 이를 영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나면 그것도 영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원 1. 영원 2 

영원 1은 timelessness

영원 2는 endlessness

기독교적 영원관은 이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다. 플라톤주의는 무시간성. 오스카 쿨만은 끝없는. 

그러나 둘 다 포함하는 것. 

이 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생의 시간은 - 영원과 상관이 없는가? 시간은 영원1과 영원2사이의 것.

그래서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이 참여하시고 같은 거리 속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만이 아니라 

시간과도 같이 계시는 것. 모든 것. 모든 순간에 대해서  - 모든 순간이 영원한 지금이다. eternal now.

모든 순간이 영원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관점이다. 

 

Creatio ex nihilo  무로부터의 창조. 

 

섭리 - providentia = 모든 것을 다 돌아보시는 것 : 따라서 인간의 타락도 섭리 안에 있는 것. 

타락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 섭리 밖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는 타락을 반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섭리 안에 있다. 이를 허용적 섭리라고 - 칼빈도 이 용어를 잘 안쓰려고 했으나 - 마지못해 되어진듯한 인상을 준다는 의미에서 / 이를 대조시키려고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허용이라는말을 싫어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허용적 섭리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타락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privitio boni ; 하나님이 악의 author가 되는것 . 죄의 조성자 .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어거스틴이 말하는 실수는 이에 대해 선의 결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의도였지만 - 이 용어가 가진 큰 문제는 보속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악을 만드시는 악의 조성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자하는 의도였던. 

어거스틴도 악의 실재성을 인정하지만 선의 결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악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님. 

악이 창조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승리하게 된다는 의미. 

 

개별적 영혼 개별적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여러 말들을 보고서 

 

안토니 후크마 - 기독교는 영혼의 불멸설을 꼭 얘기할 필요가 없다. - 잘못된 설명이다. 어거스틴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말한다. 

그가 원하셔서 이 세상에서 낮아지심. 

 

 

교회는 corpus permixtum. / 

영적 예루살렘이 있으니 더 큰 이스라엘 - 신약을 바라보는 것. 참 하나님의 백서은 당시 주어진 계시의 내용을 알고 믿는다. 참된 교회는 창세 전에 선택된 성도들의 고정된 수이다. 

 

미신적으로 행하는 성례에 대해 비판. 

어거스틴은 성례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칭의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졌기에 칭의한다.. 

선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례가 구원하는 효과를 내지 않는다. 

사효성. 인효성. = 시행했다고 해서 그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믿어야 한다. 로마교는 시행하면 효과가 나온다는 식으로 어거스틴의 의도와 맞지 않게 해버린 것. 

신효성  - 믿을 때 성령에 의해서 효과가 있다. 

 

성례에 대해서 - 세례를 이단적 교회에서 받았다고 하더라도 정통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보충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재세례를 주지 않았다. 이전에 있었던 것을 /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라면 재세례를 주지 않았던 것. 기준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이기에. 

 

칼빈과 어거스틴. - / 브라운의 어거스틴 전기 . 

제임스 오도넬 ; 박경숙 교수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곳에 와 있다는 것. 들여다 보면 그렇게 얘기를 한다. / 

Amor Dei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 이 땅에서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잘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만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명료하고도 자세히 논의한 책도 드물다. / 나그네이지만 위에 속한 사람들이다. 

 

0------------

어거스틴의 문제점 

1) 성경과 전통의 문제 ; 정경에 대해 아무 유보 없이 찬동해야 한다. -> 교회의 결정이 정경을 결정한다(로마교적) / 

2) 존재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 성경의 하나님 중심인가 존재 자체 중심인가의 문제. 악을 선의 부재라 여기는 

3) 죄의 전달 문제 ; 악을 선의 부재라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죄를 약화시킴. 아담의 부패 전달이 성적관계다. 이원론적 이해가 있었음. 몸과 관련된 일은 다 악한 것이라는 관념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에덴은 육욕과 연결된 것이 아니었어서 괜찮다.

4) 교회에 대한 이해 ; 교회가 나누어지는 성례 때문에 교회가 거룩하다. / 감독들이 권위의 자리가 있다. 

5) 성례론 ; 사효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찬동하는 것. 인효성. 0

순교가 세례의 씻음과 동등한 역할을 한다. - 이 땅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은 이제 하늘에 계신다. 

성찬은 희생제사가 아니다. 그 핵심은 성찬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님께 영적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희생제사는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준다고 한다. 

6) 구원론에서 복합성을 드러내는 문제점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의 영적 선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서 입장이 달라지는 것임. 영적 선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그것. 어거스틴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 일종의 공로가 된다. 은혜가 없이는 안되는 것. 사실은 공로가 된다는 것 - 천주교ㅎ의 입장이 된다. 바꿨는데도. / 

선을 원하지 않을 때 = 사람들에게 작용해서 선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은혜다. 

죄의 죄책에 대해서 강조했지만, 죄의 지배와 오염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로마교적 특성으로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 우리의 믿음은 형성되지 않은 신앙 0 이것은 의미가 없고 믿음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 카리타스테로서. 사랑으로 형성된 믿음이어야 한다. 

사실상 칭의가 - 의화로서 이해되는 것. 어거스틴의 은혜론은 좋은 것이면서도 문제가 된다. 

그의 은혜론은 더 성경적으로 철저하게 따라가야 할 것이다. 

 

세례 중생설 

 

 연옥에 대해서 사실상 열어두는 결과를 낳았다. 

 

마리아에 대해서 - 죄가 자범죄가 없을 수 있다. 죄 없으신 분을 임신하고 낳을 공로가 있따! 공로? 공로사상이 존재함. 공로가 있어서 그녀에게는 죄를 극복할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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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시대의 인간론에 대해 

 

Millard J. Erickson - The Word Became Flesh

christology

그리스도론의 역사 고대 교부에서 현대 신학자까지 김동건

 

시대의 정신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성경이 생각하는대로 고쳐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의 시대 정신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남들은 다 그렇게 가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서 

 

어거스틴이 아니었다면 마니교에 대해서 몰랐을 것이다. 

형상과 모양을 나누는 이원론 형상 속에는 윤리적 완전성을 ; 안지 인간 본성이 도덕적으로 와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만 포함되어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 어거스틴은 원죄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된다. 

이 원죄가 제대로 설명되려면 인류 최초의 죄가 온전히 그 결과가 온전히 인정되어야 한다. 

주지주의 - 지성을 중심의로 간다 / 주의주의 - 의지를 중심으로 한다

뭐든지 지성을 중심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플라톤. 인간의 지성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거꾸로 

죄책은 아니다 

 

오리겐의 인간론

태어나는 순간에 악하다 - 성관계에서의 악함과 부정함이 있기 때문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는 복이 있도다 라는 것을 잘못 적용함. 0

그에게 실제적으로 원죄는 없는게 된다. 영원 상태에서 우리가 지은 죄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헬라 교부들의 은혜론.

죄 얘기를 하면 은혜 얘기를 하게 된다.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 사이비와 정통의 사이에 걸쳐 있는 것. 

moneregism(동력주의) - > synergism (신인협력주의) -> pelagiusmism()

가장 유행하는 생각은 syneegism 이다. 폭도 굉장히 넓다. 

우리가 ㅁ라하는 monergism 은 하나님이 하신다. 주권적 은혜를 말함.

이것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 ; ultracalvinism 0 초칼빈주의 - hypercalvinism 

arminius 주의를 이단이라고 했더니 나중에 가서 삼위일체 부인 등 이상하게 나아감. 

초기 arminiusnism을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감리교를 이단이라 할 수 없듯.

하지만 hyper calvinism은 이단이다. - 장안중앙교회 박용기목사. 성경신학을 굉장히 강조함. // 일반은총을 부정함. 그래서 나간 ;  PRC- herman hoolsema의 교단 . 이를 어찌 규정할 것이냐. 

이신칭의를 믿는다면 정통이라고 볼 수 있다. 

semi pelagianism 

 

monergism은 기도만 하는 게 아니다. 움직이는 것이다. / 목회는 synergism으로 해야 한다는 식의 말들은 독력주의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 하나님이 하심을 인정한다면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오해할 행동도 하면 안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어느정도 되면 구원받는 식이다. 

 

서방 교회에 대해서 터툴리안 어거스틴

 

터툴린안 - 헬라신학의 창조설(모든 영혼을 창조 이전에 다 창조하셨다. 시간에 따라 한 사람씩 보낸다)(Soma sema- 몸이 감옥이다 - 죄를 지어서 몸으로 보낸다 하나씩) ->  대신 영혼 유전설 (traducianism) - 몸 만이 아니라 영혼도 부모에게서 온다. 부모의 영혼이 나누어지는가? 그래서 결합되는가? - 아니면 오리겐처럼 영원전에 다 창조해놓았냐? 난점이다. 

우리의 관점은 - 부모의 성관계 후 정자와 난자의 결합의 순간에 영혼을 창조하시어 넣으시는 - 영혼직접창조설 - 가장 나은 것 같지만 사실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전설과 영혼직접창조설을 섞어서 말한다 - 안토니 후크마. 

 

영혼유전설의 단점 - 영혼은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단순성에 위반이 된다. 부모의 영혼이 쌍방으로 나눠지지 않으니까. 

tradux animae, tradux peccati = / 그래서 원죄는 유전 죄이다! 

후대에 낳은 사람은 더 죄가 큰 것이 된다.

 

영혼직접창조설의 난점 - 인간은 다 타락하다 하나님의 손에 직접 창조된 것은 타락 아님. 그런데 넣는 순간에 타락하다. - 그렇다면 하나님이 타락함을 알면서 넣으실 수 있느냐? 하는 단점. 이 기원에 대해선 다들 모르지만 - 타락한 본성은 몸과 영혼이 다 가지고 있다.

 

영혼 직접창조와 직접 전가. / 몸과 영혼의 분리가 되는 것이 죄의 결과다? 몸을 만드시고 영혼을 순서대로

 

 중세는 이를 강조하는 것을 인간이라는 본질일 실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개별적인 인간이 있고 보편은 개념일 뿐이다. 오직 이름일 뿐- 유명론. 보편유명론. 보편 실재론이 중세에 부딪히는 것이다.

이 토대가 되는 것을 터툴리안이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모든 것들이 개별화되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로 사용하느냐/ 아담은 모든 면에서 자유의지가 있었다. 아담이 타락하면 신학적으로는 자유의지가 없어지고 철학적으로는 계속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 아담이 타락하면 의지가 죄의 의지가 되어버린다. 죄를 안범할 수 없다는 것. 노예의지에 대해서. 

 

타락한 이후에 아담은 자유의지가 없다. 철학적 의미에서는 자유의지가 있다. 전통적 설명방식. 

이렇게 말하면 어려우니까 신학적으로는 없지만 철학적으로 있다고 말하면 어려우니까 

이걸 바꿔보자 인간은 언제든지 자유의지가 있는데 자유선택을 못한다는 . 아담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가 선택하는데 타락 이후에는 자유의지가 있는데 그것만으로 자유선택이 안되고 악만을 택한다는 것. 

이렇게 표현하려고 하는 학자들 - 리차드 멀러. 

 

터툴리안도 온전하게 중생에 대해서 / 중생이 인간이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시지만 인간도 어느정도는 하는듯한 뉘앙스가 있다.  이것들을 정확히 알면서 해야 한다. 

철학계에서는 free will 과 free choice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면 윤리적 책임을 말하지 못한다. 결정론이 되어버린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의 인간성을 생각한다. 아직 분화되기 전의 인간성. 아담이 잘못되었다면 모든 인간이 잘못된 것이라는. 부패한 인간성을 가졌다는 것. 전적 타락을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과 관련된 협력설을 지지한다. 

힐라리우스, 암브로시우스, 

몸을 안가지고 있으면 벗어날 수 있다. 몸 때문에 그래. 

마니교는 고행을 하는데 몸을 자꾸 죽여야 하니까.-.-.-.-.-.-.-.-.-.-.-.-.-.-.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비교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단지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반발이 아니냐? 

그들이 만나기 전에 독립적으로 발전 되었고 나중에 만났을 때에 대항하기 위해서 세부적 내용들이 결정된다. 

 

자유의지와 원죄 문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 선할 수 도있고 악할 수도 있는 중립의 상태였다.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한다 인간은 타락 이전의 아담과 동일한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은 죄책만이 아니라 부패로부터 자유하다. 

 

죄는 의지의 개별적 행위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특징이 교육을 잘 하면 잘 될 수 있다는 것. 

 

 타락하기 전에는 의존해야 하고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으면 타락 이전에도 하나님 의존적 존재다. 사람의 덕은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하나님은 독립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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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하기 쉬운 문제인가? 개혁교회라고 하지만 실제적 이상 사항들이 구현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개혁 교회인데 너무 직분을 목사가 독점하는 - 직분을 세울 때에 언제 세워야 하는지 볼 때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인가? 성경적 원리를 따라 직분을 잘 가르쳐서 그것이 당회나 조직회에서 잘 구현되는 것을 기다려주는 것인가?  하나된다고 할때에 그 의도가 무엇인가? 

 

개혁파 교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개념을 놓쳐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직접 통치가 없는 장로교회보다 직접 통치가 있는 감독교회가 진짜 교회다. 이 의미가 뭐냐.

 

교회 규범에 대한 원칙은 명시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로교회 헌법을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판례를 명시해놓는다. 

제네바 치리록에서 회의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떤 논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제네바 만이 아니라 다른 데에서도 남아 있다. 필사로 되어있는데 그것들을 출판하는 중. 이런 사항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회의록이 없다.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들에 대한 이해가 없이 신학적 원리로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선명성은 좋지만 그 문제 그 시대가 가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답이 안된다. 

 

 찰스 핫지의 책이 관안련 선교사가 처음에 헌법을 가질 때에 참고한 서적이다. 하지만 공교회성을 너무 많이 넓혀서 감리교 장로교를 하나로 만드려고 하고, 회중주의적 성격이 완전히 극복되지 못함. 

교회사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뿌리에서부터 정착되는데 그 이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정확한 해석이 되지. 안그러면 원리만 있고 해석이 없다. 작동이 없다. 

 

예배 모범에 있어서 헌법에 있으면 그것을 교회 형편에 맞게 원리를 지키고 할 수는 있지만 그 원리 자체를 바꾸는 일이 된다면.. 

 

------

종교개혁을 전체의 역사로 봐야 한다. 

교회사에 대해서 배우는 것. 종교개혁 이후 교파주의 현상.

 

칼빈과 불링거 사이 편지 교환 285편 편지 한통에 금화 한 굴렌. 일년 봉급. 엄청난 교환 

멜랑히톤 

세르베투스의 경우에도 다 논의하고 한 것이다. 

종교개혁의 참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독립적 체계를 가진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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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키라의 마르켈루스 

마르켈루스는 하나님 안에 내재되어 있어서 창조 사역에서 신적인 에너지로 드러난 영원하고 비인격적인 로고스와 성육신 때에 인격이 된 로고스를 구별하였음. 

 

로고스는 성육신한 삶을 끝낸 후에 성부에 대한 세계 창조 이전의 관계로 돌아왔다고 주장함. 

 

안디옥파 사람들

호모이우시우스(유사본질)파 / 중도적인 입장의 신조들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반전된 흐름

- 반 니케아파가 분열하였다. 아리우스파와 반 아리우스파가 합하지 못하고 반 아리우스파끼리도 화합하지 못함.

 

- 친 니케아파 - 오리겐학파의  

휘포스타시스를 본질이라고 사용하는 예들이 있었다. 위격을 얘기하는데에만 사용함. 

 

-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 

 친 니케아파. 바실리우스,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우스 / 휘포스타시스를 우시아 및 프로소폰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 

 휘포스타시르를 출발점으로 삼아서 - 이 위격들을 신적 우시아의 개념으로 통합하고자 함. 신적 존재 안에 세 위격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사벨리우스주의 흔적을 니케아 신조에서 제거하고 로고스가 지닌 인격성은 충분히 보호된 것으로 드러남. 신격 안에서 세 위격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주장함.  

 

- 사회적 삼위일체주의 (현대의 몰트만) 

닛사의 그레고리에게 충실한 것 같으나 사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 세  사람의 비유. 

신성 개념이 독특하다. 페르소나의 의미가 동방에서는 개념이 다르다. 

현대적 인격 개념과 교부들이 사용하는 인격 개념의 차이를 의식하면서 사용해야 한다. 

고대의 개념은 결국 -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 

 

성령논쟁 

 - 성령은 성자에 의해 산출된 최초의 피조된 존재이다. 

아타나시우스 : 성령이 성부와 동일본질이다. 니케아 신조에서는 불명확하게 성령을 믿는다는 것만 있음.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은 아타나시우스의 견해를 따름. 성령의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을 강력히 주장함. 

서방에서 힐라리우스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통찰하는 성령이 신적 본질에 생소할 수 없다! 그래서 분명 성령은 동일본질이시다.  

마케도니우스 of constant. 성령은 성자에 종속된 피조물이다! 성령 이단론자들. pneumatomachians.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우리는 성부로부터 나와서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시게 되어 있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 주, 생명ㅇ르 주시는 이를 믿는다"

 

삼위일체론의 완결

 

 후대의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로스켈리누스의 삼위일체론 

 - 삼위일체론에 실질적 내용을 추가하지 못하고 진리에서 이탈함.  

- 보편 개념들은 단지 주관적인 개념들일 뿐. 유명론을 삼위일체에 적용함. 

세 위격의 단일성은 단지 의와 권능의 단일성일 뿐이 된다. 삼신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 철학의 문제를 삼위일체로 풀어보려고 한 것임. 

 

푸아티에의 길베르의 삼위일체론 

  사신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받음.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해보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온건한 실재론으로 해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그분만의 독특한 존재방식이다 \.

 *인식은 계시를 해줘야 안다.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달림. 존재와 인식

 economic trinity - 경륜적 삼위일체 - 오이코노미아! 

이 방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영원 전에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있는데 / 

성경이 그리 말씀하신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모노게우스 데오스 독특하게 낳아지신 하나님. =그래서 이 세상에 성부께서 성령을 보내신다.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 근거이다. 정통파에서는 다 그리 생각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최근의 일이다. - 최근이 98년도 / 2007년  학술지에 실리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이았는데 

이게 처음이 아니고 늘 그러케 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었음 

이와 비슷하게 사용ㅎ된 것이 =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고 그 역도 성립한다. (칼 라너)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없애고 경륜적 삼위일체만 사용하려는 현대 신학의 경향 - 그러면 이전의 선조들의 논의는 없어지게 된다. 

 

창세기 창조기사에 대해서 

신격 위격의 복수성.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아무대나 갖다 쓰면 안된다. 

전혀 안되는 해석 3가지 - 다신론에서->유일신론으로 구약 앞에 다신론적 전제가 남아있다. 

                                      - 천사들이 있어서 천사의 형상이다. 

                                      - 명백한 삼위일체가 있다. 

 

 어찌 해석해야 하냐? 1. 자기 의논의 복수. 2. 신적 위엄의 복수. 3. 신적 위격의 복수성 시사(벌코프)

 

 

소소소소소소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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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삼위일체 논쟁 

초기 교부들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이 부재함.

터툴리안이 삼위일체에 대해 최초로 언급했으나 그도 부족한 이해를 가졌음. 

종속론-> 군주신론으로 / 군주신론이 이단적인 것을 벗어나는 것이 종속론. 종속론을 이단적으로 가져간 것이 군주신론.

 

조금이라도 삼위일체적 생각이 있어서 군주신론이 나오는 것인데 

 

영혼한 발생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나타난다. 

발생이라는 단어가 영지주의적 단어이기 때문에 / 오리겐의 입장을 영원한 낳으심! 이라는 식으로 표현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종속론)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친 정통 교부이고. 스스로 고자된 자. 열심이 있던 자. 

 

- 성부는 성자에게 단지 "호 데우스"가 아니라 데오스다.   성자는 "데오스 데우테로스" 하급신 이류신이라고 말하기까지. 그래서 오리겐의 입장은 아리우스 이단에게도 디딤돌을 제공해주었다.

여호와의증인들의 말과 유사하게 - 하지만 오리겐의 이 입장은 틀린 것이다. 

오리겐은 성자가 있게 되는 것은 성부의 의지의 행위이다 -> 종속론의 치명적 단점/ 성육신은 하나님의 의지이시다는 맞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의지의 행위이지만 성자의 존재 자체는 성부의 의지의 행위이다. 

성령론에서 성령을 성자에게까지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림. 성령을 성자에 의해 지음받은 최초의 피조물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는 사상. 

 

* 오리겐의 공헌 : 영원한 낳으심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하였음 ; 종속론적 견해가 아니라면, 성경에 대한 알레고리 해석. 

 

논쟁의 성격

아리우스와 아리우스주의 

아리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음.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는 군주신론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

종속론에 대해서 성자의 지위를 인정하려고 하다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아리우스 : 성자는 시작이 영원 가운데 있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해 발생되었다. 성자가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터툴리안도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아리우스적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니다. 

영원 가운데에서 성자, 성령의 부재가 있었다. 이런 면에서 완전한 종속설이다. 

정통적 신학에서 성부성자성령 모두 시작이 없으신. a-genesia 아리우스에게는 성부만 a-genesia

성부는 그 중에서 a-gennesia. 성자 성령은 gennesia 하심. 낳아지심. 

 

당시 성도들의 절반이 아리우스주의를 따라가다. 

성자가 신이다.신적 본질이다. 하지만 영원하지만 영원하지 않고 신적 본질이지만 신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 그 성자가 피조된 존재이다. 최초 피조물. 성자의 공로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린 것이다. - 공로주의의 싹이 보인다.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적 하나님의 아들. 성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실천적 아리우스주의의 문제/ 예배 할 때 성자에게 예배해서는 안되고 기도도 성자에게 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성자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하면 아리우스주의로 돌아간다. 

이를 실천적 성부중심주의라고 한다. - 실천적 유니테리안. / 아리우스가 유니테리안은 아니다. 성자를 신성이라고 하기에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트리니트리안이 아니다. 

 

16c 소시니안주의 - uniterian. 아리우스주의보다 더 못한 것. 성자에 대해서 신성을 거부하는 것.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 정통적 삼위일체론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었음. 아리우스와 같은 교회였음. 

아리우스에 대한 반대

 

하나님의 단일성 - 단일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삼위일체론을 주장! 

위태롭게 하면 삼신론이된다. 삼신론에 대한 반대 - 1. 아리우스 2. 아타나시우스. 

나눔이나 분리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본질에서는 .

하급신은 아니다. 

신격 안에 세 구별된 위격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신론-polytheism이 아니다.

oneness of essence! 본질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이다. homoousious 

아리우스에 의하면 동일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의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과 연합함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아타나시우스의 성육신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한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 

deification - 하나님이 된다 신화. 뜻은 성화이다. 이 용어에 대한 오해가 있다. 동방교부들이 그런말을 할때에 성화의 의미에서 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구원론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 아타나시우스 신학 전체의 틀이 그것으로 향한다. 

구원이 되려면 하나님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자가 하나님이셔야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한다. - 좀 억지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ㅇ성령은 우리와 하나님을 연합시키기에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래서 구원론적 동기에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성자도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래야. 

 

니케아 공의회 325년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

- 현재는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300여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장소가 그렇게 크지 않다. 

황제가 로마제국을 통합하려고 하는 중에 기독교를 이용하려고 함.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계가 두가지로 나뉘어 있었기에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정치적 동기였음. 

 - 성경적 입장에 충실한 것으로 결정함 .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었는가? 모른다. 죽을때까지 세례를 미루었던 사람. 왜? 세례 받을 때 모든 죄를 씻으신다고 천주교회가 말해서 세례를 미룸. 의식주의. 

 한 분 하나님 성부와 한 본질에 (호모우시우스)에 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 피조되지 않은 존재로서 성자. 아우토데우스 참으로 하나님이신 분 성자. 그 스스로 하나님이신 성자.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이 auto-theos가 강조됨. -> 모든 종속론을 정리하였던 기여. 아우구스티누스도 종속설적 성향이 있었음. 칼빈이 니케아 신조를 거부했는가? 니케아 신조에 철저하면서 동시에 auto-theos 강조. 

 

한계 ; 

1. 황제가 자기 권력으로 교회에 강요한 해결책이다. - 아타나시우스도 이런 방식에 불만. 

종교개혁 이후에 이런 부분이 정리된다. 종교회의는 교회가 소집하는 것이다. 

 

2. 동방 교회에서 semi-arianism의 일시적 득세

니케아 신조 - 호모우시우스

다른 본질, 상위 본질 / 성자가 성부와 유사본질 (호모이우시우스)

세 가지 파벌로 나뉘어짐. - 니케아파, 헤테로우시우스(다른본질), 유세비우스(유사본질파) 가 한동안 주도권을 가짐. 

동방은 오리겐의 종속설에 주도됨. 서방은 터툴리안의 영향. 

 

589년 톨레도 공의회  -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이라는 말. 여기에 filoque를 붙임. 아버지만이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덧붙이는 것. 동방교회에서 자꾸 성자의 열등성을 말해서. 삽입하였다. 성부와 성자가 동등이시다. 

 

로마-콘스탄티노플의 경쟁적 관계 = 아타나시우스가 동방교회에서 추방당하였지만 서방에서는 환영받음. 

 

3. 

 

니케아 신조 사용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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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들이 아니니, 그들은 이해로만 그리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하나님 영원한 정신으로 그 안에 가지셨으며 영원부터 이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떼오필루스 

로고스는 창조의 근원 아르케다. 

모든 것의 주이시다. 

 

변론가들의 변증은 생존을 위한 변증이었다. 공정을 외치는 주장이었음. 그래서 주로 황제들에게 변증을 하였음. 

7명의 변증가들이 황제에게 변증을 함. 이레니우스 안토니우스황제에게 

져스틴 마터 150년경 안토니우스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부도덕하지 않다고 변증하는 것. 저들은 자기네 교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라는 것. 성찬에 대한 오해. 기독교는 밀교 집단 밀의 종교다. 난교를 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에 대해 변호함.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구약에서 말하는 것이고. 

 

tatian 

교회는 감사해야 하며 오늘날도 그들을 감사함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 온전히 저들의 말을 다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가 성육신 이전에 그렇게 가르킨 것과 새로운 법을 주신 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법을 주신다는.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문제가 가장 큰 첫 문제다. 변증가들의 구원론은 모호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자의 종속을 의미한다. 

 

종속론의 문제는 변증가들에게 아주 심각했다. 

 

교부들의 이단 논박. 

이분들을 교회의 토대를 놓은 분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를 번역하기를 교부라. 좋은지 안좋은지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들을 doctoro eclesia 교회의 선생님

각 교회에서 우리가 가르치는데 우리를 가르치는 이는 누구인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시는 분들 독토르 에클레시아에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다는 

교회 밖에서 일어난 여러 도전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ㅇ일들에 대해서 투자하면서 기독교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교회 안에 일어난 이단 가운데 초기 이단 영지주의 

 

영지주의 

기독교 영지주의 

시리아 영지주의

이란적 영지우즹 

 

최초의 영지주의 사람들 = 케린투스 가 그 대변인으로 언급되는 초기 영지주의다. 

최고의 신이 인간을 불ㅆ아히 여겨서 생명의 스파크를 주고 그 스파크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시깅다. 

이것이 영지주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몸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면 구원이다. 

초기 형태의 영지주의다 \.

 

하드리안 황제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친 바실리데스 

피타고라스 학파와 플라톤 주의를 합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적인 생각 플라톤주의적인 생각 

최고의 신으로부터 하늘과 그 영들이 발출했다는 것. 최고의 신응로부터 자꾸 뭔가가 나온다는 것. 

발출 하는 말은 사용하면 안된다. 발출이라는 번역은 하면 안된다. 

현대인들은 영지주의 잘 모르니까 괜찮은데 이 상황을 생각하면 사용하면 안된다. 

성령이 발출, 성자가 발출 하면 영지주의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더 나은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밑에서부터 점점 발전해나아간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라난 2세기 중엽에 뢈에서 한 .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묘한 글들을 인용한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주의 

바실리우스는 플라톤적 발렌티누스는 아르스토텔레스주의 

발렌티누스 - 하나님은 끝을 찾을 수 없는 심연이다. buthos 깊음. 무저갱. 나아지지 않고 헝언할 수 없고 완전히 다 알 수 없다. 

온전하고 선재하는 에오니온 / forefather, 심연이다 / 담을 수 없고 보이지 않고 "조용히 깊은 고독 속에 있다 "

 

데미울루스 조물주 ; 프톨

 

불트만 - 현대의 말시온이다. 

물질적인 것 혼적인 것 영적인 것  삼분법적 이해가 있는 것.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다. 육적인 사람은 물질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혼적인 사람들 경건한 자들과 중간적 위치로 간다. 

신령한 자이다. 프튜마티코스 신령한 자는 하늘에 있게 된다. 

 

영지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자 신화 소테리올로지. soter 

 

그 하늘을 그가 알려주는 것을 통해서 길을 아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늘로부터 빛의 나라에서 어둠의 나라로 오는 것. 그러고 하늘로 가서 길을 알려주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다가 불트만처럼 - 길이오 진리요 생명이다 영지주의다 라는 생각. 

그리스도는 천상적 존재이거나 31번째 에온으로 발출된 것이다. 라는 생각. 

15쌍씩 나타난 에온들이 있는데 30번째가 소피아인데 그 소피아에서 이 세상이 있는데

 그리스도가 31번째 발출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 모든 에온들이 합해서 30개 32개 새로운 에온적인 존재 . 높은 천상적 그리스도 / 미래의 남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 

 

구속을 위해서 사람들 가운데 환영적인 몸을 가지고 / 최고의 천상적 그리스도가 잠시 예수와 함께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떠나시고 혼적인 몸만이 수난을 당하셨다는 것. 

마치 물이 수도관을 통ㅎ과하듯 마리아를 통과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소테르가 / 

바실리데스는 예수 대신에 구레뇨 시몬이 십자가에 다린 것이다 .1 

최종 구성/ 

 

영지주의에 대한 평가 

복음을 일종의 종교적 철학이나 신비적 지혜로 변형시켰다.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교다. 

영지주의가 이교적 벌거벗음을 기독교의 전을 조금 훔쳐서 가려보려는 것 

나쁜 영향0

천주교회의 기계적 성례 이해

하나님을 세상과 직접 연관시키기 어려워하고 중간적 존재들을 통해서 연관하려는 생각들

더 높은 단계의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을 나누려는 시도들 

고행주의에 대한 강조

 

시노페의 말시온 

 

정경에 대한 논쟁. 

모든이단들은 자기네가 정통이라고 말함. 

나중에 영혼만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 

 

몬타누스주의 

135-175년 프리기아 몬타누스 

상류층의 부인이었던 브리스가와 막시밀라를 여 선지자라. (오늘날의 신사도들과 비슷함)

말시온은 바울을 몬타누스는 요한을 강조함. 계씨의 마지막 배가 보혜사에게 임하신 보혜사의 시대다!

 

중혼 -/ 재혼 안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종국적으로 오시니 금식을 더 해야 한다. 

핍박을 피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한 반대 - 이레니우스 

서머나에서 태어나 폴리캅의 제자. 존재 전체를 가지고 교회의 신앙 가운데 살았다. 

 

이단 반박 - 참으로 영적인 사람은 구약에서 신적 경륜의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말시온 비판. 0 구약을 인정 안했기에. 영지주의도. 

 

이에 대해 아니다. 우리가 pneumatikos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가 항상 인정하는 것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 

 

우리는 2천년 교회가 가르쳐 온 것을 가르쳐야 한다. 천주교회와 하르낙의 이해는 객관적 사실에 맞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수납하는 것. 성경의 권위를 교회가 형성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수납해야 한다. 천주교회는 교회가 정경을 생성해나가는 것이다. 

 

성부는 두 손을 가지신다. - 하나님이 직접 다 못하고 성자 성령이 하신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 그럼에도 로고스이신 성자께서 영원전부터 계심을 아신다. 위격적 구별성을 가지심을 분명히 한다. 삼위일체적 / 로고스가 구약의 여호와다. 여호와는 성부가 아니다. 성부도 여호와지만 성자도 여호와다. 터툴리안도 동일히 말함. 

 

성자는 시간 이전 영원에서 성부에게서 나셨다. 성부와 영원한 관계를 가지고 계신다.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랑 관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낳았다는 것은 우리는 있지 않을 때가 있었다는 의미다.

영원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1. 깨달음으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 - 박옥수유사 (죄 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 얻는다)

2.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신화를 낳는다(deification) - 동방신학의 말. 

3. 적그리스도에게서 노아 홍수 이후 모든 오류와 우상 숭배가 총괄되어진다. - 적그리스도는 단 지파에 속한다. 

 

히폴리투스 - 제피리누스와 칼리스투스가 로마의 감독일시 로마 인근에서 장로로 있었다. 장로는 목사라는 말. 

고백적 져스틴이었다. 

한동안 이 사람들이 양태론적 주장을 가졌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성자를 믿고 성령을 믿고 경배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삼위일체를 통해 성부께서 영화를 받으신다는 것. 모든 성경이 이를 선포한다. 삼위일체론을 드러낸다는 말. 

크리스토퍼 워즈워트. 

 

터툴리안 (155-220)

 

아프리가 카르타고에 주재하던 로마 백부장의 아들이었음. 

법률적 신학이 뛰어남. 모든 학문을 잘 알고 있었던 법률가로 훈련받았다. 

북아프리카 신학의 대변이닝었다. 

 

신격 위격인 trinitatus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함. 

낳으심. 한 본질, 삼위라는 말도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철학에 대한 강한 반감. 

플라톤은 모든 이단들의 조미료다! 플라톤과 섞어지면 이단이 된다.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냐? 교회와 아카데미가 무슨 상관이냐?"

이단들에 대한 the prescriptuion against heretics

 

철학에 반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 반지성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지만 아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논의하는 분은 아니지만 태초 이전부터 합리적" 

principle of rationality

 

Against Praxeas - 양태론자 반박. 

성자와 성령이 성부와 하나의 같은 본질을 가진다. 

이때부터 라틴어로 신학적 작업이 진행되는데 /그 전까지는 헬라어로 되었음. 

 

경륜적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말하다. 본질 자체가 삼위일체라고 말해야 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삼위일체를 분명히 말함. 

지위statu, 본질substantia, 능력potestate에서는 같으나! 위격의 순서gradu, 형태forma, 양상soecue 에서는 다른 삼위가 있다. 

존재 능력 영광에서 같으시다. 

 

성령님도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성부와 성자와 본질의 통일성을 가지심을 분명히 말함. 

그리스도를 모든 이방인들을 위한 희생제사를 치르셨다. 형벌의 만족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만족시킨다. satifactio - 안셀름까지 이런 용어를 사용함. 

 

문제점

종속론을 극복하지 못함. 0 옳은 생각인데도 종속론을 극복 하지ㅁ는 못함

성부는 전체 본질이지만 성자는 그것의 한 부분이니 성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성자의 종속론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성부 성자 성령을 뿌리 가지 열매와 비교하는 비유. 

로고스가 본래 하나님의 비위격적 이성이었고 창조를 바라보면서 위격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성부께서 성자를 가지지 않던 때도 있었다는 말을 한 것 - 그리스도에 대한 영생적 낳아지심에 대해 이해 부족. 

 아리우스주의 후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율법주의적 경향 - 하나님을 입법자와 심판자로 제시. 고해로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satisfaction 했는데 우리는 이게 세례로 이루어지고 . 이후 죄를 지으면 고해를 해서 satisfaction 해야 한다. 마귀를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이게 좋은 의도였지만 천주교의 고해론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만족에 대한 논의가 고해에서 나타나고 있다. 

 

플라톤주의경향 - 인간의 영혼이 몸이라는 감옥에 갖혀 있다.

개인화하는 해석 = 끝까지 견디는 자 개인의 죽음이라고 이해함. 

몬타누스주의를 옹호하면서 자신도 그 안에 있다고 말함-몬타누스주의 200년 후의 말이기에 이해가 없었을 것. 

 

키프리안 0 200-258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강조. 다른 사도들에게도 비슷한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 

그 권세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을 하는 것. 키프리안의 위대한 공헌이지만 

교회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있다는 속사도들을 따라감.

"교회는 감독이 있는 곳에 있다. " - 베드로의 권세 위에 세워서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 옳은 말이지만 천주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뜻으로 비추어질 수 있음. 

 

 

Alexandrians 

유대적 관념과 그리스 철학을 혼합시킨 필로의 = 바실ㄹ레이우스가 있었음 영지주의/ 신플라톤주의가 탄생한 곳이다. 

복음과 헬레니즘의 혼합을 시도한 것이 알렉산드리아파 

기여 : 모든 참된 지식은 하나님에 의한 사랑과 순종에 근거해야 한다. clement 

- 판테누스 : 스토아 사상을 알던 자 . 플라톤적인 생각을 교회에 많이 넣어 생각함. 정확한 것은 다 알 수 없음. 

그러다가 clement of alexandria / not clement of Rome 철학적인 탐구의 지속이 있었음. 

다른 곳에서 못 찾은 것을 기독교에서 찾는다! 

 

신적인 것에 대한 지식의 원천을 성경과 이성을 / 복음과 

온갖 사변에 대해서. 철학적 추구의 최종적 만족은 기독교에 있다. 

 

패다 고고스 0 교사 - 개종자들을 교육하는 것. 스콜라주의와 기독교의 혼합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과 /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잘 표현하는 것. 그 둘은 하나이신 하나님이다. 

원래 성자는 안먹어도 되는 거다. 온전한 이성이 아닌 것. 온전한 이성을 부인하지 못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변에 사변을 더하다. 

그리스도가 불감정설. 가현설을 극복하지 못함. 

대속물로 자신을 주심을 인정하지만. 화목제물임을 인정하지는 얺음. 

 

오리겐 - 오리게네스 아다만티우스. 

강력한 오리겐이라는 의미임. 기독교인 가정에서 자라났음. 자기 아버지때부터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었음. 성경과 함께 고전 교육도 잘 시킴. 신 플라톤주의자인 암모니우스 / 

 

 가장 이른 교리신학의 체계적 계시. 

원리에 관하여 - 최초의 조직신학 책이다. 

켈수스에 대한 답볍 - 기독교에 대한 오리겐의 답변 

 

 

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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